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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연 Oct 10. 2021

유부녀를 설레게 하는

유혹의 클럽하우스

나는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22살 때 처음으로 해외여행을 가게 됐는데 나 홀로 유럽의 4개국으로 떠난 배낭여행이었다. 그 당시 배낭여행, 어학연수, 워킹홀리데이 등이 유행이었는데 어느 날 아빠가 대뜸 "네가 가고 싶은 곳 어디든, 해외로 여행을 보내줄게. 단 너 혼자 다녀와야 해. 여행사 끼지 말고, 혼자 계획해서 다녀오는 거야. 자신 없음 말고." 이러는 게 아닌가. 아, 우리 아빠는 예나 지금이나 이렇게나 제멋대로인 사람이었구나.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그걸 내가 닮았다.)


유럽을 총망라했다는 최신판의 두툼한 가이드북을 하나 사고, 배낭여행 카페에 가입하며 두세 달 동안 열심히 공부를 했다. 루트를 짜고 비행기표를 예약하고 숙소를 리스트업하고 2번의 경유를 거쳐 거의 24시간 만에 스페인의 마드리드에 도착했다. 스페인-이탈리아-프랑스-영국을 돌아보고 한국에 왔으며 그 이후로 여행의 매력에 빠졌다. 그 후 몇 번의 해외여행을 했고 26살에는 미국으로 가서 인생 최고로 재미있는 시간을 보낸 뒤 1년 반 후에 돌아왔다. 그때 '서른 살 까지 내 인생에 큰 변화가 없으면 나는 미국으로 가서 살아야지.' 했는데, 그 서른에 남편과 결혼을 했다.(왜 그랬을까!) 그렇게 난 새로운 세상이 좋았고 겁이 없었다. 그리고 그때는 진짜 1도 알지 못했다. 다른 나라로의 여행이 이렇게 어려운 일이 될 것 이라고는 말이다.




클럽하우스에서 만난 N님은 배낭을 짊어지고 백패킹을 하는 여행의 순간을 공유한다. 9월 중순에 시작된 이 여행은 2월 말까지 예정되어 있다고 한다. 국토 대장정을 하듯 우리나라를 도보로 여행 중인데 우리나라에도 아름다운 곳이 무척이나 많다며 걸으며 보이는 풍경이나 좋은 장소 등을 소개해 주기도 한다. 나도 걷는 거 좋아하는데. 아, 부럽다.


나는 버킷리스트에 대해 회의적인 사람이다. 그래도 꼭 이루고 싶은 꿈이 하나 있는데 바로 산티아고, 그 길을 꼭 한 번쯤은 걷고 싶다. 산티아고를 알게 된 건 몇 해 전 국회의원 심상정이 한 예능 프로에 나와 순례길을 걷는 방송을 보고 나서이다. 그 고독하고도 아름다운 길에 매료되어 산티아고를 다녀온 사람들이 쓴 책을 찾아 읽었고(책은 언제나 대리 만족의 최고치를 선사해 준다. 모든 경험을 다 하면서 살 수 없다. 이럴 때 책은 꼭 필요한 물 한 모금 같은 존재가 된다.) 밴드와 카페에 가입을 했다. 언제 갈 수 있을지도 모르면서 그렇게 가끔 설레는 기분으로 그 길 위를 걷는 내 모습을 상상하곤 한다.


산티아고 용서의 언덕


산티아고에 누구와 함께 가고 싶나고? 혼자 가도 좋겠지만 다른 누군가와 간다면 나의 아이들이 청춘의 한가운데서 방황하고 있을 때 뒷목을 끌고 데려가고 싶다. 걸으면서 정신 좀 차리라고. 세상이 얼마나 넓은지 한번 몸소 느껴보라고 말이다. 또 다른 한명은 초등학교 꼬마 시절에 만나 여전히 따뜻하게 내 옆에 남아있는 친구 J이다. 이미 J에게 말해 두었다. 이 길을 꼭 나와 갈 테이니 미리미리 체력 좀 길러두라고. J는 웃으면서 그랬으면 정말 좋겠다고 했는데, 난 진심이다. 꼭 너와 함께 산티아고 길을 걸을 것이다. 그리고 남편은... 넣어두겠다. 남편이랑은 쉴 수 있는 곳, 호사스러운 사치를 누릴 수 있는 리조트나 호텔이 있는 휴양지를 가야지 안 싸우고 돌아오지 싶다.




영화「파리로 가는 길 Paris Can Wait」를 재미있게 보고 나서 카카오 음(Umm)에 영화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방을 하나 열었다. 그날 대화를 나눈 A는 현재 캐나다에 살고 있으며 이 영화 또한 자신도 재밌게 보았노라 했다. 파리 얘기를 나누다가 A는 포르투갈에 가본 적이 있냐고 물어왔다. 내가 가본 적이 없다고 하자 A는 프로필 사진을 바꾸어 가며 그곳의 풍경과 세상에서 제일 맛있다는 에그타르트도 소개해 주었다. 포르투갈에 가볼 생각은 단 한 번도 하지 못했었는데, 가고 싶다. 포르투갈. 아가 자기 알록달록한 건물들 사이의 골목길을 걸으며 달큼하고 고소한 향기를 따라 원조라는 포르투갈의 디저트인 에그타르트도 맛봐야지.


에그타르트의 원조가 포르투갈 이란다


코로나로 발이 묶여 있으니 여행이 더욱 고파진다. 요즘 여행기에 자주 손이 가는 이유도 이 때문이지 싶다. 김영하의「오래 준비해온 대답」을 읽으니 시칠리아에 가고 싶고, 박재영의「여행 준비의 기술」을 읽고 나서는 구글 맵에 별을 심기 시작했다. 「세계 테마 기행」이나 「걸어서 세계 속으로」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TV 프로그램이다. 


나는 언젠가 떠날 수 있는 그날을 기다리며 세계의 곳곳을 누비고 있는 그 누군가의 이야기를 클럽하우스에서(또는 Umm에서) 듣고 있다. 멋진 그들의 이야기가 나를 설레게 하고 유혹한다. 아, 어쩔 거야 너무 떠나고 싶잖아.


*모든 사진의 출처는 Google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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