다담잡설(茶談雜說): 차 마시다 떠오른 별별 생각
마신 차: 수미 백차. 2.5g, 99도, 40s-30s-50s-1m20s-2m
친척형이 이번 21대 총선에 출마했다가 낙선했다. 어렸을 때부터 엄친아로 유명해서 동생들 기를 죽이던 형이었는데, 선거라는게 스펙만 가지고 되는 것은 아니니... 어쨌거나 떨어진 것은 아쉽지만, 전국구 엄친아로 이름을 알렸으니 잘 된 것이 아니냐고 위로했다.
주변에 정계에 진출한다고 나서는 지인들이 하나 둘 생겨났다. 처음에는 '왜 안정적인 직업을 버리고 불구덩이 같은 정치판으로 뛰어드나' 하면서 의아해 했었다. 요즘에는 생각이 조금 바뀌어서 더욱 다양한 사람들이 정게에 진출했으면 하는 바램이다. 다양한 세대와 이익 집단을 대변해줄 인물들이 국회로 가서 치열하게 토론하면 좋겠다.
정치는 여러 훌륭한 분들이 열심히 하도록 응원을 하고 나는 차 한잔이나 마시면서 삶에 충실할 따름이다. 요즘 아침 마다 혼자만의 티타임을 챙겨서 갖고 있다. 너무나 소중한 시간이다. 졸리고 피곤해서 '차라리 잠을 더 자지'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는데, 그래도 조금 일찍 일어나서 티타임을 갖는 것이 하루를 살아 가는데 더 도움이 된다는 것이 내가 내린 결론이다. 마치 신체에 운동이 필요한 것처럼 아침 티타임은 마음 수련에 필수다.
하루라는 삶의 화음을 쌓아 올리는데에 기초를 제공하는 베이스 성부와 같다고나 할까? 잔잔한 음악을 틀어 놓고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면서 차를 마시노라면, 문 밖의 일상에 대한 일말의 두려움이 살짝 설레임으로 바뀌기도 한다.
온전히 나의 내면을 마주하고 대화를 나누면서 글감을 길어 올리기도 하고, 그리운 사람에게 부치거나 부치지 않을 편지를 구상하기도 한다. 또는 소란스러웠던 어제 하루 나의 행동을 돌아보며 나의 부족함, 모자람을 꾸짖기도 하고, 알게 모르게 사람과 일에 치이며 받은 상처를 위로 한다.
지난 한달 동안 영상 제작에 푹 빠져 살았다. 갈수록 영상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글쓰기와 다른 "영상 문법"을 배우고 직접 영상을 제작하고 싶은 열망이 있었다. 직접 비디오를 촬영하고, 저질 연기도 해보고, 편집도 하면서 많이 배웠다. 글쓰기와 마찬가지로 영상제작도 자신을 표현하고 소통하는 방법인데, 그 표현의 수단이 훨씬 다양하다는 점이 맘에 들었다.
차에 관한 영상을 기획중이다. 단순히 티타임을 촬영해서 올리는 것이 아니라 차에 관해, 차를 우려내는 방법에 관해 더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는 영상을 만들고 싶다. 아침 창을 통해 보이는 풍경이 이제는 뷰파인더의 영상처럼 보이기도 한다.
아침에는 화려한 맛과 향의 차도 좋지만, 차의 가장 본질만을 남겨 놓은 흑차(보이차)가 제격인 듯하다. 차의 화려함에 빠지면 나의 생각의 흐름이 좌초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유쾌한 좌초이기는 하지만, 아침에는 나 자신에게만 집중하고 싶다.
흑차를 연하게 내려서 홀짝이며 생각에 잠기다가 요기거리로 준비한 구운 계란, 토스트 등을 곁들인다. 달달한 다식이 아니어도 차와 잘 어울린다. 차는 달콤한 다식과 함께 해야 한다는 생각을 일종의 편견이다. 달콤한 다식이 관습처럼 된 것은 쓰고 떫은 차의 맛을 덮기 위한 방편이다. 쓰고 떫지 않은 차는 어떤 종류의 음식과 같이 먹어도 좋다.
티타임을 갖다가 출근 시간이 늦어 지기도 하는데, 예전에는 허둥대며 서둘렀었으나 이제는 '차라리 지각을 하고 말지' 라며 베짱을 튕긴다. 여유있게 티타임을 갖고 출근하는게 나의 생산성에 차라리 더 낫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하루의 기초를 단단히 다지고 부단한 일상과 마주하는 것이 낫다. 티타임을 마치고 다기를 씻어 정리하면서 오늘 하루는 또 어떤 멋진 화음이 쌓아 올려질지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