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7.29
공항에는 수녀님이 마중 나와 계셨다. 먼지를 풀풀 날리며 달리는 차 안에서 페루의 첫 모습을 눈에 담으려 애썼다. 리마가 페루의 수도임에도 건물은 낡고 옆집 담과 이어 지은 벽돌건물이 대부분이었는데 건물 앞쪽만 페인트칠이 되어있었다. 개발도상국이었던 한국의 옛 모습이 떠올랐다. 무허가와 낡은 집이 많던 시절, 철로변에 집들이 좋지 않은 인상을 준다며 철거하든지 페인트를 칠해 겉모습이라도 깔끔하게 하라며 동사무소 직원들이 주민을 설득하거나 윽박지르던 시절이 있었다. 리마시내에 저 앞쪽만 번드르르한 벽돌집들도 그런 정책의 일환이었을까.
40여분 남짓 달려 도착한 수녀원은 비아 엘살바도르 지역에 위치했다. 리마의 도시 빈민촌이다. 길에는 개들이 목줄 없이 자유로이 다니고 정겨운 개똥까지 여기저기 널려 있다. 신발에 개똥을 묻히지 않으려면 피해 다니며 걸어야했다. 동네 입구에는 쓰레기가 한가득 쌓여있고 전봇대엔 전깃줄이 어지럽게 엉켜있다. 옹기종기 빈틈없이 들어선 판잣집들이 산 위까지 이어진다. 무허가 건물이 대다수라 했다. 달동네로 오르는 계단이 아득해 보인다.
수녀님의 안내로 숙소로 쓸 작은 수녀원에 들어섰다. 수녀원은 예전엔 지붕에 비가 새고 건물 바닥은 흙바닥이었다는데 그동안 보내준 후원금으로 공사를 해 다소 말끔해 졌다고 한다. 마당에 심은 나무와 꽃은 흙먼지로 가득했다. 동네 앞길도 작년까지 흙길이었는데 올해 시멘트 포장을 해서 그나마 먼지가 덜하다했다.
페루에는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도회 분원이 세 곳 인데 산간벽지와 도시 빈민가에 수도자가 파견되어 봉사하고 있다. 이곳 비아지역엔 70대 후반의 글라리사 수녀님과 젊은 리사 수녀님이 일하고 계셨다. 수녀님은 신자들 돌보는 일 뿐 아니라 일하러 가는 엄마들을 위해 동네 아이들을 맡아 먹이고 교육하는 일까지 하고 계셨다.
우리가 머물 숙소는 식당과 창고 그리고 두 사람이 겨우 비집고 들어가는 세 개의 수녀원 방이 전부였다. 21명의 대 인원이 온다는 소식에 수녀님은 잠자리가 걱정되어 고민이 많으셨다 한다. 여기저기 수소문해 창고와 식당에 쇠막대기와 천으로 임시 침상을 만들어 두셨다.
짐을 풀고 의료용품을 20여분 거리의 진료실로 쓸 성당 강당으로 날랐다. 강당은 의자와 각종 직기가 널브러져 썰렁하고 먼지가 풀풀 날렸다. 진료실은 내과 한의과 치과 검안과 약방으로 나누기로 하고 탁자와 침상을 옮기고 칸막이를 세우고 약을 정리했다. 잠시 만에 강당은 제법 진료실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저녁 식사 후 인사 나눔 자리에 모이자 핸드폰 마다 알람이 요란하게 울리기 시작했다. 캄차카반도에 진도8의 지진이 일어나 이곳에 쓰나미 경고가 뜬 것이다. 이어서 친지들의 염려 메세지가 오기 시작했다. 잠자리나 화장실은 불편하고 열악했다. 수녀님까지 23명이 샤워실 3개를 나눠 써야했다. 두 명이 샤워하자 더운물이 바닥나 찬물에 머리를 감았다. 겨울 저녁 날씨라 한기가 돌았다.
긴 하루를 끝내고 마침내 잠자리에 들었을 때 과연 앞으로의 일정을 무사히 마칠 수 있을지, 오늘밤 당장 쓰나미가 몰려오지는 않을지 착잡했다. 낯선 곳 불편한 곳에 누워 피곤함에도 쉬 잠들지 못하고 뒤척였다. 그저 주님께 모든 걸 맡기나이다 기도 외엔 할 게 없었다. 동네 개들의 컹컹대는 소리를 들으며 어느새 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