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부들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메주고리예

by 예모니카

'Udovice'. 길고 까맣게 그을린 나무로 만든 간판, 파란색 바탕에 흰색으로 써진 크로아티아어. '과부들'이다. 가게로 들어서니 오래된 농기구들이 벽에 걸려 있었다. 조금 걸어 계단을 두세 개 오르니 옛날에 이 곳에서 농사를 짓고 생활했던 모습을 인형으로 만들어 놓은 유리장도 보였다. 아치형 중문을 지나니 꽃자수를 놓은 흰색 보가 깔린 테이블들이 있었다. 식당이었다. 들어서니 낯설었지만 어딘지 모르게 익숙한 냄새가 났다. 처음이지만 그렇게 싫지는 않았다.

은색 세로 줄무늬가 있는 흰색 셔츠에 검정 바지를 입고 허리에 앞치마를 두른 웨이터가 우리를 보자마자 서둘러 부엌에서 나왔다. 아늑해 보이는 창가 자리로 안내했다. 앉았더니 바로 메뉴판을 가져다줬다. '뭘 좀 먹어볼까?' 천천히 메뉴판을 보려는데 갑자기 웨이터가 '우리 집에서 제일 유명한 음식은 양고기예요. 어떻게 반마리 드릴까요? 아니면 한 마리?'라고 말하는 게 아닌가! '반 마리? 한 마리라니?!' 추천 메뉴라고 하기엔 너무나 생소한 단어라서 깜짝 놀랐다. 도무지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웨이터 얼굴을 쳐다봤다. 그랬더니 우리가 왜 그러는지 아는 것처럼 여유 있게 웃으면서 설명하기 시작했다.


'여기는 양고기를 통으로 숯불에 구워서 요리하는 곳이에요. 부위별로 골고루 썰어서 가져다 드릴까요? 아니면 반 마리 통으로 가져다 드릴까요?'


부위별로? 아니면 반 마리라고요? 오 마이 갓!

우리는 무척이나 당황스러웠지만 주문을 기다리고 있는 웨이터 덕분에 빠르게 메뉴를 정했다. 부위별로 골고루. 그나마 안전한 선택이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이미 맛을 잘 알고 있는 생선 구이도 한 접시 시켰다. 웨이터가 메뉴판을 옆구리에 끼고선 우리를 향해 엄지손가락을 척 올린다.

시간이 갈수록 긴장이 됐다. 솔직히 설레기보단 걱정이 됐다. 조금 우스웠지만 우리는 마치 소개팅을 앞두고 있는 맞선녀들 같았다.

생각보다 음식이 빨리 나왔다. 반질반질 광택이 나는 기다란 은쟁반 두 개가 테이블에 놓였다. 보기엔 막 삶은 고기를 칼로 숭덩숭덩 썰어 놓은 듯한 모양새가 꽤 먹음직스러웠다. 다행히 긴장감이 호기심으로 바뀌려는 찰나, 고기 한 덩이를 푹 포크로 찍어서 냄새를 맡았다. '어? 진짜 냄새가 안 나네' 나도 모르게 툭 말이 튀어나왔다. 우리는 서로 안도의 눈빛을 주고받았다. 고기 한 덩이를 한 입 물었다. '어?' 입에 문채로 다시 뜯어봤다. '아니, 이게 왜 이래..?' 포크를 두 손으로 잡고 입에 문 고기를 쭉 잡아당겼다. 겨우 한 입을 먹었다. 의외의 복병이었다. 너무 질겼다! 대충 씹어서 꿀떡 삼켰다. 장작 냄새가 살짝 베어 걱정했던 비릿한 냄새도 없고, 삶아 놓은 소고기 같은 맛에 양고기 한 번 제대로 먹어보나 했는데, 조금 아쉬웠다.



사실 이곳은 모 여행사 사장님께서 추천하신 유명한 양고기 요릿집이었다. 메주고리예에 머물고 있던 어느 날, 우연히 성당 옆 카페에서 한국에서 오신 패키지팀과 만날 일이 있었다. 팀에는 한 모녀가 있었다. 패키지로 왔는데 단체 일정 끝에 여기에 남을 거라고 하셨다. 우리가 자유일정으로 머물고 있다 보니 궁금한 게 많으셨는지 질문이 많으셨고, 이후론 자연스레 대화할 일이 잦았다. 그러던 중에 아주머니께서 '내가 여행사 사장님께 맛있는 식당이 어디냐고, 한번 가보자고 했더니 양고기 집을 알려주더라고요.' 하시는 게 아닌가! 이 곳을 몇 차례 왔었지만 양고기 집은 처음 듣는 소리였다.


'어머머, 양고기 집이 있대요? 가보셨어요?'
'어휴, 그럼요, 벌써 갔다 왔죠. 세상에 양고기가 냄새도 안 나고 어쩜 그렇게 맛있어요.'


그렇게 맛있는 양고기는 처음이라며 신나게 얘기하시는 아주머니를 보고 있자니 너무 궁금해졌다. 예전에 양고기를 몇 번 먹어본 일이 있었는데 그때마다 특유의 비린 냄새 때문에 먹기가 힘들었다. 그런데 냄새가 안 난다니! 맛있게 드셨다는 아주머니 말씀이 귀에 딱 꽂혔다. 꼭 한 번 맛보고 싶었다.


'아줌마, 가게 이름이 뭐예요?
'어, 가게 이름? 과부들이에요'
'과부들이요?'

생전 처음 들어보는 가게 이름이었다. 꼭 사연이 있을 것만 같았다.


'아니, 왜 가게 이름이 과부들이래요?'
'과부들이 주인인가?'
'맞아요!'
'예? 진짜 과부들이 주인이라고요?'
'네에~나도 궁금해서 여행사 사장님께 물어봤지. 그랬더니 예전에 전쟁이 있었을 때 남편들은 다 나가 죽고 부인들만 남았는데, 당장 먹고는 살아야 하니까~과부 된 부인들이 모여서 양고기 집을 했다 지모예요. 그래서 가게 이름이 과부들이래요 글쎄.'
'세상에나...!'

처음엔 <과부들>이란 이름이 너무 생소하다 못해 웃음이 나기도 했다. 그런데 진짜 과부 된 부인들이 모여 만든 식당이라니. 듣고 나니 왠지 맘이 무거웠다. 유머러스하게만 생각했던 나 자신이 부끄럽기까지 했다. 간판 하나에 얽힌 이야기가 그 나라의 아픈 역사를 담고 있을 줄을 생각도 못했다.

여행을 하다 보면 일상에선 평범하게 여겼던 것들이 특별하게 다가오는 일이 많다. 이번 여정엔 간판 하나가 그랬다. 보스니아에서 우연히 만난 양고기 식당, <과부들>. 전쟁에 나간 남편들만큼 어쩌면 그 이상으로 척박한 삶을 치열하게 살았을 부인들의 땀과 애환이 고스란히 담긴 이름이었다. 장작에 막 구워 낸 양고기의 향기만큼 오랫동안 기억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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