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8.1
오늘은 지난 이틀간의 경험으로 좀 더 능숙하게 환자를 받을 수 있었다. 전혀 모르던 스페인어도 통역하는 에블린을 통해 적어두어 환자에게 가끔 직접 물어보기도 할 정도가 되었다. 에블린이 이러다 자기 직업을 잃을 것 같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에블린과 며칠 함께 일을 하니 친해져서 나도 모르게 한국말로 말을 걸기도 했다. “모니카, 너 지금 나한테 한국말로 하고 있는거 아냐” 며 에블린이 웃었다. 다음엔 한국말도 공부해 오겠노라 했다.
20세인 에블린은 독일어와 영어에 능통하고 한 해 동안 페루에서 봉사하며 스페인어까지 유창하게 했다. 언어에 천재적 감각이 있는 것 같다고 칭찬하니 자기는 이제 나이 들어서 배우는 게 느리단다. 하하 한참 선배인 내 앞에서 20대가 그런 말을 하다니. 그러나 어린 나이에도 이웃 봉사에 대한 진지한 삶의 태도와 바쁘고 힘들어도 미소로 사람을 대하는 자세는 나이든 나보다 성숙했다.
오전에 바쁜 클리닉을 돕고 오후에는 어제 세례나자매와 아브라함 형제에 이어 닥터 리와 나, 에블린, 안내자 이렇게 넷이서 드디어 기다리던 가정방문진료를 나갔다. 집 밖에 나오지 못할 정도로 상태가 안 좋아 클리닉에도 못오는 환자를 찾아나섰다. 부슬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다.
환자들의 집안 환경은 상상키 어려울 정도로 열악했다. 슬레트로 대충 지붕을 얹어 하늘이 훤히 보이는 집에, 이웃집 담벼락 한 귀퉁이를 나무 판대기로 막아 침상하나 겨우 놓고 움직이지 못하는 남편과 사는 여성, 당뇨로 눈이 멀게 된 여성, 온몸이 병들고 마비된 채 가족 없이 이웃의 도움으로 근근이 연명하는 분도 있었다.
병원을 갈 수도 움직일 수도 없는 환자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게 많지 않아 안타까웠다. 그저 영양제와 비타민 종류를 나눠줄 수 있을 뿐이어서 무거운 마음으로 발길을 돌려야했다. 손을 잡아주고 안아주고 말 한마디 건네줄 뿐임에도 의료진이 직접 집을 방문해준 것만도 고마워하며 몇 번이나 인사했다. 환자의 손을 잡고 함께 기도했다. 하느님이 이분들을 특별히 보살펴 주시길.
진료실로 돌아오니 사고가 나 있었다 치과진료를 받고 나오던 한 여성이 계단을 내려가다 빗물 젖은 계단에 미끄러지며 넘어져 머리를 다쳐 피를 흘렸다한다. 달려가 보니 진료실 한편에 누워 머리에 압박거즈를 대고 누워 있었다. 겁먹은 여성은 무서워 떨고 머리 통증을 호소했다. 혈압을 재니 한참 높아있다. 응급처치를 한 후 가족에게 연락해 오라하고 만약에 있을지도 모를 다른 상처여부를 검사하기 위해 가까운 보건소병원으로 보냈다. 부디 다른 탈이 없길 바랐다.
저녁 미사중 앙해 가브리엘 본당 신부님은 신자들에게 이런저런 말씀을 많이 하느라 미사시간이 한 시간 반을 넘기고 있었다. 스페인어를 알아들을 수도 없으니 지루했다. 종일 일해 피곤한데 일찍 미사를 안끝내시고 저리 말씀이 많을까 푸념이 나왔다. 숙소로 오는 길에 리사 수녀님 말씀을 들으니 이곳 신자들은 미사 중에도 껌씹고 음료수 마시고 떠들기가 일쑤였단다. 평소 미사 빠지기가 다반사고 가족의 세례나 결혼식에만 성당에 온 친척까지 몰려와 잔치하듯 북적대다 가는 분위기란다. 신부님이 이렇게 잔소리 교육을 자주해 그나마 많이 좋아졌단다.
가난한 동네인 비아지역의 도로가 의외로 넓고 잘 닦여져 있어 물어보니 이 지역은 50여년 전에 개발되었는데 한 외국신부님이 도시계획을 해 도로를 미국처럼 구획지어 반듯하고 넓게 닦았다 한다. 그 옛날 한국의 달동네는 소방도로가 없어 불이 나면 불자동차 진입이 불가능해 삽시간에 옆집으로 번지곤 했다. 비아 지역은 앞서 내다보신 신부님 덕분에 그런 사고는 없을 것 같아 감사했다.
수녀원을 향해 걸어가는 밤길, 멀리 산동네에 집집마다 켜진 전등불이 별처럼 빛났다. 저 등불마다 가족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을 것이다. 어릴 적 가난했어도 온 가족이 한방에 모여앉아 아랫목 다툼을 해가며 도란도란 지내던 때가 있었다. 저들도 서로 오손도손 정답기를 빌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