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7.31
이른 아침부터 수녀원 앞길에 사람들이 빗자루로 도로 청소를 하고 있다.
‘새벽종이 울렸네 새 아침이 밝았네 너도나도 일어나 새마을을 만드세~’
한국의 새마을 운동이 떠올랐다. 동네 스피커로 노래가 울려 퍼지면 골목마다 이웃들이 빗자루를 들고 나와 쓸곤 했었다. 페루정부가 한국의 새마을 운동을 도입하기라도 한건가. 덕분에 개똥이 말끔히 치워졌다.
알록달록한 꼬마 모토택시들이 이른 아침부터 바쁘게 다녔다. 삼륜 오토바이를 개조해 만든 택시였다. 마치 놀이동산에라도 온 냥 조그만 차들이 도로를 휘젓고 다니는 게 귀엽기도 하고 인상적이었다. 모토택시 요금은 일인당 페루돈으로 1솔(1달러가 3.5솔 정도였음)인데 그 좁은 차에 운전수 옆자리까지 끼여 앉아 4명이 탈 수 있었다. 문짝이 떨어져 나간 차도 있고 끈으로 문을 여는 완전 수동식도 있었다. 낡고 위험하지만 가난한 이들의 밥벌이로 큰 역할을 한다고 했다.
신호등이 제대로 없어 사거리에선 먼저 지나가는 차가 임자였다. 사거리엔 버스와 모토택시와 동네 개들까지 뒤섞여 순서 없이 마구 달려 사고가 날까 조마조마했다. 버스 차장은 남자였고 차문을 연 채 달리는 차가 많았다. 한국에서의 학창시절, 차장 아가씨가 버스 문을 탕탕 치며 오라잇 해야 버스가 출발했었다. 만원 버스에 시달리다 내리면 전날 분필까지 칠해 정성껏 빨아 신고간 하얀 운동화에 수많은 발자국이 찍혀 속상해 하곤 했었다. 먼지 날리는 이곳 리마의 여학생들도 하얀 운동화를 신을까.
동네에는 구두수선가게가 많이 보였다. 수선공은 가게 밖에 나와 신발을 꿰매고 있었다. 요즘은 조금 낡으면 새 신발을 사는 시대니 고쳐 신는 알뜰함을 본지 오래다. 빨강파랑 줄전등이 빙글빙글 도는 이발소등이 달린 이발소도 많이 보였다. 긴 가죽천에 쓱쓱 면도기를 갈아쓰던 예전과 달리 바리깡과 가위로 이발을 하고 있었다. 곳곳이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온 것 같아 향수에 젖기도 했다. 서랍에 넣어둔 어릴적 추억들을 하나하나 꺼내 보는 느낌이랄까.
구멍가게는 철창문을 달고 손님이 밖에서 주문하면 주인이 봉지에 담아 내주는 가게도 있었다. 담장에는 가시철망과 병조각이 박혀있다. 창문마다 쇠창살이 달려있어 응급상황에 빠져나올 수 있을지 염려되었다. 이웃나라 베네수엘라의 경제 붕괴와 정치적 억압으로 많은 난민들이 페루로 넘어오면서 사회적 갈등, 일자리 경쟁력 심화, 범죄 증가로 치안이 많이 불안해졌다 한다. 페루도 예외 없이 인도적 차원에서 보호 해줘야 한다는 의견과 경제 치안문제들이 증가하면서 반대하는 의견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한다.
진료실로 향하는데 성당 앞 언덕에서 시동이 꺼진 짐차를 운전수 혼자 밀며 오르고 있었다. 힘에 겨운지 차가 뒤로 미끄러지고 있는 걸 우리 일행들이 재빨리 달려가 밀어주어 큰 재난을 면할 수 있었다. 난민 문제도 이렇게 힘을 합치면 해결할 현명한 방법이 없을까.
진료실 앞은 일찌감치부터 온 환자들로 북적였다. 동네 개들도 진료를 받고 싶은지 진료실 안을 어슬렁대며 다녔다. 사람들이 쫓아내려하니 아예 진료실 바닥에 드러누워 버텼다. 다음엔 수의사도 동행해야 하려나.
하루 100여명의 환자를 보았더니 저녁엔 피곤과 함께 고질병인 허리가 불편해 걷기가 힘들었다. 내일을 위해 덧나지 않게 쉬라해서 결국 미사를 못가고 남았다. 모두 성당으로 간 후 미사 참례 못한 게 마음에 걸려 누워있기가 불편했다. 부엌에 산더미처럼 쌓인 설거지가 눈에 들어왔다. 모두들 새벽부터 일어나 일하고 미사까지 드리고 돌아오면 피곤할텐데 누군가가 저 설겆이를 해야 했다. 그래 어차피 잠도 안오고 오늘은 마르타가 되어보자. 팔을 걷고 조용히 설겆이를 마쳤다. 설겆이 당번이 오면 우렁각시가 왔다갔나 할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