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아침 일어나 모카포트에 커피를 올리고 베란다로 나갔다. 양손 하늘로 높이 주~욱 시원하게 폈다. 하루가 시작됐다.
우린 순례자다.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는 영화 속 주인공처럼 종일 바쁜 일정에 침묵이란 배지를 가슴에 달거나 많은 사람들과 함께 지내지는 않는다. 다만 공통점은 딱 하나, 한 곳에 오래 머문다는 것.
아침 겸 점심으로 밥 먹고 커피 한 잔 하고 나면 오전 일과가 끝난다. 빨래를 하고, 매일 먹을 음식재료를 확인하고는 모자란 건 적어두거나 가끔은 외식을 결정한 후 집을 나서면 점심 일과도 간단히 끝난다. 우리 일정의 하이라이트라면 바로 매일 미사 전례 참여. 오후 6시부터다.
이 곳 메주고리예는 야고보 성당을 중심으로 발현산, 십자가산, 야외 제대 등으로 이루어진 작은 시골 마을이다.
메주고리예(Medjugorje)는 ‘산과 산 사이’라는 뜻으로 옛 유고슬라비아 연방에 속했으나 현재는 독립국가인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에 있는 작은 마을 이름이다.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제2의 도시이자 헤르체고비나 행정 수도인 모스타르 (Mostar)에서 남서쪽으로 25km 지점에 위치해 있고, 주민 수는 약 4,000명이며 크로아티아 민족이며 가톨릭 신자들이다.
메주고리예 본당은 1892년에 설립되었고 헤르체고비나 프란치스코 수도회 성모승천 관구 소속 사제들이 본당 사목을 담당하고 있다. 본당이 있는 메주고리예를 비롯하여, 인접 마을인 밀레티나, 비오니차, 비야코비치, 슈르만치 등 5개 마을이 본당 관할 지역에 속한다. (출처. 두산백과, 성모여행사)
이 곳에서의 순례는 크게 3가지로 나뉜다.
첫째, 매일 미사 전례 참여. 세계 각국에서 모인 신부님들과 가톨릭 신자들이 함께 봉헌하는 뜻깊은 시간이다. 매일 오후 6시에 시작된다. (동절기엔 오후 5시)
둘째, 십자가 산 순례. 하얀 십자가가 꼭대기에 세워졌다고 해서 십자가 산, 원래는 석류나무가 많아 석류산이라 불렸다. 과거 극심한 가뭄에 시달렸던 메주고리예 사람들은 비를 내려주시길 청하는 간절한 마음을 담아 산에 십자가를 세웠다. 십자가의 길 기도를 바치며 올라간다.
셋째, 발현산 순례다. 성모님께서 발현하신 산으로 묵주기도의 길로 이루어져 있다.
*십자가의 길 :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에서 일어난 14개 사건을 묵상하는 기도.
*묵주기도 : 묵주 알을 굴리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복음 선포와 수난, 부활과 승천, 성령 강림에 이르는 신비들을 성모 마리아와 더불어 묵상하며 바치는 기도. 묵주 기도를 의미하는 라틴어 로사리움(rosarium)은 ‘장미 화원’이라는 뜻이 있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우리는 주로 매일 저녁 6시 미사 참여를 중심으로 그 날의 체력에 따라 산을 오르거나 슈퍼마켓을 들러 동네 한 바퀴를 크게 돌았다. 산책 삼아. 나름의 일정을 마치면 숙소로 돌아와 늦은 저녁을 먹으면서 얘기를 나눴다.
오늘은 어땠는지. 내일은 뭐할지. 어디 아픈 곳은 없는지.
어쩜 매일 매 끼니 이야기를 나눠도 그리 할 얘기가 많은지. 앞으로 순례하면서 대화시간이 더 길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날이 더워지는 늦봄부터는 주로 야외 제대에서 미사를 드렸다. 동그랗고 하얀 돔으로 된 제대에 커다란 제대가 놓여있다. 세계 각국에서 모인 신부님들께서 함께 미사를 드리셨다. 제대 맞은편, 순례객들은 주로 나무와 고철로 만들어진 긴 벤치에 앉아 미사에 참여한다.
우리는 제일 뒤쪽 벤치에 자리를 잡았다. 아름드리나무 옆이 좋았다. 배낭을 옆에 두고 셋이 나란히 앉았다.
Ime Oca, Sina i Duha Svetoga. A men.
이메 오차, 씨나 이 두카 스베 토카. 아멘.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성호경이다.)
(크로아티아어라서 들리는 대로 썼다. 발음이 정확하진 않다. ㅎ)
Kyrie eleison 키리에 엘 레이손(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라틴어와 크로아티아어가 섞인 언어들이 낯설었다. 그래도 예전에 한국에 있는 어느 성지에서 라틴어 미사를 드려본 일이 있어서 그랬는지 다행히 미사 경문을 조금은 따라 했다.
낮엔 뜨거웠다가도 밤이 되면 선선한 바람이 불었다. 배낭에 가져온 얇은 점퍼를 꺼내 입었다.
영성체를 모시는 시간이 됐다. 어머나 세상에나! 우리는 순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순례객들이 갑자기 일렬로 서기 시작했다. 홍해 바다가 갈라지는 것처럼! 제대에서는 신부님들께서 성체를 모시고 순례객들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오기 시작하셨다. 이런 세상이 있다니!
우리 마음 한편에
숨어 있을지 모르는 슬픔과 아픔들이
이처럼 갈라져 앞으로 순례하는 동안
한꺼번에 밀려올 것 같아
괜스레... 눈물이 났다.
미사를 마치고 마침 기도를 드린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엄마, 내일 미사 후에 성시간 있죠?'
'어, 아마도.'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잠깐 동네 마트에 들러 낼 아침에 먹을 오이 2개랑 자두랑 무화과 몇 개를 샀다.
'낼은 준비를 단단히 해서 나와야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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