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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러블리모니카 Oct 14. 2020

신혼여행에서 발견한 남편의 뜻밖의 능력, 네고.

- 신혼여행기2편_로마, 베니스의 호텔요금은 그의 앞에서 '밥'이었다.

그날 밤 베네치아에 가겠다고 했던 건, 빈말이 아니었다. 무리 신혼여행이라, 이제 막 부부가 된 커플이 따로 여행하는 것이 이상하다고 하더라도- 난 좀 기분 좋게 여행하는 편을 택하고 싶었다. 충분히 생각하고 느끼며 자유롭게 누리고 싶었다. 여행자금(현금) 남편이 몽땅 가지고 있었고, 핸드폰이 없을지언정(한국에 두고 갔기 때문에)  큰 문제가 아니었다. 내겐 신용카드와 여행책자 2권, 똑딱이 카메라가 있었고, 불법체류가 아님을 증명하는 여권도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몽글몽글한 낭만을 간절하게 원하는 소망이 너무너무 넘쳐났기 때문이다.


잠들기 전에 베네치아로 가기 위해 채비를 했다. 가방에 짐을 차곡히 채우고 가장 중요한 물건인 여권과 여행 책, 신용카드를 매는 가방에 가지런히 두었다.(사실 짐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채비랄 것도 없었지만) 그리고 미리 출력해둔 이 티켓 2부 중 1부를 남편 가방에 두고 한부를 내 여권에 끼다. 비록 신혼여행이긴 했지만 이렇게 남은 기간을 자기 방식대로 여행하다가 출국일에 공항에서 만나서 같은 비행기를 타고 가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싸우며 여행하는 것보다, 감정 상하며 여행하는 것보다 각자의 시간을 보내고 즐겁게 만나는 편이 오히려 나을 것 같았다.  부모님께 감쪽같이 잘 다녀왔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런저런 생각을 하며 나는 기분 좋게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 이른 아침 누군가 방을 크게 노크했다. '이 시간에 누구지? 눈을 떠보니 남편이 없었다. '뭐지?' "누구세요?" "모니카~" 남편이었다. 문을 열자 오르손에 베네치아행 기차 티켓 2장을 V자로 펼쳐 든 남편이 날 향해 활짝 웃고 있었다. "니 혼자 어디 가려고? 같이 가야지! 에이~ 모니카, 그러지 말고  같이 가자!" 흐음... '계획이 틀어졌다' "오빠 그럼 베네치아에서는 로마처럼 혼자 마음대로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리고 상의해서 결정하고 계획하면 좋겠어. 또 쪼잔하게 안 했으면 좋겠어" "어, 당연하지! 알았다"


나는 남편의 확답(!)을 찰떡같이 믿고 같이 테르미니역으로 갔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고 했던가,  그 말을 실감할 만큼 엄청난 인파가 있었다. 유럽 이곳저곳으로 향하는 기차들이 있었고, 다양한 생김새의 사람들이 여러 언어로 말하고 있었다.  




아직은 밝은 오후에 베네치아 근처 메스트레 역에 도착했다. 베네치아는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물씬 났다. 눈은 없었지만 곳곳에 트리와 음악이 흘러나왔다. 나는 기분이 좋아졌다. '와~' 호텔 옆에는 근사한 레스토랑도 있었고, 거기서 저녁식사를 하면 너무 낭만 적일 것 같았다. 호텔을 예약하기 위해 역 바로 앞에 있는 고급 호텔인 호텔 ooo 에 방문했다. 1박 요금을 물으니 근 150유로(!, 이보다 비쌌던 것 같은데 기억이 가물가물)를 요구했다. 남편은 씩 웃으며 그 길로 호텔을 나왔다. "오빠 그냥 내가 신용카드로 결제할 테니, 여기서 묵읍시다." 아무 말 없이 남편은 숙소를 전전하기 시작했다. 불길한 예감...  두 번째로 간 곳은 중국사람들이 운영하는 곳이었다. 남편은 중국음식점에 모여 얼굴 벌게지도록 한상 즐기고 있는 중국사람들에게 가서 "혹시 민박 있습니까?"라고 물었다.  중국사람들끼리 이야기를 나누더니 어떤 분이 나오셨다. 짧은 머리, 민소매(러닝셔츠)와 반바지 슬리퍼 차림, 오른손엔 담배를 든 중년의 남성이 음식점 2층에 있는 민박집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음.. 나무 문에 걸쇠도 없는 방, 음... 도저히 이건 아니었다. 당연히 패스였다. 세 번째 숙소를 방문했다. 백인이 운영하는 게스트 하우스였다. 그나마 깔끔한 곳이라 마음에 들었는데, 이미 예약기 꽉 차 있었다. 그다음으로 간 곳은 인도 사람이 운영하는 호텔이었다. 직원이 방을 안내해 줬는데 이불은 얇고, 방은 매우 추웠다. 손님은 우리가 유일했다. 직원은 간곡히 묵기를 요청했지만, 내키지 않았다. 다음으로 몇 군데를 더 들렀지만 거기서 거기였다. 나는 지쳤고, 그냥 남편을 따라다니기만 했다. 그리곤 그 동네 일대를 다 돌고 원점으로 돌아와 호텔 000 앞에 섰다. 나는 첫 호텔에서 묵자고 다시 제안했다. 남편은 "우리 마지막으로 저 옆에 한 번만 더 가보자." 호텔 000과 비슷한 혹은 더  고급진 호텔이었다. 유럽 사람이 득실득실대는 로비, 그 호텔 프런트에서는 1박 요금이 189유로이고, 네고는 안된고 제차 확인해 주었다. 호텔을 빠져나왔다.  “오빠, 내가 결제할 테니, 000로 제발 가자!!!!! 그냥 가자고!!!!!!!!!!!!!!”라고 외쳤다. "그래 알았다"


드디어 쉴 수 있으려나, 000 호텔 프런트에서 결제를 하려고 하니, 남편이 본인이 결제하겠다고 했다. 나는 마음이 살 풀렸다. '진작 그럴 것이지...' 남편은 프런트에 서더니 결제 대신 가격 네고에 들어갔다. “우리 여행객이라 돈이 없다. 깎아달라. 조식 안 먹겠다.~~~~” 아휴.... 진짜... 그런데 1박 150유로에 육박하던 금액이 몇 번의 네고 끝에 1박 69유로로 깎였고, 무려 조식이 포함되었다. 와우...


남편은 로마의 첫 숙소, 두 번째 숙소, 세 번째 숙소까지 모두 네고에 성공했다. 그리고 이틀을 묵었던 베니스의 호텔 조식은 우리에게 그 이튿날의 간식까지 책임져 주었다. 비록 부끄러움은 내 몫이었지만... 말이다.

      

  ※ 네고 후 남편이 섬(베니스)에 들어가자고 했다. 축축하고 깜깜하고 사람도 없는 골목을 한참 돌며 종종 연미복(!) 차림의 유대인(?인가?)를 마주치며 깜짝깜짝 놀라고 있는데 남편이 말했다. "모니카, 나 예전에 무전여행왔을 때 여기서 노숙했다. 가자."  뭥미!  아무튼 크리스마스 다음늘의 베니스의 밤이 그리 지나갔다.(사진은 그날 찍은 사진이나, 노숙장소는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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