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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러블리모니카 Nov 05. 2020

부대찌개 먹다가 들은 말.

보통 부대찌개 먹다가 이런 말들 하나요?

결혼 전 남편은 주말마다 내가 있는 장소면 어디든 왔다. 그즈음 난 주말마다 일이 있었기에 서울에 붙어 있는 날이 거의 없었는데도, 울산 남자인 그는 장소를 불문하고 환승의 번거로움을 불편해하지 않고 줄곧 따라왔다. 


교제를 약속한 것도 아니었는데 이상하게 주말마다 만나고 있은지 한 달쯤 됐을 무렵이었다. 남편은 어김없이 내가 살던 회기로 왔고, 일요일 아침 우리 집 문을 두드렸다. 그날 오전 일정이 인천에서 있었기에 부랴부랴 준비를 하고 나설 참이었다. "오빠 저는 오늘 인천 가야 돼요!" "나 같이 갈게" 그렇게 약 2시간 남짓 지하철을 타고 인천으로 향했다. 별 할 얘기도 없었고, 친하지도 않아서.. 시간을 어찌 보낼까 싶었는데, 시간은 금방 갔다. (다행히)


오전 일정을 마치고, 콩나물국밥 먹은 후 영화도 한편 봤다. 남편을 보아하니, 인천에서 저녁까지 먹을 셈인 것 같았다. 마침 날이 싸늘하던 때라 역사 뒤편 부대찌개 집을 가기로 했다. 부대찌개 집에는 사람이 별로 없었는데, 사장님이 홀 말고 안쪽 방이 따뜻하다고 추천해 주셔서 신발을 벗고 방으로 들어갔다. 역시.. 바닥이 따뜻하니 노곤 노곤해지는 것 같았다. 주문한 부대찌개 2인분이 나오고, 버너에서는 찌개가 보글보글 끓어올랐다. 냄새도 기가 막혔다. 한 국자 퍼서 그의 앞접시에 떠주고는, 내 앞접시에도 떴다. 한 숟가락 떠서 먹으니.. 와~ 이 세상의 맛이 아니었다. 이 사이에 고춧가루 낄까 걱정은 되었지만 너무 맛있고 따뜻해서 그걸 따질 상황은 아니었다. 와구와구 먹고 있는데, 갑자기 그가 숟가락을 테이블에 '탁'소리가 나도록 내려놓고는 부대찌개를 응시한 채 내 이름을 불렀다. "모니카" '밥 먹다 말고 왜 저렇게 진지하게 부르시나... 나한테 뭐 잘못한 거 있으신가? 생각하며, "네, 말씀하세요"라고 대답했다.  “모니카, 난 너의 과거가 어떠해도 상관없다. 행여나 너에게 말 못 할 과거가 있거나  몹쓸 일을 당했더라도 난 괜찮으니 마음에 짐을 가지지 않아도 된다. 난 너의 있는 그대로가 좋고, 상처까지 받아들일 준비가 됐다."라고 말했다. 헐........... 그 말을 듣고 나는 한몇 초 동안 머리가 하얘졌다. '이런 말을 보통 부대찌개나 전골 같은 거 먹으면서 하는 건가? 저 남자 왜 밥 먹다가 진지하지?' 등등의 생각을 해던 거 같다. 그러다가 나는 입안에 있던 음식물을 전골냄비에 뿜을 뻔했다. 웃음을 참다가 코로 국물이 넘어오려고 하는 것을 겨우 삼킨 후에 깔깔거리며 엄청 웃어댔다. 


정식으로 교제한 것도 아니고 만난 지, 아니 안지 한 달 밖에 안된 나에게 이런 주제의 이야기를, 그것도 부대찌개 먹다가 꺼낸 그의 진심과 타이밍이란- ^^;; 나의 깔깔거림에도 그의 진지한 눈은 찌개에서 내 눈을 향했고, 그런 그에게서 구수하고 진한 부대찌개보다 더한 진심을 느꼈다.  


(하지만, 타이밍과 이야기 주제를 매치 못 시키는 건.. 그의 특기라는 사실을... 결혼 이후에 정말 절실히 알게 되었다는 건... 안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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