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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러블리모니카 Sep 29. 2020

결혼식 주인공은 신부가 아니었다.

- 예식시간 30분 후 식장에 도착하신 시어머니

결혼식 날짜는 12월 14일. 내 주말 업무 스케줄이 비어있었던 단 하루, 그날이었다. 10월 말경에 날짜를 정했으니 남은 시간은 약 한 달 반, 주 수로 따지면 결혼식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은 딱 6주 간의 주말만 있을 뿐이었다. 당시 난 12월 초에 몰려있던 회사의 행사와 대학원 입시를 동시에 준비하고 있었고, 주말마다 지방 출장이 있었다. 식장과 신혼집이 모두 지방에 있었기 때문에 결혼식과 결혼 준비는 거의 할 시간이 없었다. 


다행히 풀옵션 오피스텔이라 구입할 가구도 없었고, 예단에 대해 완강히 거부하시는 시어머니 덕에 예단도 없었다. 신부가 심사숙고하여 엄선한다던 스드메(촬영, 드레스, 메이크업)도 예비신랑이 이미 섭외를 해 둔 탓(남편이 00 상조에 다달이 돈을 넣고 있었다. 결혼을 대비하여)에 그 과정도 스킵했다. 예물, 예복, 한복 등 대부분을 간소화시켰고, 예식장도 교회였기 때문에 식장 쇼핑, 예약 일정에 크게 고민하지 않아도 되었었다. 게다가 주례는 이모부, 소소한 식장 데코부터 뷔페와 장거리 하객 간식까지 모두 엄마와 이모께서 손수 준비해주셨다. 그렇게 한 달 반 만에 나만 빼고 다 바쁜 결혼식 준비가 거의 완벽하게 끝난 것처럼 보였다.  


결혼식 전날, 미리 친정에 와서 쉬고 있는데 예비 신랑에게 전화가 왔다. "모니카, 하도 전화가 안돼서 네가 결혼 취소하는 줄 알았다." 부재중 통화가 꽤 와 있었는데, 못 느꼈던 것이었다. "몰랐어요!" 그런데 그 '취소'라는 말이 약간 마음에 걸렸다. 기우겠지.. 했다.  


결혼 식 아침, 덤덤하게 메이크업을 마치고 신부대기실에서 대기 중이었다. 친구들이 도착했고, 나는 친구들과 즐겁게 사진 찍고 웃고 떠드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조금 뒤 피아노 반주와 함께 식장이 정돈되었다. '이제 신랑 입장하고, 내 차례겠구나!' 갑자기 긴장이 되었다. 그런데 시간이 좀 흘렀는데도 피아노는 계속 같은 곡을 연주했고, 신랑 입장 때 으레 나는 환호도 없었다. '음.. 뭐지?' 로비를 보니 남편은 그대로 서 있었다. 시간은 식 시작 15분쯤 흐른 시간. 드레스를 봐주시던 이모님께 "무슨 일 있어요?"라고 물었다. "아직 시어머니께서 도착 안 하셨대요. 이런 일은 처음이네요." 라며 멋쩍게 웃으셨다. '에잉? 뭐라고????' 긴장이 초조로 변하려고 했다. 초 단위로 밖을 내다봤다. 다행히 하객들은 자리에 머물러 주었지만 내 마음은 엉망이 되어가는 것 같았다. 


그 후 10분 정도 더 흘렀을까? 한복 치마 앞자락을 양손으로 올려 잡은 시어머니께서 헐레벌떡 로비로 올라오셨다. 화장기 없는 얼굴, 평소의 헤어스타일. 우리 엄마 얼굴을 보았다. 내색하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지만, 착잡 하 표정. 시어미니는 신부 들러리 이모님께 간단히 립 메이크업만 받으시고 바로 식장으로 안내되셨다. 그리고 우리는 약 30분 늦게 결혼식을 시작했다.  


일생에 한 번뿐인 내 결혼식. 나를 위해 서울에서 장거리를 달려 혹은 개인 비용을 들여 여기까지 귀한 시간을 내준 내 손님들에게 너무 죄송했고 민망하고.. 착잡했다. 외동아들의 결혼식에 늦으신 이유가 뭘까, 이유가 뭐지? 식 내내 생각했다. 목사님께서 혼인 선포 전 서약에 대한 답을 요청하시는데, 신랑의 확신에 찬 대답을 들으며 난 생각했다. '내 차례에 대답을 꼭 -네-라고 해야 하나?’


이후 내 결혼식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시어머니의 지각과 스타일은 지인들 사이에서 한동안 회자되었다. 만날 때마다 불거지는 소재거리에 나도 할 말이 없었다. 


술술 진행되던 결혼식 준비에 반해 나의 결혼생활은 예식, 이때부터 반전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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