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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러블리모니카 Oct 08. 2020

'남'만 가득했던 로마의 크리스마스

신혼여행기 1편

모니카, 너만의 가이드가 되어 줄게


식후 바로 신혼여행을 떠나는 여느 부부와 달리 우리는 1주일 정도 한국에서 싱글의 삶을 좀 정돈을 하고 신혼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특히 나는 결혼식까지 너무 숨 가쁘게 달려왔었기에, 회사일과 서울 자췻집 정리를 하는 데 꼬박 일주일 정도가 걸릴 참이었다. 지방에서 결혼식 후 호텔에서 주말을 보내고, 나는 서울로 올라왔다. 회사에서 행사와 출장 결과 정리, 백서 원고 마감, 제작하던 동영상 마무리, 업무 인수인계서 작성의 일이 남아 있었고, 개인적으로는 서울의 자취집 정리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식후 처음 맞는 금요일에 남편과 나는 서울의 내 자췻집에서 다시 만났다.  크리스마스의 로마, 얼마나 로맨틱한지... 신혼여행은 상상만 해도 설레었다.


결혼 준비를 할 때 남편은 "모니카, 내가 로마랑 바티칸에서 가이드를 했었는데, 너를 위해 로마를 가이드해주고 싶어!"라고 이야기했었다. 나는 동남아로 해외출장을 종종 다녔고, 매년 가까운 해외여행을 다녔던 편이라.. 사실 휴양지에 대한 로망이 별로 없던 터였다. 로마... 출장이 아닌 여행, 그것도 신혼여행지로 로마..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게다가 남편이 1년 간 가이드를 했던 곳이었으니, 매번 여행 때마다 일정과 예산 짜느라 몇 날 며칠 미간을 찌푸려가던 수고도 덜은 느낌이었다. 남편은 "내가 다 준비할 테니, 너는 우리 둘 왕복 비행기표만 끊어줄래?"라고 이야기했다. 그래서 나는 신혼여행을 약 한 달 반 남겨놓고, 초 성수기인 크리스마스 시즌 2명의 왕복항공권을 비싼 가격에 결재했다. 이탈리아 여행책 2권과 함께


하지만 짐을 꾸리던 금요일 밤부터 알싸한 기운이 움트기 시작했다. 여행 짐을 정리하는데, 남편의 잔소리가 들렸다. 짐이 너무 많다는 이유였다. "오빠, 8박 9일 겨울 여행에 캐리어 한 개. 이게 뭐가 많다는 거야?" "모니카, 로마에 가면 계속 걸어야 하는데, 캐리어를 꼭 가져가야겠나?" "캐리어를 누가 끌고 다녀! 호텔에 두고 다니지." 티격태격. 급기야 남편은 "모니카, 카메라도 각각 챙겼으니 핸드폰은 한 개만 들고 가자. 내 거만 가지고 갈게" "왜?" "걸어 다닐 때 핸드폰이 생각보다 무겁거든. 난 여행 갈 때 무겁게 안다녀" 음... 생각해 보니, 크게 연락할 일이 없을 것 같았다. 로밍이나 데이터 비용도 신경 안 쓰이고 나쁘지 않겠다 싶어서 내건 두고 가기로 했다.(당시는 스마트폰이 나온 지 얼마 안 됐던 터라... 업무 외 개인 용도로는 많이 사용하지 않았고, 사진도 똑딱이로 많이 찍었다.)  무엇보다 이태리를 나보다 잘 아는 남편을 한번 믿어보기로 했다. 그래서 24인치 캐리어를 20인치로 줄이고, 휴대용 가방에는 여권, 지갑, 필기구, 카메라만 간단히 들어가게 했다. 남편의 짐은 달랑 한 개였다. 아담한 스포츠형 숄더백. 들어보니 너무나 가벼웠다. 열어보니 가방 안에는 장갑 2쌍, 티셔츠, 속옷, 양말, 여권, 지급, 계산기가 들어있었다. "오빠 이걸로 여행이 돼?" "여름이면 더 줄일 수 있는데, 겨울이라 어쩔 수 없지." '뭐지, 이 느낌은... 나랑 좀 다르네.'


드디어 낭만의 로마로 출발


우린 독일을 경유해서 22일 늦은 밤에 피우 미치오 공항에 도착했다. 공항의 밤공기는 찼지만, 신선했다. '아 좋다...' 잠깐 신선함을 느끼며 시내로 가는 버스를 탔고, 한 시간쯤 걸려 테르미니역 앞에 도착했다. 버스에 내리자 남편은 내 캐리어를 끌고 열심히 어디론가 갔다. 나는 남편을 졸졸 따라갔다. 남편은 대로 이면의 이면 골목으로 나를 안내했다. '예약을 이런 곳에?' 정원이 있는 작은 호텔(그러나 여관처럼 보이는) 앞에 도착했다. 카운터엔 사람이 없었고, 엘리베이터는 기계식이었다. 여기저기 둘러보고 있는데, 카운터에  주인인지 지배인인지 알 수 없는 평상복 차림의 남자분이 오셨다. 남편이 이태리어로 호텔 주인과 이야기를 했다. 내가 이태리어를 알아듣지는 못하지만...  대강 상황을 보고, 단어를 끼워 맞추니... 헐 어이가 없었다. 당연히 호텔이 예약되어 있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예약은 고사하고, 남편은 주인과 협상 중이었다. '조식은 필요 없으니 공동주방에 공동욕실을 쓸 수 있는 저렴한 방을 달라'는 내용이었고, 주인이 제시한 금액을 깎는 것은 덤이었다. 음.. 나는 표정관리가 되지 않았다. 내가 신혼여행의 일정을 남편에게 맞기면서 딱 하나 부탁했던 것이 '호텔의 청결함', 비즈니스호텔 정도의 청결함이었다. 그런데... 이건 뭐 허름하고 허름한.. 호텔 주인이 내 표정을 보더니 온화한 미소로 남편에게 영어로 말했다(나 들으라는 듯). "피앙세가 이 조건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아요. 화난 것 같은데요?" 하지만 선택권은 없었다. 이미 자정이 다되어 가는 시간이었고, 이 호텔을 나서면 크리스마스 시즌인 그 시기에 우리는 길거리에서 자야 할지도 몰랐다. 주인은 내 표정을 보고, 욕실 딸린 방을 저렴하게 주었다. 그렇게 우리는 작고 허름한 호텔에서 몸도 마음도 불편한 신혼여행 첫밤을 보냈다.  (나만 불편했던 것 같다. 남편은 일어나자마자 창문을 활짝 열고 "차오~~"라며 큰 소리로 불특정 다수를 향해 인사했던 기억이...)

로마에서 사 먹었던 아침 식사, 호텔 뒤편 마트에서 사 먹었는데 저렴하고 매우 맛있었다.(낭만은 없었지만 ㅋ)

다음날, 나는 남편이 가는 대로 따라가기만 해야 했다. 일정 안내나 의견 조율 이런 건 없었다. 본인의 추억팔이 할 생각으로 온 건지, 내내 걷기만 했다. "오빠, 어딜 갈 건지 지도라도 주던지, 아님 같이 결정을 해야지. 이게 뭐야?" 남편은 그냥 웃기만 했다. "오빠, 그리고 어제 그 호텔 하루면 됐으니, 옮기자. 난 못 자겠다." "모니카, 미안하다 2일 치 요금 지불했다." "뭐라고!!!!!" 결국 우린 그날도 그 호텔에서 묵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좀 큰 길가의 나은 호텔을 찾아서 들어갔다. 호텔 요금은 100유로. 남편은 그곳에서도 네고를 하기 시작했다. "조식 먹지 않겠습니다. 깎아주세요" 난 남편과 좀 멀찍이 섰다. 난 살다 살다 그렇게 뻔뻔하게 대놓고 깎아달라고 하는 사람은 처음 보았기 때문이다. 남편은 이리저리 협상을 하고 1박에 100유로짜리 방을 50유로로 깎았다. "오빠, 난 숙박비가 깎아지는 게 신기하다. 근데 좀 많이 부끄러우니 나 안 보는데서 네고하길 바래." 우리는 거기서 2박을 더 머물렀다.  2번째 호텔에서 2번째 밤에 여행책자를 읽다가 신혼여행 전 기간을 로마에서만 있자는 남편에게 "오빠, 오빠는 로마에서만 한 달 있어도 로마를 다 구경 못한다고 하지만 나는 잘 모르겠어요. 여기 책에 보니, 겨울에 고독한 여행으로는 베네치아가 딱이라네요. 나는 베네치아 좀 다녀올게요. 비행기 시간 맞춰서 공항에 갈 테니 공항에서 만나요, 우리." 난 웃으며 말했지만 진담이었다.

22일부터 크리스마스이브와 크리스마스를 보낼 때까지 신혼여행으로 온 우리의 일정엔 아무런 이벤트나 특별한 시간이 없었다. 이벤트는커녕 1유로도 허투루 쓰지 않았다. 나는 그저 남편을 따라 3박 4일 동안 계속 걸었고, 때때로 계속되는 남편의 네고를 지켜봐야 했고, 남편의 추억 이야기를 들어야 했다. 남편은 그렇게 9일간 로마에서만 있자고 했지만 나는 이탈리아까지 와서 이런 식으로 로마에만 있다 돌아가는 것은 안 될 일이었다. 피렌체(내가 준세이를 얼마나 좋아했던가, 냉정과 열정사이 남자 주인공)든 베네치아 나든 어디든 가야 했다. 다시 오기 힘든 이탈리아였고, 이렇게 보낼 수는 없었다. 다행히 나에겐 여행책자가 2권 있었고, 그것만으로도 남은 3박 4일을 알차게 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신혼여행으로 왔긴 하지만, 이런 여행이라면 아무리 신혼여행이라도 남은 기간은 나 혼자 다니는 편이 마음이 편할 것 같았다.


크리스마스 로마엔 내가 기대한 '낭만'은 없었다.


신혼여행은 내가 생각했던 것과 너무나 달랐다. 내 업무 중 하나가 필드트립 인솔이었기 때문에 필드트립 전 참가들과 개략적인 일정 공유를 물론이고 가기 직전에는 동선 및 예약 체크, 출발 전 현지 책자(일정, 기본정보, 지도, 메모, 비상상황 시 행동수칙 등) 준비는 당연한 것이었다. 현지에서의 변수를 30%라고 두더라도, 그 변수를 조율할 수 있는 계획과 준비는 기본적인 담당자의 몫이었다. 나에게 걱정 말라며 본인이 전부 준비하겠다던 남편의 여행 준비는(그것도 신. 혼. 여. 행) 적어도 내 관점에서는 꽝이었다. 아니 설령 준비는 그렇다 치더라도 신혼여행에서의 쫀쫀한 애정과 낭만조차 기대하기 어려웠다. 여행에 대한 완전히 다른 관점, 함께 있지만 함께 있지 않는 것 같은 그런 여행. 그것이 나의 신혼여행의 첫 느낌이었다. 누군가는 핑크빛, 다시 돌아가고 싶은, 꿈만 같다는 그 신혼여행이 나에겐 '남'과 함께하는 여행처럼 여겨졌던 것이다.


남편은 내 몸, 내 마음을 공유하는 유일한 사람이리라 기대했건만, 남편, 신혼여행은 그저 우리가 철저히 '남'인 것을 깨닫는 시간이 되었다. '남'처럼 여겨지는 남편과 함께한 신혼여행, 외로웠던 로마의 크리스마스.  나의 신혼여행은 그렇게 흘러가고 있었다.

가장 신비로웠던 판테온, 장의자에 머리를 기대고는 아주 오랫동안 저 구멍을 올라다 보았다.
판테온 앞에 있었던 카페, 여기 카푸치노가 진짜... 맛있었던 기억이.. 오지게 다리 아픈데 잠깐 쉬어서 좋았었나. ^^;


#. 지난 글 "결혼식 주인공은 신부가 아니었다." 편에 많은 관심 보여주셔서 감사합니다. ^^

    시어머니께서는 초행길이라 길을 잃으셔서 30분이 아닌 1시간 지각하셨다고 합니다.

    시댁의 사과는 없었고, '재미있는 에피소드'에 대한 '모니카의 예민함'만 지적받은 건 안 비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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