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뜨고 찌뿌둥한 몸을 쭈욱 폈다. 어? 침대 머리가 만져졌다. 아... 여기 집이 아니지...(집에선 바닥에서 잔다)
침대 밑으로 꺼질 것 같이 무거운 몸을 간신히 일으켰다. 반대쪽 침대에 동생은 아직 꿀잠이다. 피곤할 만도 하지. 창문에 블라인드를 올렸다. 방 한 가득 들어오는 햇살이 눈이 부셨다. 조심스레 눈을 비비고 밖을 보니 몇몇 사람들이 지나가고 있었다. 방금 산에 갔다 왔는지 모자에 선글라스를 끼고 허리춤엔 얇은 점퍼를 질끈, 양손엔 사이좋게 지팡이 하나씩 짚고 활기차게 걸어간다. 그 모습을 멍하니 보고 있다가 '우리가 보스니아에 도착했긴 했구나.' 싶었다.
인천을 출발, 독일 뮌헨을 거쳐 크로아티아 스플리트까지 꼬박 이틀 동안 이동을 했다. 미리 예약해 둔 여행사 픽업 차량을 타고 보스니아 국경을 넘어 두어 시간 즈음 달려 이 곳 메주고리예에 도착했다.
사실 이 곳이 처음은 아니다. 20대 초반, 여행사를 통해 청소년 국제 페스티벌이 열리는 8월, 1주일간 머문 일이 있었다. 평소 말로만 전해 들었지만 이상하게도 한 번쯤 꼭 가보고 싶다고 생각했던 곳이었다. 그러다 우연히 꿈같은 기회를 얻었다. 엄마의 지인께서 여행사에 예약을 해 두었는데 못 가게 됐다고, 환불도 취소도 안돼서 너무 아깝다며, 큰 딸(글 쓰고 있는 모니카)을 보내면 어떻겠냐고 하신 것. 나는 망설임 없이 이틀 만에 짐을 싸서 순례팀에 합류했었다.
난생처음 밟았던 보스니아 땅 그중에서도 아주 작은 시골마을 메주고리예. 전 세계 청소년들이 모여 함께 노래를 부르고 기도하며 젊은 날의 희망을 함께 응원했던 신비하고도 감동스러운 경험으로 나는 언젠간 꼭 엄마와 동생이랑 이 곳에 다시 왔으면 좋겠다고 막연히 희망했었다. 메주고리예는 우리에게 여전히 낯설지만 언젠가 다시 가고픈 갈망의 땅이었다.
오랜 시간이 흘러 지금 우리는 메주고리예에 와 있다. 우연히 날아든 마음의 건강검진표 한 장 들고 무작정 떠나 왔다. 세 모녀의 순례가 현실이 된 아침, 시차 적응이 막 시작되려는지 조금씩 울렁거리는 빈 속처럼 마음이 일렁거렸다. 휴. 뭐부터 할까.
엄마는 벌써 일어나셨는지 부엌에서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평화를 빕니다~(세 모녀의 아침인사법 ㅎ) 엄마, 잠은 좀 주무셨어요? 몸은 좀 어떠세요?'
관절염으로 늘 고생이시라 당연히 안 좋다는 걸 알면서도 걱정스러운 말투로 물었다. 깊은 한숨과 함께 자다 깨다 하시다 밤새 힘드셨다고 하셨다. 그래도 역시 엄마. 두 손은 바쁘게 밥솥에 쌀을 안치셨다.
'그래, 힘들어도 밥은 먹어야지....' 이틀 넘게 밥을 못 먹었더니 갓 지은 밥에 김만 싸 먹어도 어찌나 맛나던지. 한 그릇 후딱 비우곤 소파에 앉았다.
'오늘 미사가 저녁 6시니까 얼른 마트 가서 필요한 거 사고, 늦은 점심 해서 먹고 미사 드리러 나가면 되겠다.'
루칠라(동생)가 막 타 준 뜨끈한 커피를 마시며 대충 일정을 정하고 나서 지하로 내려가 주인집에서 쓰는 카트를 빌려 왔다.
4층짜리 연한 노랑빛 페인트가 칠해져 일명 옐로 하우스라 불리는 아파트, 앞으로 우리가 몇 달 동안 머물 숙소를 뒤로 하고 울퉁불퉁한 길로 나섰다.
하. 이제 진짜 순례 시작이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