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퍼뜩 온나."
대열이는 이쪽저쪽 눈치를 살피며 천막 주위를 돌다 먼발치서 머뭇거리는 나를 손짓으로 불렀다. "내가 천막 들어올리믄 얼릉 니 먼저 들어가래이." 한적한 모퉁이에 사람이 없는 것을 재차 확인하곤 천막 한 귀퉁이를 들어 나를 먼저 안으로 들여보내곤 대열이도 뒤따라 몰래 들어왔다.
서커스단이 우리 동네를 찾아왔다. 가끔씩 서커스단이 비산동에 오면 온 동네가 들썩였다. 평소엔 먼지만 풀풀 날리던 북비산로터리엔 거대한 천막 건물이 뚝딱뚝딱 며칠 사이 지어졌다.
얼굴에 연지곤지를 찍고 한껏 치장한 아저씨가 큰 북을 매고 걸으면서 발을 팍팍 뻗으면 신기하게도 북채가 저절로 북을 쳐대며 쿵쿵 소리를 냈다. 큰북에 심벌즈까지 등에 업고 입에는 하모니카까지 문 북쟁이 아저씨는 노랫가락을 뽑으며 외쳤다. "서커스가 왔어예 서커스, 동네 사람들 구경 오이소." 북쟁이 아저씨 주위에는 사람들이 삽시간에 몰렸다. 아이들은 풍선같이 마음이 부풀어 아저씨를 졸졸 따라다녔다. "야들아, 퍼뜩 엄마한테 서커스 표 사달라 캐라." 그 신기한 서커스 구경을 꼭 하고파서 엄마 치맛자락을 붙잡고 떼를 쓰는 아이, 대문을 걷어차며 보채는 아이도 있었다. 사달라고 아무리 졸라도 서커스 표가 쉬 나올 턱이 없었다.
내 친구 대열이는 서커스가 오면 나를 불러냈다. "표 안 사도 구경하는 방법이 다 있다카이. 내만 따라와봐레이." 대열이는 서커스 천막 안을 몰래 들어갈 수 있는 길을 알았다. 서커스가 올 때마다 몇번 성공한 적이 있어 따라나서긴 했지만 들킬까 봐 간이 콩알만 해진 나는 쭈뼛거렸다. 서커스장 입구에 표를 산 사람들이 길게 줄을 지어 서서 입장하는 동안 우린 천막 뒤로 돌아가 몰래 들어가는 것이었다.
천막 안을 들어서면 별천지가 벌어졌다. 그네를 타고 공중을 자유자재로 나는 사람들, 몸이 유연하다 못해 엿가락처럼 구부러지는 사람, 수십 개의 막대기 위에 돌아가는 접시들, 외발 자전거 위에서 부리는 갖가지 재주, 외줄 위에서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아슬아슬한 묘기들이 펼쳐졌다. 사람들은 입을 다물지 못하고 그 별스럽고 신기하기만한 묘기를 구경했다.
"식초를 매일 한 병씩 마시면 몸을 엿가락처럼 마음대로 구부릴 수 있다카더라." "고아들을 데려다가 훈련을 시켜서 서커스 단원으로 키운다카데. 갸들이 불쌍타!" 서커스를 보고 오면 사람들 사이엔 온갖 카더라 통신이 오고 갔다. 우리와는 별세계 사람처럼 여겨지는 서커스 단원들은 동경의 대상이기도 했고 안쓰러움의 대상이기도 했다.
앞집 사는 대열이는 내 둘도 없는 친구였다. 우리 둘은 매일 붙어 다녀 대열이 엄마와 우리 엄마는 "너거는 나중에 커서 신랑각시 될라카나" 하고 놀려댔다.
대열이는 할매랑 엄마, 아부지, 남동생 둘이랑 마당이 넓은 집에서 살았다. 그 마당 넓은 집에 들어서면 마루가 늘 반들반들 윤이 났다.
대열이 할매는 무섭기로 동네에 소문이 나있었다. 걸핏하면 사람들에게 큰소리에 삿대질을 해대곤 했다. 엄마 말로는 아들을 셋이나 낳아준 며느리인데도 할매가 며느리를 어찌나 미워하는지 매일 구박하고 욕을 해댄다고 했다. 어떤 추운 겨울날엔 대열이 할매가 어린 손자들을 혼내고는 발가 벗겨서 대문 밖에 세워 놓은 적도 있었다. 울 엄마는 오들오들 떨며 대문 밖에 서있는 세 남자애들을 얼른 우리 집으로 델꼬와 담요로 감싸서 작은 방 아랫목에 숨겨주기도 했다. 대열이 엄마는 가끔 그 할매한테 머리채를 잡히기도 했다. 그래도 착한 아줌마는 "어무이요, 와이카시는교" 라고만 할 뿐 대들지도 못했다.
대열이 동생 상열이는 무지 짓궂어서 나랑 오빠를 많이 괴롭혔다. 내가 울며 들어오면 정의의 사나이인 내 남동생은 원수를 갚아준다고 씩씩대며 연탄재를 들고 가 그 집 마당에 집어 던지곤 했다. 하얀 시멘트 마당에 연탄재 세례가 퍼부어지면 할매는 소리소리 지르며 달려 나오곤 했지만 발이 빠른 동생은 벌써 달아나고 없었다. 그 사나운 대열이 할매도 내 동생을 당해내진 못했다.
대열이는 친구들과 편을 갈라 놀 때는 꼭 내 편이 되었고 나를 골리는 친구에겐 든든한 지킴이가 돼주었다. 대열이와 내동생 덕분에 날 함부로 놀릴 수 있는 아이들은 없었다. 우린 저녁나절이면 소독차가 내뿜는 하얀 연기를 쫓아 숨이 턱에 닿을 때까지 뛰어다녔다. 저녁을 먹고 어두워지면 동네 아이들과 희미한 전신주 가로등 아래 모여 '우리집에 왜 왔니' 놀이를 하거나 이병 놀이를 한다고 얄궂은 옷을 입고 골목골목을 누볐다. 빵께이(소꿉놀이)를 유난히 좋아하는 나를 위해 대열이는 가게 앞에 버려진 사이다병 뚜껑을 모아 주곤 했다.
내가 초등학교를 들어가고 얼마 안돼서 대열이네는 이사를 갔다. 동네 아줌마들 말로는 대열이 할매가 어떤 여자를 데리고 와 대열이 엄마를 쫓아내고 아들과 살림을 차리게 했다고 했다. 그 후에 새 여자도 할매가 구박을 해 집을 나가고 대열이 아부지는 병으로 죽고 결국 할매가 혼자서 손주 셋을 키운다고 했다. 다 늙어 허리가 꼬부라진 대열이 할매는 우리 성당에 나오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못된 할매가 지옥 갈까 봐 무서워 죽기 전에 천당 가려고 성당을 나온다고 쑤군댔다.
중학생이던 어느 날 우연히 철뚝길 앞에서 대열이와 마주쳤다. 그동안 나는 대열이가 가끔 궁금하기도 하고 엄마 아부지 없이 할매 밑에서 어찌 사나 걱정도 되었었다. 그런데 우연히 마주친 우리는 사춘기 소년과 소녀였고 쑥스러워 서로 말 한마디 제대로 못하고 그냥 지나쳤다. 마음 속에 일던 그 많은 질문과 걱정을 한마디 표현도 못한 게 내내 후회스러웠다.
내가 중학교 졸업할 즈음의 어느 날 엄마는 대열이 엄마 소식을 전했다. 대열이 엄마가 그때 집에서 쫓겨난 후 여러 식당을 전전하며 허드렛일을 하며 살다가 암에 걸려 죽었다고 했다. 아이들이 보고 싶어 애태우다 혼자 쓸쓸히 갔다고 했다. 살림 잘하고 착하디 착하던 대열이 엄마가 가엾어 엄마는 우셨다.
대열이 할매는 자신이 저지른 일을 후회 했을까. 동네 사람들 말마따나 벌을 받아 아들도 죽고, 며느리도 죽고, 말년에 혼자서 어린 손주들을 키우며 살게 된 걸까. 그렇다면 대열이와 동생들은 무슨 죄를 지어서 엄마 아부지를 다 잃었을까. 아무리 나쁜 짓을 해도 성당에 나오면 천당에 가는걸까. 그 할매가 일찍 성당에 나와서 착한 사람이 되었으면 대열이도 엄마랑 같이 행복하게 살지 않았을까. 어린 내 마음에 일던 갖가지 상념들이 대열이네 집 마당에서 깨어 부서지던 하얀 연탄재처럼 아프게 부서져 내리곤 했다.
눈이 크고 착하던 내 친구 대열이는 어찌 살았을까.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