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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니카 Aug 02. 2020

행복한 사람들과의 마리아나 당일치기

브라질 여행 에세이 - 오우루 쁘레뚜 (2)

브라질 여행 에세이 - 오우루 쁘레뚜 (2)


하루 종일 사무엘을 따라 돌아다니다 숙소에 돌아왔는데 혼자 쓰던 방의 다른 침대 2개 위에 배낭이 하나씩 놓여져 있었다. 아마도 중장기 배낭여행을 하는 여행객들일 것이라 추측하며 이층 침대 위에 누워 새로운 방문객이 등장하기를 기다렸다. 잠시 후 아주 다르게 생긴 두 여자가 들어왔다. 배낭 주인들 중 한 명은 포르투갈어를 할 줄 아는 이탈리아 여자, 한 명은 영어만 할 줄 아는 오스트레일리아 여자였다. 예상과 달리 이들은 친구가 아니었으며, 각자 이 호스텔에 오늘 도착해서 집을 풀어놓았을 뿐이었다. 혼자 여행하던 우리 셋은 당연히 급속도로 친해졌고, 자연스레 저녁식사를 어디서 할까를 함께 고민하게 되었다. 호스텔 직원들과 선약이 있었던 나는 또 자연스레 그들을 초대해, 어쩌다 보니 이렇게 여자 3명과 호스텔 직원들 3명이 짝을 이뤄(?) 약간은 어색한 저녁 식사를 하였다. 하지만 어색함도 잠시, 여행지에서 만나면 늘 그렇듯 각자 자신이 여행했던 곳들, 사는 곳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느라 바빴다. 영어랑 포르투갈어를 섞어서 써야하는데도 어찌나 다들 찰떡같이 말하고 찰떡같이 알아듣던지.


미나스 제라이스 주는 치즈와 꿀이 맛있고 유명한 곳이라, 우리는 다같이 꿀주(cachaça com mel) 에 도전해 보기로 했다. 브라질의 소주라 할수 있는 까샤사에 꿀을 탄 것인데 아주 보약이라고 한다. 하지만 역시 약(?)은 입에 쓴 법. 엄청 단 맛과 쓴 맛이 동시에 입안을 가득 채워 마치 프로폴리스를 마시는 느낌이었다. 거나하게 취한 그들은 맛있다며 연거푸 꿀주를 마셔댔다. 술도 먹었겠다 살짝 어설프게 취기가 올라 나를 포함한 몇몇은 숙소에 돌아가려 바를 나왔다. 


8월의 브라질은 나름 겨울이라 밤이 되니 바깥 공기가 쌀쌀해졌다. 다들 어딘가에 모여앉아 술을 마시는지 안 그래도 조용한 마을이 더욱 고요했다. 호드니를 따라 따뜻한 색의 가로등이 켜져 있는 곳들을 걷는다. 밤이 되어 그 모습이 다르게 보이는 것인지 아직 내가 가보지 못했던 길인 건지, 낮에는 보지 못했던 느낌의 길들이 나타났다. 새카만 밤하늘에 때마침 보름달이 크게 떠 있었고, 풀벌레 소리가 간간이 들린다. 조그마한 강 위의 돌다리 위에서 잠시 찬바람을 맞으며 술을 깬다. 사람이 다니다 다니지 않다 하던 다리 위. 호드니가 버릇으로 흠흠거리는 소리만 가끔씩 들릴 뿐이었다.

하루종일 사무엘과 놀고 다른 말 많은 사람들과 정신없이 대화하다보니 잠시 호드니에 대해서 잊어버릴 만큼 그는 조용하고 내성적인 편이어서 폭탄 머리를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존재감이 없었지만 나는 점차 그가 좋은 사람임을 확신했다. 처음에는 저 히피 같은 애는 뭐지 싶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그 애가 하는 포르투갈어 말투, 목소리 톤이 듣기 좋아서 계속 말을 걸었던 것 같다. 본인이 주인이자 직원이면서 혼자만 호스텔 일을 다 하는 것 같아 왠지 그 애의 편이 되고 있었다. 실제로 아침에 일어나 기타를 치고 있는 다른 직원 옆에서 그는 항상 빗자루를 들고 서 있었다. 그런 짠한 마음에서인지 같이 있는게 매우 편했고 나의 짖궂은 장난을 다 받아주는 탓에 그에게 자꾸만 더 다가가고 싶어했다. 그런 좋은 사람과 조용한 밤길을 안전하게 걸을 수 있었던, 마음이 편안하고 따뜻한 겨울밤이었다. 





다음 날.

며칠 간 아담한 오우루 쁘레뚜를 둘러보고 근교 마리아나 (MARIANA) 라는 곳에 혼자 갈 계획이었다. 그런데 마침 어제 저녁 식사 자리에서 호스텔 직원들이랑 같은 방 여자친구들이 간다고 해서 나도 얼떨결에 끼게 되었다. 사실 혼자만의 시간이 조금 필요한 때가 된 것 같아 그들의 제안을 잠시 고민했으나 싫지 않은, 따지자면 좋아하는 쪽에 속한 사람들이 함께 하기를 권했는데 굳이 혼자를 고집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에 기분 좋게 합류하기로 했다. 특히 호스텔 소유의 미니벤을 타고 간다는 사실은 내 마음을 흔들기에 충분했다. 약간은 덜컹거리는 작은 벤의 운전을 맡은 사무엘이 내가 좋아하는 브라질 특유의 흥이 아주 가득 담긴 노래를 크게 틀어줘 다같이 쿵짝거리는 리듬을 타며 갔다. 이 순간 진짜 여행 온 게 실감이 나서 신이 나 버렸다. 여행의 시작은 언제나 설레는 법이니까. 


가다가 어느 한 곳에 잠시 멈춰 서더니, 어떤 머리 긴 여자가 조수석에 폴짝 올라탔다. 비어져 있던 조수석은 그녀를 위한 자리였다. 그녀의 이름은 마누엘라. 가우샤(브라질 남쪽지방 출신) 인데 이 곳 식당의 웨이트리스로 일하고 있다고 한다. 그녀는 이렇게 자주 그들과 즉흥적으로 어울린다는 듯 자연스럽게 올라타 가녀린 몸짓과는 상반되는 허스키한 목소리로 안부를 주고 받는다. 항상 크게 웃고 더운 여름에도 쉬마헝(chimarrao - 남미 남부지방의 마테차)을 즐기는 그녀는 굉장히 매력적이었다. 예쁜 것은 둘째치고, 그녀가 풍기는 분위기가 멋있었다. 꽤 자존감이 높으며 동시에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 느꼈다. 호탕한 웃음 때문에 생긴 듯한 얼굴의 잔주름까지 그녀를 더욱 매력 있게 만든 것 같았고, 아마 여기 있는 모두가 그렇게 생각할 것이라 확신했다. 


사무엘이 무엇인가에 대해 열을 내며 말하고, 그것을 경청하는 우리.


근교 마리아나(Mariana) 로 가는 길에 매력적인 그녀들과 바위 속 폭포를 맞으러 가고, 악어 바위 절벽에 가 위험한 사진 찍고 놀다가 공원 관리원들에게 혼이 난 뒤 잠시 바위 위에 앉아 쉬기로 한다. 마누엘라의 쉬마헝을 맛보고, 젖은 옷을 입은 채 뜨뜻하고 건조한 바위 위에서 몸을 말린다. 브라질의 내륙 지방 관광지는 해변과는 또 다른 분위기를 자아낸다. 녹색의 풀 숲 깊숙한 곳에 자리한 깨끗한 계곡과 주황색 동굴, 맨발에 닿는 매끈한 바위의 감촉이 마음에 든다. 이런 곳에 오면 최대한 자연인에 가까워 지고 싶어지기 마련이다. 어울리고 싶으니까. 그리고 여기서 또 나는 행복을 느낀다. 여행 중에는 참으로 행복을 느끼기가 쉽다고 생각한다. 그걸 역으로 생각해, 여행이 끝나고 일상으로 돌아간 뒤에도 행복을 쉽게 느끼기 위해서는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까. 혼자 여행하는 도중에 가장 많이 생각한 난제였다. 

여느 때처럼 그 행복한 순간에 마침 그냥 시야에 들어온 사무엘에게 툭 던지듯 물어봤다.


“넌 네 삶이 좋니?”


사무엘은 단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답했다.


“응, 엄청”


아무 기대없이 물어본 것이기에 너무 쉽게 돌아온 그의 긍정적인 대답에 조금 심장이 떨렸다. 너무나도 부러운 삶이지 않은가. 물론 나도 현재로서는 행복한 삶을 살고 있지만, 이전에는 그렇지 않았던 적이 있었고, 그동안 여행하면서 만난 한국인의 대다수는 저 질문에 저렇게 바로 웃으며 자신의 삶이 좋다고, 심지어는 이 여행이 행복하다고도 바로 답하지 못하였다. 오히려 여행이 힘이 든다, 무례한 사람을 만나 기분을 완전히 망쳤다 등등 불평 먼저 하는 것을 보고 놀란 적이 많았다. 혹은 '행복'에 대해 고민하고 생각하는 게 이상하고 어색한 행동이라는 표정을 지어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긍정적인 대답에 약간 의외라고 속으로 생각한 '나 자신'에게 동시에 놀라기도 하였다. 대학에 가고 여행을 많이 다니는 게 꿈인, 즉 그런 삶을 현재는 살지 않고 있는 그가 행복하지 않을 것이라고 멋대로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내가 그의 대답에 의외라고 생각한 것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행복의 기준은 그런 데에 있지 않다는 것을 누구보다 믿는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생각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부끄러웠다. 마누엘라 역시 자신의 삶을 좋아했다. 돈이 많지 않더라도, 성공하지 않더라도 즐겁고 행복한 삶. 그들은 그랬다. 그들이 '가진 것'이 아니라 '마음가짐'이 너무 부러웠다. 


그들은 행복하고 즐겁게 사는 삶이 어떤 것인 줄 알고 있는 듯 했다. 



아찔했던 악어바위, 마치 악어의 주둥이와 비슷하게 생겼다.



그 날 저녁 어느덧 오우루 쁘레뚜를 떠날 시간이 되어 친구들과 아쉬운 마지막 인사를 하고 버스 터미널로 향하려는 그 때, 호드니가 나의 묵직한 빨간 배낭을 대신 멘다. 나에게는 커다랗게 덮칠 것 같았던 큰 배낭이 호드니의 등에서는 귀여운 책가방처럼 보였다. 그리고 나와 나란히 꼭대기에 있는 버스 터미널까지 같이 올라간다. 가던 길에 처음 이 곳에 반하게 했던 야경이 내려다 보이는 언덕에 멈춰서 마지막으로 오우루 쁘레뚜를 눈에 담았다. 그 때는 혼자였는데 지금은 둘이다. 곧 다시 혼자가 될 테지만. 헤어짐이 아쉬워 올라가는 내내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호드니는 '자신은 항상 누군가를 떠나 보내왔기 때문에 슬픈 표정으로 작별인사 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며 계속 바보같이 흐흠 거리면서 웃는다. 나는 이때까지 항상 내가 어딘가를 가고 떠나왔기 때문에, 남겨져서 누군가를 떠나 보내는 이가 되어본 적이 없어 그가 왜 그런 말을 하는지 그 때 당시에는 잘 몰랐다. 오히려 어색하게 웃는 그를 보며 나만 아쉬운 감정이 드는 건가 싶어 서운하기도 했다. 


이후에 여행을 이어가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정들었던 친구의 뒷모습을 배웅하며 조금 알게 되었다. 그 때 호드니가 애써보인 웃음을, 그리고 내가 이 곳에서 얼마나 값진 인연들을 만난 것이었는지. 본인의 삶이 행복하다고 자신있게 말할 줄 아는 사람들과의 여행은 그들과 함께한 사람에게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들을 만나 참 행운이었다고 생각하며 다짐했다.   


나쁜 의도를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이 나쁘지 않은 제안을 한다면 반드시 받아들이자. 

즉시는 내키지 않더라도. 혼자만의 계획이 있었더라도.



이번 여행에서 만난 값진 보물같은 내 인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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