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아티아 자그레브
*Hvala(흐왈라)는 크로아티아어로 '고맙습니다'라는 뜻입니다
6월 24일(2019년) 아침, 자다르를 떠나 크로아티아의 수도 '자그레브'로 향했다.
우리가 차로 이동해야 할 거리는 총 286km. 꽤 먼 거리다. 발로 바퀴를 꾹꾹 밟아 나름 공기압도 체크해 보고, 주유상태도 쓱 한 번 보고서는 출발.
길 위에 펼쳐지는 그림 같은 모습들이 해가 이글거리는 뜨거운 날씨에도 그저 아름답게만 보였다. 하얀 돌로 덮인 거대한 산들, 몽실몽실 구름아래 작은 마을들, 길게 쭉 뻗은 푸른 나무들이 안내하는 길들을 시원하게 달렸다. (고속도로 속도제한 130km)
*크로아티아 고속도로 톨게이트. 초록색 화살표가 있는 곳으로 가서 현금으로 요금을 내면 된다.
자그레브(Zagreb)라고 쓰인 표지판이 자주 보일수록 건물이 많아지고 길은 점점 복잡해졌다. 자다르에서 출발한 지 거의 3시간 만에 드디어 자그레브에 도착했다.
숙소에 짐을 풀자마자 후다닥 라면을 끓여서 늦은 점심을 해결했다. 지난 5일 동안 우리 대신 발이 되어 준 몹시도 고마웠던 렌터카를 반납하고는 곧장 자그레브대성당으로 갔다.
'혹시 미사가 있을까? 들어가기만 해도 좋을 텐데. 아니면 성당 입구에 앉아 있다 오기만 해도 좋을 텐데.'
대성당이 보이자마자 뛰었다. 입구에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하는 모습을 보니 뭔가 있을 것 같았다. 다행히 성당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런데 웬 검은색 옷 입은 사람들이 의자를 들고 이리저리 분주하게 움직였다.
'분명 미사시간은 아닌 것 같은데... 무슨 일일까' 일단 자리에 앉아서 기도를 시작했다. 그런데 자리에 어떤 팸플릿이 있어서 봤더니 음악회가 있는 것 같았다. 오늘 저녁 8시. 아까 들어오면서 보니까 미사시간은 7시... 그러면 우리가 왔을 때가 거의 7시 반 넘어서니까 분명 성당 문이 닫혀 있었을 거다. '아... 음악회 덕분에 성당에 들어올 수 있었구나!' 하느님께서는 참 오묘하시다. 성당에 들어가기만 해도 좋겠다 맘먹으니 이렇게도 이끄시는구나!
오늘 종일 운전하랴 이동하랴 다들 지칠 대로 지쳤는데, 잠깐이라도 성당에 들어가 바빴던 몸과 맘을 탁 놓고 기도하고 나오니 편안~했다.
안전하게 아무 탈 없이 오늘 하루도 당신 품 안에 발도장 한 번 꾹 찍고 마무리하게 하시는 멋진 예수님, 성모님께 엄지 척! 미소 찡긋~해 드리고 숙소로 돌아왔다.
다음 날 아침, 엄마가 단단히 병이 나셨다. 며칠 동안 낯선 곳에서 긴장하고 운전하랴, 여러모로 신경 쓰랴, 계속되는 이동에 내심 우려했던 일이다.
감기기운에 열도 나고, 당도 높아서 그런지 식사도 잘 못하신다. 챙겨 온 약을 증상에 맞는 대로 드렸는데도 잘 낫질 않는다. 앞으로 남은 일정이 많은데 걱정이 많았다. 일단 오늘은 무조건 '쉬는 날'로 정했다. 맘 편히 푹 쉬었다가 저녁에 미사 드리러 나가기로 했다.
메주고리예에서 나온 지 일주일. 매번 짐 풀고 다시 싸는 일이 보통이 아니었고, 체크인-아웃시간 맞추느라 진땀 빼고, 네비 보랴 길보랴 바짝 신경 쓰고, 또 성당 찾고 미사시간 알아보랴 발 동동 구르고... 하... 돌아보니 몰아치듯 일이 참 많았구나.... 아프지 않으면 쉬어갈 줄 모르고 달려갔을 텐데, 이렇게 쉬게 하시는구나 싶었다.
다행히 오후엔 엄마가 조금 나아지셨다. 아니 나아지시려고 벌떡 일어나셨다. ㅎㅎ 미사시간에 맞춰서 숙소를 나섰다. 저녁시간이 다 되어 가는데도 나오자마자 숨이 턱 막혔다. 아이고 정말 뜨겁다!
(*참고하세요~자그레브 6월 말, 35도씨 이상을 웃도는 뜨거운 날씨입니다. 선크림, 모자, 선글라스는 반드시! 물도 가지고 다니시면서 수시로 드시는 게 좋습니다.)
그런데 어쩐지 성당으로 가는 길이 휑하다. '이상하다. 오늘 평일인데... 왜 이렇게 사람이 없지?' 거리도 광장도 한산했다. 간간이 지나가는 한국패키지팀만 빼면 아무도 없는 것 같았다. '무슨 일이지?' 루칠라가 부랴부랴 휴대폰을 들여다보더니, '아~오늘 국가공휴일이래~!'
'아이고... 어쩐지. 문 연 상점도 없고 사람도 없다 했더니. 그래도 미사시간은 그대로겠지?' 살짝 불안해진 마음에 발걸음이 빨라졌다.
다행히 미사시간 전, 묵주기도 바치는 시간에 도착했다. (순례를 다녔던 성당마다 보통 미사시작 30분 전에 묵주기도 5단을 합송 했다.)
성당 중간쯤에 자리를 잡았다. 기도지향을 적은 종이를 앞에 두고 묵주기도를 시작했다. 곧이어 시작된 미사에도 지향을 다시 한번 봉헌드렸다. 어제 못 드린 미사의 몫까지 두 배로 쫑알쫑알 부지런히 봉헌드렸다.
미사를 마치고 나와 높이 솟아 있는 대성당 첨탑을 올려다봤다. 사람은 살면서 힘든 일을 많이 겪어 낼수록 더 단단해지는데... 고개 들어 높이 올려다본 자그레브 대성당이 그래 보였다. 여러 번의 큰 손상을 입고도 이 자리를 묵묵히 버텨 온 오랜 시간들이 이곳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틈새 없이 잘 짜인 견고한 작품을 마주하는 것처럼 말할 수 없는 근엄하고도 묵직한 느낌이 전해져 어느 성당에서보다 더 깊게 마음을 울렸다.
(*2025년 현재 다시 방문했는데, 지진이 나서 무너진 대성당 첨탑을 공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내부 방문이 어렵습니다. 미사도 근처에 있는 강당 같은 곳에서 드리고 있습니다. 이렇게 웅장하고 깊은 울림을 주었던 성당을 꼭 다시 보고 싶은 간절함으로 기도합니다.)
어제와 같은 시간 저녁 7시, 자그레브 대성당을 다시 찾았다. 사람들이 성당 안을 가득 메웠다. '무슨 날인가?'
자리가 없어서 두리번거리다가 성당 맨 뒤 편에 있는 빈자리를 찾아 앉았다. 미사가 시작되었다. 입당성가부터 미사곡까지 웅장한 파이프오르간 소리와 함께 대축일 미사와 같이 봉헌되었다. '오늘 무슨 축일이었나?'
강론이 시작되었다. 크로아티아어라서 잘 못 알아듣는 와중에 귀에 자꾸 콕 박히는 단어가 있었다. 호세마리아.
아! 오늘 성인의 축일이시구나!
많은 사람들 가운데 정성껏 미사를 봉헌하며, 호세마리아 성인의 전구 하심도 청했다. 미사가 끝나고 제대 앞으로 갔다. 성인의 성화 앞에 서서 잠깐 묵상을 하고 다시 한번 성인께 의탁하며 기도드렸다.
그리고 제대 뒤에 모셔져 계신 '복자 스테피나츠 추기경님'의 유해 앞으로 갔다. 메주고리예에 머물렀을 때 미사 강론을 통해 알게 된 분이었다. 무릎을 꿇고 복자 추기경님의 전구 하심 또한 청했다. 기도지향을 적은 종이도 봉헌드렸다.
(*알로지제 빅토르 스테피나츠 Alojzije Viktor Stepinac
1898년 5월 8일 - 1950년 2월 10일.
크로아티아의 로마 가톨릭교회 추기경이자 자그레브 대교구장(1937년 - 1950년)을 지내셨다. 1998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순교자로 선언되면서 시복 되었다. 출처. 위키백과)
[크로아티아 자그레브 슈테피나츠 추기경님 이야기]
.....(중략) 하느님 없는 공산주의체제에서 1mm도 뒤로 물러나지 않으셨습니다. 감옥에서 독극물 먹고 돌아가시는 순간까지 믿음을 잃지 않으셨습니다. 하느님께서 당신을 버리셨다고 믿지 않으셨습니다.
공산주의자들은 하느님께 대항했지만, 마침내 하느님께서 승리하셨습니다. 그들은 결국 자비로우신 하느님 앞에 돌아와야 할 개개인의 인간일 뿐이었습니다.
하느님 때문에 박해를 받고 조롱받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원수를 위해 기도한다면, 이런 이들 안에서 하느님께서는 성령을 보내시어 활동하십니다.
주님께서도 박해받고 조롱당하셨습니다. 박해를 두려워하지 맙시다. 조롱받기를 두려워하지 맙시다. 박해받고 조롱받는 이들을 도웁시다.
두려워하지 않고, 믿음을 잃지 않도록 매일 기도합시다.
성령의 도우심을 청합시다.
(2019.6. 메주고리예 강론 중에서)
성인과 복자 추기경님께 기도하고 나오니 얼마나 든든~한지 밥 안 먹어도 배부른 느낌이었다. 기도 부탁하신 분들의 수많은 지향들이 두 분의 전구 하심으로 하늘나라 제단에 봉헌될 생각을 하니 과일나무에 주렁주렁 먹음직스럽게 달린 과일들을 보듯 기도에 대한 응답들이 맛있게 열매 맺을 것 같아 기뻤다.
한 걸음, 또 한 걸음. 순례길을 걸을 때마다 사는 법을 배워간다.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무엇을 위해 살아가야 하는지 세상이 아닌 하느님 안에서 생각하게 되고, 조금이나마 깨닫게 해 주신 것들은 보물처럼 소중히 간직하게 된다.
인생을 길 위에서 배우라는 말처럼 우리는 순례길 위에서 하느님을 닮은 모습대로 그리고 그분의 뜻대로, 우리에게 주신 소명을 알아가고 있다. 작은 몸짓이지만 성당을 찾아다니고, 미사봉헌을 하기 위해 이곳 저곳을 걸어 다니는 길이 우리에게는 가장 좋은 삶의 배움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