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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러블리모니카 Jan 31. 2021

너무 쉬운 화해, 그리고 새로운 시작.

지난 4년의 시간이 무색했다. 우리의 생각은 이미 신혼여행과 러시아 여행을 넘나들고 있었다. 남편도, 나도 아무 말하지 않았지만, 남편이 나의 인솔(!)에 따라준 것만으로 그의 감정이 느껴졌다. 


그는 햄버거 가게에서 금액을 보고 여전히 펄쩍펄쩍 뛰었지만, 이내 아무 말 없이 나를 따랐다. 식당에서 금액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 그에게는 '인내'가 필요했을 텐데, 그의 침묵은 '변하기 위한 노력'임이 느껴졌다. 나 역시 그의 말과 행동에 예전보다 한 템포 늦게 반응하고 있음을 느꼈다. 불과 같이 화를 내거나 주체할 수 없이 눈물을 흘리거나 즉각 반응하던 나였는데 말이다.      


결혼 후 남편이 내게 했던 달콤한 말들이 있는지, 오랜 기억을 더듬고 찾았다. 남편은 결혼 후 아이가 태어나기 전까지 “모니카, 나랑 결혼해 줘서 진짜 고맙다”라는 말을 시도 때도 없이 했었다. 한참 싸우고 난 후에는 “모니카, 지금은 내가 단점이 많지만, 좋은 사람이 되도록 노력할게.”라는 말도 자주 했다. “미안하다, 고맙다, 사랑한다.”라는 말은 귀에 못이 박히도록 했다. 하지만 나는 그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았다. 행동이 너무 미웠기 때문에 그의 고운 말들을 곱게 듣지 않았던 것 같았다. 그의 진심을 늘 흘려들은 것 같았다.     

또 남편의 행동도 생각해 보았다. 남편은 설거지, 쓰레기 버리기(음식물, 일반), 빨래, 물걸레 청소, 심지어 식사 준비까지 집안일을 곧잘 했다. 나한테 왜 안했냐, 해라 등의 잔소리도 없었다. 가끔은 노래까지 흥얼거리며 그 집안일들을 하곤 했다. 술·담배도 하지 않았다. 업무 외에는 저녁 늦게 귀가하거나 외박하지 않았고, 불필요한 과소비도 당연히 없었다. 나는 남편의 이런 행동이 그저 몸에 베인 습관이려니 생각했다. 혹은 남편이 즐겨하는 일이라 생각했다. (심지어 하바롭스크와 블라디보스토크의 숙소에서도 남편은 빨래를 했다. 그래서 여행 사진에 보면 매일 같은 옷을 입고 있다^^;;;;) 


한참 기억을 곱씹고 있는데, 숙소에서 막 마친 빨래를 꺼내며 건조대에 널기 시작한 남편은 날 쳐다보며 말했다. “모니카, 내가 이렇게 해주니깐 고맙제? 네가 편하지 않나?” 아뿔싸. 함께 살 때, 남편은 늘 그런 행동을 한 뒤에 웃으며 나에게 같은 말을 했던 것이 생각났다. 그는 날 위해 매일매일 봉사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그의 말과 행동은 모두 진심이었다.

       

여행의 끝물이 되지 않아 남편과의 결합을 나도 이제 원하고 있음을 알았다. 신혼 때의 갈등과 긴장, 공포, 설움이 반복된다 하더라도 그때만큼 내가 아프지 않을 것 같았다. 남편의 진심을 알았고, 아이의 진심을 알았고, 나의 진심을 알았다. 그걸로 가능성은 있었다. 남편은 늘 그랬듯이 나를 기다렸고, 여행에서도 내가 먼저 이야기하기를 기다려주었다. 


“오빠, 내가 회사에 말을 하긴 할 건데, 이사 가는 건 빨라도 내년 초가 될 것 같아. 올해 업무 마무리 때문에 결산까지는 친정에 있어야 할 것 같아. 괜찮겠어?” 

“안 된다! 당장 온나! (피식) 

 모니카, 내가 4년을 기다렸는데, 4개월을 못 기다리겠나. 일 천천히 마무리하고, 얘기도 잘하고 내년에 온나!” 


남편은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이렇게 나는 남편과 너무나도 쉽게 화해했다.

그리고 남편과 재결합 테스트도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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