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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연 Oct 31. 2022

호주 안의 작은 유럽, 멜버른

하루키는 호주가 '기묘'하다고 했다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시베리아 툰드라 풍경이라든가, 아라비아 사막 풍경에도 꽤 거칠고 초현실적인 부분이 있었지만, 오랜 시간 주의 깊게 보다 보면 나름대로 이해가 갔다. '이곳은 이런 풍토여서 이렇게 됐구나' 하고. 그러나 오스트레일리아 충경은 다른다. 기본적으로 기묘하다. 한눈에 봐도 기묘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도 기묘하다는 것의 개연성을 찾기가 힘들다. 집중해서 보고 있으면 내가 점점 다른(잘못된) 차원으로 이끌려가는 듯한 기묘하고 초라한 느낌이 든다. 팀 버튼 영화의 한 장면처럼. - 시드니!(무라카미 하루키)



런던 한 달 살기 비용에 대한 무시무시한 댓글이 달린 후 나의 마음은 점차 소심 해지다 시들해져 가는 지경에 이르렀다. 한 달 살기는 그저 이상적인 희망일 뿐이었나.



여러 번 말했다시피 비가 오는 날을 제외하고는 어김없이 아침에 나가 걷는다. 어느 날 건다가 불현듯 '호주?'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왜 인지는 전혀 알 수 없다. 평소 '호주'라는 나라에 대한 관심은 미미했기 때문이다. '한 번쯤은 가보면 좋겠지.'이 정도의 관심으로 '꼭 가보고 싶은 나라'리스트에는 없었다.



영어권 국가이고, 대도시가 있고(나는 자연경관을 보고 경외심을 갖는 쪽보다는 눈과 귀, 입이 즐거운 여행이 좋다.), 우리나라와는 또 다른 이국적인 풍경이 있을 테니 오, 꽤나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으로 돌아와 검색창에 '호주' 두 글자를 쳤다. 오페라 하우스가 있는 호주의 주도인 '시드니' 보다는 '호주 속 작은 유럽'이라는 문화와 예술의 도시 '멜버른'에 더 꽂혔다.



출처 : google 이미지






우리나라와 비슷한 물가를 가지고 있는 '호주'는 확실히 주어진 나의 예산 안에서 한 달 살기가 가능할 것 같았다. '멜버른'의 숙박비는 '런던'과 동일한 조건으로 검색했을 때 200~250만 원 정도로 예산 범위 안에 안착. 두 번째로 큰 도시답게 적당히 즐길 거리나 볼거리도 있으며 서너 가지 흥미로운 데이 투어 상품도 있었다.



딱 하나 걸리는 게 있다면 호주 여행의 적기는 '12월~2월'로 우리나라의 겨울 방학 기간과 딱 겹친다. 보통의 엄마들이라면 손뼉을 딱 치며 '바로 여기야!' 하겠지만 나에게 적절한 시기는 아니었다. 우선, 12개월 적금 만기가 되기도 전에 비용을 써야 한다는 부담과 여행 준비 기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이것은 저렴한 항공편과 가성비 좋은 숙소를 구할 확률이 낮아진다는 뜻이다.)이 마음에 걸렸다.



그런데 때마침 티웨이 항공사에서 '시드니'직항 노선이 생기게 되어 며칠 동안 항공권 1만 원 이벤트를 한다는 것이 아닌가!(오라 오라 하는구나. 일명 '오라병'이라고 합니다.) 이벤트 첫말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10시 땡! 에 맞추어 사이트에 들어갔다. 어버버하고 있는 사이에 만원 항공권은 눈앞에서 새로고침 두 번 만에 사라졌다. 약 열흘의 기간 동안 매일 아침 선착순 열 명에게 행운이 열려있으니 남은 며칠을 노려보기로 했다.(그 뒤로 몇 번 더 시도해 보았으나 만원 항공권은 커녕 날이 살수록 비싸지는 항공권... 역시 그날의 항공권이 제일 싸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었어.)






'호주'는 이십 년 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워킹홀리데이'로 많이 가는 나라인가 보다. 블로그나 책으로 정보를 찾으면 대부분이 워홀 중이거나 유학, 이민자들의 이야기로 아이들과 한 달 살기를 다녀온 경험 글은 적었다. 있다 한들 코로나 전의 기록들이라 조금 아쉬웠다(이 참에 '아이들과 함께한 멜버른 한 달 살기'로 글을 써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루에 사계절 날씨를 모두 경험할 수 있다는 '호주 안의 작은 유럽', '문화와 예술의 도시'라는 멜버른으로 점차 마음이 기울고 있다. 두 아이 이름으로 여행 적금을 따로 들어서 초등 졸업 기념 여행 등의 명목으로 '런던'을 가볼 꿍꿍이는 여전히 마음 한구석에 잘 숨겨두었다.



아무튼 이번 주에는 더 이상 고민 말고 항공권을 따악 끊어야 할 텐데...




by. mon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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