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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러블리모니카 Sep 27. 2020

내키지 않는 소개팅남과 백일만에 결혼까지

2013년 여름, 유난히도 더웠던 날이었다. 대학 동문이고, 회사 후배인 J가 신중하게 제안한 소개팅을 하기 위해 땀이 나는 중에 꾸안꾸(꾸민 듯 안 꾸민 듯) 메이컵을 했다. 그리고  집에서 한 시간 넘게 걸리는 예술의 전당으로 향했다.


예술의 전당 앞 횡단보도에 서 있는데, 소개팅 남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안녕하세요, 지금 어디십니까?" "네 저 횡단보도 앞인데요." 말이 끝나기 무섭게 맞은편에서 그 남자처럼 보이는 사람이 무릎과 허리를 굽혀가며 신나게 손을 흔들고 있었다. 약간 마른 체격, 반질반질한 초콜릿 색 얼굴, 하얀색 바탕에 검은색 잔꽃무늬 프린트된 셔츠, 회색 가죽 서류가방, 회색 바지- 스타일을 훑고 있는데, 자글자글 웃는 주름이 가득한 표정으로 웃고 서 있었다. '왜 저렇게 웃어? 민망하게' 예술의 전당에서 예약되었던 공연을 본 후 근처 근처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그 사람은 처음 만난 나에게 많은 이야기를 쏟아냈다. 자기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자신의 꿈은 무엇인지, 자신의 관심분야는 무엇인지, 여기에 어떻게 나오게 되었는지 등. 호기심이 생기는 부분도 있었지만, 이야기를 들을수록 '아, 이분은 오늘 즐거운 만남으로 끝. 다시 볼일은 없겠다.' 결론이 내려졌다. 너무 진솔했지만, 지나치게 들이대는 것과 지나치게 독특한 것이 탐탁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헤어졌는데, 그날부터 시시때때로 연락이 왔다. 그래서 J에게 "J야, 이 분 자꾸 연락 오는데, 어떡하냐? 그냥 NO라고 말하면 상처 받으실까?"라고 물었다. J는 "언니, 이 오빠 진짜 괜찮아. 이 오빠가 나 좋아하면 내가 결혼하고 싶은 사람이야. 2번만 더 만나보면 안 돼?"라고 말했다. J의 말에 '그래, 혹시 내가 진국을 놓칠지도 모르니깐. 딱 2번만 더 만나 보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두 번째 만남에서도 크게 감동이 없었다.

 

세 번째 만남 장소는 신촌 메가박스 앞이었다. 설국열차가 한창 인기 있을 때여서 사람이 꽤 많았다. 영화관에 들어가 바퀴벌레 장면을 보며 웩웩거리다가 옆을 보니, 그분은 코를 골고 자고 있었다. '헐- 이 사람 진짜 안 되겠다'. 극장을 나와 J에게 톡을 보냈다. 'J야, 이 분 설국열차 보는데 주무시더라. 야 나 감당 안된다 튀어와라!' 그날 하필 소개팅에서 허탕 친 J양과 연남동에서 만났다.  J가 오고 나는 마음을 좀 놓았다. '아 이젠 내가 말 안 해도 된다!' 홍대까지 걸어와 카페에서 빙수를 같이 먹고 헤어질 무렵, 나는 이미 마음을 굳힌 상태였다.  '아 진짜 이분은 더 안 만나도 되겠다' 나는 아름다운 작별을 위해 홍대 3번 출구 앞에서 웃으며 인사를 했다. 그런데 갑자기 그분이 J에게 잠깐만 이라며, 나에게 출구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 가서 이야기를 좀 하자고 했다. "모니카 님, 저는 모니카 님을 계속 만나고 싶습니다.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 '핫하. 왜 이러지? 내 마음이 느껴졌나...?????? 헛핫하.' 표정 관리가 안됐다. 다만 웃으며 "하, 조심히 가세요!"라고 헤어졌다.


다음 날 밤, 그분께 톡을 보냈다. '많이 생각해 봤는데, 님과는 인연이 어려울 것 같아요.' (오래 생각하며 보낸 톡이었는데, 어떻게 적었는지... 기억이 안 난다.)라고 보냈다. 즉답 '이렇게 어려운 답을 해 주셔서 감사해요. 이 마음을 전하기까지 무척 망설이셨을 텐데. 블라블라 블라블라 " 첫 문장은 '오잉 이런 반응은 멍미?' 했지만 그 뒤로 한동안 그분의 톡이 이어졌고, 나는 잠에 들었다.


톡을 보낸 건 일요일 밤이었고, 화요일까지 아무 연락이 없었다. 고민이 사라져 시원하기도 했지만, 줄기차게 울리던 '카톡'소리가 없어 약간은 서운하기도 한 그 느낌. 그래도 시원함의 비중이 더 컸다. '에라 모르겠다!'


수요일 아침 6시 55분, 출근을 위해 지하철로 향하고 있는 전화가 왔다. 헉 그 남자였다. '이 아침에?' 읽씹을 못하던 나이기에... 전화를 받았다. "안녕하세요"라고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 남자는  "모니카, 내가 너보다 나이가 3살 많으니 반말 써도 되지?"라고 물었다.  "네? 네" 얼떨떨했다. "모니카, 나도 며칠 동안 의견 존중하면서 많이 생각했다. 밤에도 생각하고, 또 아침에 일어나서도. 그런데 난 너를 만나야겠다. 그래서 이 시간 너 출근하는 시간인 줄 알지만, 양치질하다가 전화했다. 그럼 또 연락할게"  "_" "연락해도 되제? "  "네? 네" 뚝. 풉- 난 너무 웃겨서 웃고 말았다.  완전 막무가내 이 남자에 헛웃음이 났다. 묘한 감정도 들었다. 나한테 저렇게까지 반말로 들이댄 사람은 없었는데, 늘 세련된 듯 유들유들사람들에게만 익숙했었는데, 그의 반응은 신선하기까지 했다. 그 날 출근길 1시간 30분 내내 지하철에서 실실 웃었다. 그냥 웃음이 났다. 그리고 백일  뒤 12월, 이 남자와 결혼식장에서 '신랑 신부님'으로 불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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