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의 기억
재택근무가 딱 적성이라던 남편이 몇 달 동안의 집콕 생활이 지치는지 노동절 연휴에는 어디로든 떠나자 한다. 멀지않은 시에라네바다 산맥 서부에 있는 요세미티 국립공원을 가보기로 했다. 코로나 19 여파로 미국국립공원들은 인원을 제한해 예약제로 입장을 허용한다고 한다.
비숍에서 하룻밤을 자고 풍광이 뛰어나다는 120번 도로를 따라 들어가기로 했다. 120번 길은 9월 중순이 지나면 눈 때문에 길이 통제 되므로 늦은 봄부터 여름이 아니면 진입이 어려운 곳이다. 최근의 산불과 바이러스 등 여러가지 염려로 망설였던 떠남이 일단 차를 몰고 나서니 모든 근심과 걱정이 뒤로 남겨진다. 염려와 집착으로부터의 떠남, 여행이 주는 묘미다.
요세미티 계곡은 100만여년의 시간을 거쳐 빙하 침식으로 만들어진 자연의 경이로운 작품이다. 요세미티란 이 지역을 살던 부족 이름이었고 호전적인 이들을 주변 부족들은 `죽이는 자들(Those who kill)`이란 뜻의 요세미티(Yos s e`meti)라고 불렀다. 원래 원주민들은 계곡 벽면이 마치 곰이 입을 벌리는 모습처럼 보인다 해서 `거대한 입' 이라는 뜻의 아우니(Awooni) 혹은 아와니(Ahwahnee)라고 불렀다한다. 불행히도 시에라 네바다 산맥에서 금광이 발견되면서 원주민과 백인 간에 마리포사 전쟁이 발발하고 계곡은 결국 백인들 손아귀에 들어갔다.
여섯시간 사막을 달려 하룻밤 묵을 비숍(Bishop)에 도착했다. RV 차량이 유난히 많이 띈다. 바이러스로 갇혔던 사람들이 자연을 찾아 너도나도 집을 나섰나 보다. 드넓은 아메리카 대륙은 RV여행을 하기 제격이다. 정처 없이 달리다 마음에 드는 곳에 차를 세워 주식을 해결할 수 있으니 진화된 21세기 유목민 생활이다.
유난히 더운 올해 캘리포니아엔 곳곳에 산불도 늘어나 기록을 세우고 있다. 바이러스에, 산불에, 이상고온에, 지구가 돌봐달라며 끈임없이 신호를 보내고 있다. 인간은 언제까지 외면하며 앞으로만 달려갈 것인가. 편치 않은 마음을 달래며 내일을 위해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이른 아침 비숍에서 리바이닝( Lee Vining)을 향해 달리는 산과 들은 안개에 덮여 베일에 싸인 신부처럼 신비롭다. 안개로 가려진 태양은 눈을 찌르는 강렬함이 없이 붉은 빛만 겨우 내비친다. 안개란 필터가 덮이니 쳐다보기조차 어렵던 태양빛이 마주 봐도 될 만큼 부드러워졌다. 인간도 모두 필터를 하나씩 끼워주면 이리 부드러워지려나.
차창을 열고 신선한 아침 공기를 맞는다. 어제부터 다시 올라간 수은주가 비숍은 화씨 110도 요세미티도 90도가 넘을 거라 한다. 기온이 아무리 올라 대지를 달구어도 계절의 오고 감을 막진 못하는지 나무들은 이미 가을맞이 준비를 하고 있다. 한두 주 후면 찾아올 가을은 대지가 뜨거웠던 이 순간을 또 까맣게 잊게 할 것이다. 라디오에선 대학시절 음악감상실까지 찾아가며 열정적으로 듣던 음악이 흘러나온다. 인생의 가을 또한 언제 그렇게 열정적이고 뜨거웠던 시절이 있었던가 기억조차 흐리게 만든다.
준레잌을 지난다. 395번 길은 짙푸른 소나무 숲이 사계절을 변함없이 초록으로 버티고 섰다. 군데군데 나이 든 소나무들이 젊은 소나무에 자리를 내어주고 죽어간다. 오랜 세월을 지켜온 나무도 다음 세대에게 자리를 내어줄 때임을 알고 저리 떠나는 것인가. '떠나야 할 때를 아는 사람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란 말이 왠지 쓸쓸하게 느껴지는 건 은퇴를 앞둔 나이 탓이려나. 나무의 늙음은 낡음이나 쇠퇴가 아니라 완성이라 했다. 그러니 늙은 나무의 쓰러짐은 슬프다. 하나의 완성된 세계가 사라지는 것이므로.
120번 하이웨이로 접어들자 풍광이 확연히 달라진다. 산세는 드높고 굽이굽이 바위 절벽에 폭포가 쏟아져 내린다. 이따금씩 차를 세워 멀리 펼쳐지는 웅장한 계곡을 마음에 품어 본다. 태초의 지구의 모습이 날것 그대로 다가온다. 창조한 세상을 돌아보며 '보기에 참 좋다'고 한 하느님의 마음을 헤아려 본다. 긴 작업을 끝내고 마음에 드는 작품을 바라보는 대 예술가의 흡족한 심정이 그의 창조물에서 읽혀진다.
요세미티 동쪽 진입로인 티오가 패스 입구(Tioga pass Enterance) 매표소가 나온다. 한산할 줄 알았는데 차들이 줄줄이 이어져 있다. 일일이 예약한 입장권을 확인하고 컴퓨터로 이름까지 확인한 후에야 입장이 가능했다. 입장권을 미리 예약하지 못한 차량은 아쉽게도 차를 돌려나간다. 미리 준비하지 못한 댓가가 크다. 입장까지 40분 걸렸다. 코비드19로 인해 입장인원을 반만 받으니 그나마 빠른 거라며 곰돌이 모양 마스크를 쓴 안내대 아저씨가 웃는다. 올해는 요세미티 곰을 볼 수 있으려나 했는데 입구에서 만난 셈이다.
매표소를 벗어나자 끝없는 솔숲이 펼쳐진다. 어퍼 파인 캠핑 사이트(Upper pine camping site) 까지 55마일 걸린다고 나온다. 사진을 찍으려 길가에 차를 세우니 도보 여행자로 보이는 부녀가 걷고 있다. 오레곤에서 온 어니라고 했다. 딸과 함께 론파인(Lone Pine)에서 램버트 돔(Lambert Dome)까지 존 뮤어 트레일을 따라 22일간을 걸어오고 있는 중이란다. 먼지 가득한 신발과 배낭이 그동안의 험난한 여정을 말해준다.
타나야 호수( Tanaya lake) 에선 한 청년이 보트에 바람을 넣고 있다. 어제 친구가 호수 안쪽에서 송어 여덟마리를 낚았다며 자기에게도 행운이 따르길 빌어달라며 보트를 띄운다. 산이 호수에 비쳐 배가 산속으로 노 저어 가는 듯하다. 산속에서 곰이라도 낚을려나. 문득 바라본 서쪽하늘이 흐리다.
옴스테드 포인트( Olmstead point) 가까이의 바위들은 흰색에 가까워 눈이 덮인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산모퉁이를 돌아서니 멀리 연기가 솟아오르고 있다. 산불이다. 떠나오기 한 주 전 산불이 진화돼서 120번 하이웨이를 다시 열었다 들었는데 새로운 산불이 치솟고 있다. 공기에 탄내가 묻어난다.
숲은 자연적으로 발생한 산불로 타고 꺼짐을 반복하면서 새 숲이 탄생된다고 한다. 오랜 세월 지켜온 자리를 내주려 제 몸을 태워 새로운 세대를 키워내는 나무들, 가시고기의 삶이다. 죽음의 고통없이 탄생은 없다. 죽고 또 죽고, 나고 또 거듭나는 과정을 통해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찾아가는 것이 삶인 것처럼 숲도 인간도 그렇게 깊어 간다. 독야청청할 수 있는 피조물은 없음이다. 천년만년 살 것처럼 제 것만 챙기는 인간의 숲은 자연의 숲에 한 수 아래다.
불길이 한차례 지나간 숲이 보인다. 뜨거운 불길을 끝까지 버텨낸 나무와 버티지 못해 타버린 나무들이 함께 서있다. 그 사이로 어린나무들이 빠끔히 머리를 내밀며 자란다. 한때 하늘을 찌를 듯 자라던 나무도 어느새 희나리가 되어 누워있다. 숲은 삶과 죽음이, 버팀과 포기가 서로 어깨를 나란히 하며 공존한다.
예상보다 늦은 3시경에 어퍼 파인 캠핑장에 도착했다. 계곡 깊이 자리한 캠핑장은 삼면이 거대한 화강암이 병풍처럼 둘러있고 솔숲이 하늘로 뻗어있다. 친구들과 온 중국인, 가족과 온 히스패닉, 혼자 온 백인,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묵는다. 아이들은 자전거로 숲을 달리며 웃음을 날린다. 건너편엔 기타를 퉁기며 분위기를 돋우는 히피 머리의 젊은이가 보이고 병따개를 빌리러 온 백인 아저씨가 반가이 인사를 건넨다. 처음 보는 이에게도 환한 웃음이 오고간다. 자연 안에선 낯선 이도 가족이 된다. 인간이 아무리 깽판을 쳐 상처를 주어도 자연은 넉넉한 팔을 벌려 인간을 받아준다. 어미의 품을 자연에서 느낀다.
그러고 보니 남편과 단둘이 캠핑하는 것이 처음이다. 가족캠핑은 미국에 와서야 시작했으니 항상 아이들이나 이웃과 함께였다. 떠나오기 전 아이들에게 함께 가지 않으려나 러브콜을 했건만 이제 성인이 되어 직장생활을 하는 아이들이 엄마 아빠랑 캠핑을 가는 게 쉬울 턱이 없다. 아이들과 친구와 웃고 떠드는 캠핑도 좋지만 둘만의 캠핑은 조용하고 아늑한 맛이 나서 또한 좋다. 준비조차 소박하다.
텐트를 치고 간단히 이른 저녁을 먹고 미러 레이크 트레일 (Mirror lake Trail)을 걸었다. 하프돔이 물 위에 비친다는 미러 레이크엔 물은 간데없고 호수는 바닥을 드러낸 체 모래만 가득하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를 닮은 청년이 반가이 인사를 건넨다. 해마다 요세미티를 방문하는데 이 호수에 물이 없는 건 처음이라 한다. 탱스기빙 때는 터키를 구워 온가족이 함께 오기도 한단다. 대자연 속에서의 추수감사 축제라니 멋지다. 금발을 뒤로 빗어 넘긴 디카프리오가 우리 부부 사진을 찍어주고 우리도 그 가족을 찍어주었다. 잘생긴 그와 함께 찍지 못한 게 아쉬웠다.
어느새 땅거미가 몰려온다. 산에선 빨리 어두워지므로 돌아가고 싶은데 남편이 바로 위에 호수가 하나 더 있다며 마저 보고 가자고 한다. 집채만한 바위가 호수 중앙에 있고 여기도 물이 없다. 트레일 길에 우리 둘만 마지막으로 남았다 생각하니 갑자기 무서움증이 온다. 이러다 보고 싶던 곰이라도 나타날까 더럭 겁이 난다. 예상대로 어둠이 순식간에 몰려왔다. 가져간 헤드라이트를 밝히고 발길을 재촉하지만 돌아갈 길이 멀다. 결국 마구 뛰었다. 땀이 흐르고 숨은 차고 숲은 어둡고 금방이라도 뒤에서 짐승이 덮칠 것 같아 내내 뒤를 돌아보며 달렸다. 갈림길에서 남편은 왼쪽 길이 맞다 하고 나는 오른쪽 길이 맞다 하고 이러다 깜깜한 산속에 조난당하기 알맞을 것 같다. 멀리 캠프 사이트 불빛이 보이자 안도의 숨이 나왔다. 인간의 불빛이 이리도 위안을 줄 줄이야. 등이 땀으로 흠뻑 젖었다. 십년감수했다.
산불이 심해지는지 재가 눈처럼 날린다. 하늘은 잿빛 스모그로 덮여 아쉽게도 별이 쏟아지는 밤을 맞기는 어렵게 됐다. 마스크는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이 아니라 스모그 때문에 써야 할 형편이다. 아이들에게 사진과 문자를 보내니 휴가를 간 게 아니라 재난 현장을 간 것 같다고 염려한다.
모닥불을 피우고 와인 한잔에 오늘의 여정을 내려놓는다. 모닥불을 바라보며 둘이 앉아 아이들 키우던 이야기, 대학시절 이야기, 어린 시절 이야기를 나눈다. 대학시절 만났으니 35년이 넘는 세월을 함께 지냈음에도 아직 할 이야기가 남아있음이 신기하다.
장시간 운전과 혼이 빠지게 산길을 달려 고단했는지 남편은 이내 잠들었다. 집을 나서면 잠을 잘 이루지 못하는 나는 역시나 온갖 상상을 하느라 바로 잠들지 못한다. 이런 내게 남편은 종종 '함부로 상상하지 말라'는 군대에서의 규칙을 말한다. 깜깜한 밤 홀로 보초를 서자면 온갖 무서운 상상이 들어 사고가 날때도 있어 나온 말이란다.
모두들 잠든 고요한 숲에서 나뭇잎 떨어지는 소리에도 촉각이 곤두선다. 몇 년 전 요세미티에서 캠핑을 하다 자는 사이 나무가 쓰러져 목숨을 잃은 소년도 생각이 나고, 행여 곰이 나타나 텐트를 덮치지 않을지, 산불이 밤새 이 곳까지 번지진 않을지 온갖 상상이 꼬리를 물고 일어난다. 몸은 텐트 안에 있으면서 귀는 텐트 밖으로 안테나를 바짝 세우고 있다. 상상을 멈출 수 없는 것도 병이다.
그럭저럭 시간이 지나니 비로소 염려는 내려지고 푸근한 자연에 안겨있음이 느껴진다. 어둠이 내린 숲 속엔 자연의 소리만 남았다. 솔가지를 흔드는 바람소리, 솔잎이 텐트 위로 떨어지는 소리와 부엉이 소리, 계곡물 흐르는 소리가 모여 하모니를 이룬다. 숲에 밤이 깊어간다.
새벽녘 새소리에 잠을 깼다. 텐트 밖을 나와보니 여명 속에 새들은 벌써 이른 아침을 준비하고 있다. 알싸한 새벽 공기에 한껏 숨을 들이켜본다. 공기엔 아직도 탄내가 묻어난다. 산불이 다소 진정되었는지 날리던 재는 잠잠해졌다. 밤새 다람쥐며 사슴이며 들짐승들은 불 속에서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살길을 찾느라 얼마나 분주했을까. 안전한 잠자리 안에서도 내 몸뚱이 하나 염려하며 밤새 뒤척인 게 부끄러워진다.
어제 가려다 시간이 늦어 못 간 미스트 트레일을 오늘 걸으려 한다. 글레이셔 포인트까지 들렀다가 집으로 출발하려면 일찍 서둘러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