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7.30
첫날 너무나 고단해 일찍 일어나지 못할 것 같았는데 신기하게도 새벽 4시에 잠이 깼다. 캘리포니아 시간으로 새벽 2시인 셈이다. 룸메이트인 소피아자매는 일어나자마자 아침 준비를 위해 새벽같이 빵집에 빵을 사러 나갔다.
가랑비가 가늘게 내리고 있었다. 식당에 모여 성무일도를 먼저 바쳤다. 부엌을 담당한 자매들 덕에 풍성한 식탁이 차려졌다. 처음 먹어보는 꽈리란 과일에 페루감자, 페루빵이 있었다. 페루에서 생산되는 감자 종류만도 삼천 종이 넘고 옥수수도 오백 종류에 이른다한다. 처음 보는 노란 잉카콜라도 인기 만점이었다. 식사 후 각자 맡은 바 임무에 들어가기 전 몸을 풀어야 한다고 베드로 형제를 따라 체조를 했다.
아침 9시에 시작된 진료엔 많은 환자들이 왔다. 스페인어가 안 되는 의료진을 위해 몇 분이 통역을 도와줬다. 나랑 짝이 된 에블린은 독일아가씨였는데 적십자사를 통해 일 년간 페루에 파견되 병원 자원봉사를 하고 있단다. 통역을 해주느라 오전내내 진땀을 뺐는데도 그저 환한 웃음을 띠는 예쁜 아가씨였다.
최연소 봉사자인 열 살짜리 에블린과 라파엘은 자기 소개시간에 뭐든지 시켜만 주면 열심히 하겠다해서 어른들을 놀라게 했다. 환자 안내부터 정리에 청소까지 얼마나 야무지게 도우는지 덕분에 진료가 순조롭게 돌아갔다. 예쁜 두 에블린을 사진에 담았다. 성형외과의인 아브라함과 마이클형제는 온가족이 함께 왔다. 몸소 봉사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부모 아래서 자라는 아이들의 미래가 환히 보였다.
고등학생들은 스스로 일을 찾아 척척 해냈다. 반항심으로 가득한 사춘기가 아닌 봉사를 통해 자신의 미래를 설계하고 진지하게 임하는 청소년을 바라보는 마음이 흐뭇했다. 그중 로사는 몇 번의 의료선교를 통해 메디컬 필드에서 일해야겠다는 결심을 굳히는 중이라 했다. 팀과 벤은 맏형으로서 아이들을 챙기고 설거지까지 도맡는 멋짐을 보여주었다. 비비안은 조용히 다른 사람들을 도왔다. 아이들은 오전에는 진료를 도우고 오후에는 수녀원으로 찾아오는 동네 아이들과 종이접기와 놀이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불편한 치과용 기기뿐임에도 치과의인 임부제님과 가브리엘 형제는 발치수술까지 거뜬히 감당했다. 베드로 형제는 검안기기와 안경테까지 한가득 챙겨와 환자들의 눈 검진에 여념 없었다. 아들인 팀은 옆에서 아빠를 도왔다. 부자지간에 봉사하는 모습 또한 아름다웠다. 글라라는 옆방에서 환자들에게 어울리는 안경테를 꼼꼼히 골라주고 있었다.
소피아와 카타리나와 리사수녀님, 지원차 합류하신 스페랄다 수녀님은 어느 틈에 치과보조사가 되어 있었다. 기기가 수시로 꺼져 힘든 상황임에도 몇 시간을 서 있어야하는 보조역할에 최선을 다했다. 한의 쪽이 인기가 높아 한의사 베드로 형제는한숨 돌릴 새 없이 침 놓기에 바빴다. 의료선교 때 마다 약국을 담당한 폴은 약준비부터 배분까지 능숙하게 처리했다. 첫날부터 강행군의 스케줄임에도 70대인 치과의 임부제님과 의사 레지나 자매님은 끄떡없이 노장의 위력을 발휘했다. 늦게 합류한 남편 사도요한은 맥가이버란 별명답게 수녀원 구석구석 고장난 곳을 고쳐주었다.
묵묵히 일하는 봉사자들에게서 병자들을 치료하는 예수님의 모습이 보였다. 그들은 환자를 내 몸보다 더 사랑하는 것 같았다. 먼 길 달려와 피곤함에도 환자를 대하자 에너지가 넘쳤다. 글라리사수녀님은 총지휘를 맡아 가장 일찍 일어나 마지막까지 마무리하느라 여념 없었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도회 소속이신 수녀님들은 수도회 이름처럼 영원한 도움의 삶을 살고 계셨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미사를 드리고 각자 첫 진료일의 감상을 나눴다. 늦은 시각까지 꼬마들은 졸린 눈을 껌뻑대면서도 끝까지 함께 했다. 적재적소에 각자의 재능을 발휘하게 해주신 하느님께 감사인사로 하루를 마무리했다. 오늘 밤은 동네 개들도 조용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