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담잡설(茶談雜說): 차 마시다 떠오른 별별 생각
마신 차: 선물 받은 무명 보이차. 2g, 99도, 50s-30s-1m-1m30s-2m
들은 노래: Angel(노래: 유채훈, 박기훈, 구본수)
3개월 전, 한참 코로나19가 창궐하여 모두가 숨죽였을 때, 우리나라를 포함한 전 세계 주식 시장이 추락을 거듭하며 1층 아래 지하실이 어디냐고 물을 때, 20대 회사 동료가 '주식투자를 어떻게 하면 좋겠냐'라고 물어 왔다. 나 같은 3류, 아니 5류 경제학자에게 투자 자문을 다 구하다니! 젊은 세대 사이에 주식 투자가 핫하기는 핫한가 보다 싶었다.
일찍부터 부동산 투자는 전혀 안 하고 금융 투자만 해왔다. 어렸을 때 아파트 투기 광풍 때문에 매년 전셋값이 오르는 통에 이사를 자주 다녔었다. 당시 부동산 투기라는 건 빚을 져서 집을 사고, 그 빚을 전세로 메우고, 다시 전셋값을 올리면서 새 집을 사고... 대충 이런 식이었었는데 매년 전, 월세가 크게 오르다 보니 그걸 못 맞추면 이사를 나가야 했다.
부모님이 '무슨 일이 있어도 아이들 전학은 시키지 않겠다'는 생각을 갖고 계셔서 다행히 학교는 옮겨 다니지 않고 학창 시절 내내 한 동네를 빙빙 돌았었다. 그리고 대학에 입학할 즈음에서야 드디어 이사 갈 필요가 없는, 우리 집을 장만할 수 있었다. 앞으로, 앞으로 달려만 가는 집값을 따라 잡기가 참으로 버거웠었다(그런데 요즘 집값은 날라가고 있으니...). 부모님께서 착실히 돈을 모으셔서 이룬 결과라 무척 뿌듯했었다. 이런 경험을 하면서 어린 맘에도 '집은 꼭 그곳에 살 사람만 소유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었고, 장차 커서도 부동산으로 돈을 벌지 않겠다는 다짐을 했었다.
부동산 투자는 투자가 아니다. 집이나 땅을 사놓고 값이 오르기만을 기다리는 게 어떤 사회적 가치의 생산에 기여하는가? 건물을 사서 리모델링을 한다면 인정. 부동산의 가치를 높여서 재판매를 하거나 임대사업을 한다면 투자로서 인정하겠지만 단순히 길목을 막고 값이 오르기를 기다리는 것은 투자가 아니다. 정작 그 부동산이 필요한 실수요자가 구입하는 것을 어렵게 만드는(부동산 가격을 올림으로써) 가진 자의 횡포라 생각한다.
반면 금융투자, 은행 예적금이나 주식, 채권 투자는 돈이 필요한 사람에게 자본을 대주어 어떤 가치를 생산토록 돕는다. 투자 수익은 이러한 지원에 따른 정당한 결과다.
과거 우리나라에 한참 부동산 투기 열풍이 불 때, 땅이나 집을 보러 다니는 사람들을 복부인이라 부르고 부동산으로 떼돈을 번 사람들을 졸부라 부르면서 낮춰 보는 경향이 있었는데 요즘에는 그런 분위기는 없어진 듯하다. 부동산 투기가 재테크의 한 수단으로 인정받고, 그렇게 돈을 번 사람을 오히려 부러워하는 분위기가 생긴 듯하여 씁쓸하다. 개인적으로 부동산으로 큰 돈을 벌었다고 자랑하는 사람은 그렇게 멋져 보이지 않는다. '당신의 욕심으로 인해 자기 집의 꿈을 빼앗긴 사람'에 대해 생각해 보았는지 묻고 싶다.
부동산 투자 없이 금융 투자만으로 많지는 않아도 꾸준히 수익을 내서 살림에 보태왔다. 직접 주식이나 채권 투자는 거의 하지 않았다. 개인투자자로서 정보가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잘 모르는 기업의 주식이나 채권을 사는 것은 눈가리개를 쓰고 무작위 상품을 고르는 것과 같다고 생각했다. 예, 적금과 펀드 투자로 물가상승률 + 알파 정도의 수익을 꾸준히 내왔고 스스로 이 점에 대해 대견스럽게 생각한다.
아마도 그 친구가 주변에서 이런 얘기를 듣고 나에게 주식 투자에 대해 물어본 듯하다. 동료들과 투자 얘기를 하다 보면 가끔 금수저 출신이 아니냐는 얘기도 듣는데 기분 나쁠 것은 없지만, 학창 시절 1~2년을 걸러서 전셋집을 전전했다는 얘기를 알고도 그런 얘기를 할지 궁금하다.
나: "왜 주식 투자를 하려고 하세요?"
그녀: (뭔 헛소리냐는 표정을 지으며) "돈 벌려구요"
나: "돈이 어디에 필요해요?"
그녀: ('당신 경제학 공부한거 맞아?'라는 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돈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거 아닌가요?"
나: "차나 한잔 할까요?"
결국 차만 한잔 마셨다. 차를 마시면서 투자에 관해 이 얘기 저 얘기를 했지만 아직 투자를 할 마음의 준비가 안된 듯하여 본론은 꺼내지도 않았다. 아마도 그 친구는 나를 투자 꼰대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20대 사회 초년생 친구들이 부동산이 아닌 주식 투자에 관심을 갖는다는 것은 진심으로 환영할 일이다. 일찍 시작해서 꾸준히 쌓아 간다면 큰 거 한방을 노리는 부동산보다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소득을 만들 수 있을 거라 믿는다.
3월 중 주식 가격이 폭락하고 동학개미운동이 한창일 때, 그녀가 다른 사람에게라도 물어서 주식에 투자를 했을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