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스큐즈미~!!!

by 예모니카


또로록. 똑. 똑. 똑.

하... 오늘도 비가 오네.

해와 구름이 만났다 헤어지기를 수없이 반복했던 날들, 순례를 시작한 날부터 줄곧 비가 왔다.

오늘은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다.


날씨 때문인지 오전 내내 와이파이 사정이 안 좋았다. 해야 할 일이 있는데 버벅대는 인터넷 속도에 자꾸만 작업이 중지됐다는 경고만 뜬다. 좀 느려도 되겠지 싶어 버텼는데 결국 중단. 한국만 한 곳이 없구나. 하...

오늘은 성시간이 있는 날이다.


○준비물 : 라디오, 이어폰, 무릎 깔개(전례를 하는 동안 무릎 꿇는 시간이 많다), 우비, 우산, 손수건 등등

루칠라가 배낭에 노트북까지 넣고 단단히 채비를 마쳤다. 미사 시간보다 일찍 집을 나섰다.



야고보 성당 근처 호텔이 와이파이가 빵빵했었는데... 오늘은 어떨까. 일단 호텔 레스토랑으로 들어갔다. 그냥 앉아 있을 수는 없어 급한 대로 차 한 잔을 시키고는 바로 노트북을 켰다. 와이파이 비밀번호를 넣고 신호를 기다렸다. 3분의 2 정도 세기다. 뭐 나쁘진 않았다. 곧바로 작업창을 띄우고 속도를 지켜봤다.

앞으로 1시간 정도 소요 예정.

시계를 보니 시간은 충분했다. 기다려보기로 하고 휴대폰을 열어 쓰다만 글을 정리했다. 몇 분 지났을까. 배가 고팠다. 아까 점심으로 먹은 라면이 금방 소화됐나 보다. 가볍게 팬케이크 하나 먹을라 했더니 안된단다.

음... 그럼 '뭘로 허기를 달래나...'하고 속으로 생각하고 있는데, 고민한 티가 팍팍 났는지 갑자기 종업원이 줄지어 케이크 이름을 댄다.

'치즈케이크, 과일 케이크, 초콜릿, 티라미수...'

이 중에 귀에 꽂인 한 단어. 티라미수!
바로 하나를 시켰다.



약간 둥근 유리컵에 초콜릿 가루가 두껍게 올려졌다. 수저로 푹 떠서 한 입 먹는데, 초콜릿이 너무 달아서 으... 하는 순간, 속에 있던 촉촉한 빵과 부드러운 크림이 섞여 너무 달지 않으면서 아주 맛이 좋았다. 오전 내내 와이파이랑 씨름했던 스트레스가 훅~날아가는 것 같았다.




미사 시간이 다 돼서 그냥 정리하고 일어섰다. 그나마 작업을 하나라도 끝낼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레스토랑을 나왔는데 굵은 빗방울이 떨어졌다. 우산을 쓰고 성당 옆에 있는 천막 아래로 갔다. 루칠라가 라디오를 켜고 이어폰을 건넸다. 요즘에는 한국에서 들어오는 순례팀들이 있어서 한국어 통역을 듣고 있다. 오랜만에 제대로 한식을 먹은 것처럼 귀가 개운했다.


비가 오면 천막 아래에 자리를 잡고 미사를 드린다
여행사로 패키지팀이 순례를 오면 라디오로 통역을 들을 수 있다. 한국어 주파수는 94.7MHz.


미사 시간 내내 천막 아래에 있는 작은 화단이 눈에 들어왔다. 비를 흠뻑 맞았는지 초록 잎사귀들이 싱그러웠다. 하트 모양의 덩굴, 빗방울이 또르르 떨어지는 작은 이파리, 여기에 기막힌 새들의 피리연주까지!

미사의 은총이 풍성해졌다!




지금이 저녁 7시, 성시간은 앞으로 두 시간 후인 저녁 9시. 집에 갔다가 저녁을 먹고 다시 나와야 하는데, 하필 그때 또 비 소식이 있단다.

아무래도 오늘은 성당 안으로 일찍 들어가서 자리를 잡아야 될 것 같았다. 그래서 성당 근처 식당에서 밥을 먹고, 저녁 8시부터 성당 안에 미리 들어가기로 했다.


(겨울철이 아니면 보통은 야외 제대에서 모든 전례가 행해지지만, 동시에 야고보 성당 안에서도 진행이 된다. 그래서 너무 춥거나 덥거나 혹은 비가 몰아치는 날엔 일찌감치 성당 안으로 들어가 전례에 참여하기도 한다.)




까만 우비는 로사맘, 빨간 우비는 모니카, 루칠라. 거의 한 달 내내 입고 다녔다.


성당 뒤 편에 있는 식당에 들어갔다. 엄마는 주문을 하시자마자 화장실에 가셨다. 조금 있다가 루칠라도 갔다. 그런데 한참이 돼도 안 오길래 '사람이 많은가?' 하다가 '기다리면 오겠지' 하면서 자리에 있었다. 그런데 또 한~참이 지나서야 엄마랑 루칠라가 왔다.

​'왜 이렇게 늦게 왔어?'

'......'


오 마이 갓! 로사맘이 화장실에 갇혔다!!


엄마는 여전히 다급한 목소리로 방금 있었던 일을 실감나게 설명하셨다.

'화장실에 들어가서 볼 일을 보고 나오려는데 갑자기 문이 안 열리는 거야. 문고리를 잡고 이리저리 돌려봐도 안 열어지고, 위아래로 흔들어봐도 안 되고, 어찌나 당황스럽던지 발로 뻥뻥 차 봤는대도 안 열렸어.

익스큐즈미~!! 익스큐즈미~!!(excuse me! excuse me!) 익! 스! 큐! 즈! 미!!!!!

아무리 해봐도 소용없고, 할 수 없이 누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는데 딱! 루칠라가 들어오더라. 그래서 '엄마 갇혔어. 밖에서 문 좀 열어봐!'라고 했는데 루칠라가 아무리 해봐도 안 열리는 거야. 그러더니 종업원을 부르더라. 그럼 뭐하니. 답답하게 계속 문고리만 잡고 이리저리 돌려보기만 하는 거야. 루칠라가 이미 다 해봐서 안된다고 말해봐도 소용없고... 아이고... 나는 안에서 땀을 삐질삐질 흘리고, 루칠라는 종업원들 때문에 답답해서 팔짝 뛰고!

그러다가 갑자기 문이 뻥! 하면서 열렸어! 루칠라가 그러는데 어느 나이 드신 남자 종업원 한 분이 오시더니 힘을 빡 줘서 문고리를 잡고 확! 잡아당겼는데 쿵! 하고 열렸다더라.'

​아이고... 이게 무슨 일인지.


한 바탕 소동이 있었던 식당. 식사는 아주 맛있었다는 ㅎㅎ


그나마 열렸으니 천만다행이라며, 정신없이 저녁식사를 마치고 문제의 식당(?)을 나와 성시간을 드리러 성당으로 갔다.



성시간(聖時間, 라틴어: Hora Sancta [*])은 로마 가톨릭 교회의 전통적인 성체 신심 행위 가운데 하나로,
성체 안에 현존하고 있는 그리스도를 공경하는 시간이다 (출처. 위키백과)


성체를 한 없이 바라보고 또 바라보는 온전히 '예수님과 나'만의 시간. 어릴 적 자기 전에 엄마가 동화책을 읽어주시면 스르륵 잠이 들었던 것처럼 예수님 품에 폭~! 안겨 있는 시간.


이 시간이 하도 편안해서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고
그냥~ 그냥~ 한없이 머물러 있고 싶은 시간.


여기에서는 매 주 화, 목, 토요일 3번의 성시간이 있다. 목요일만 오후 6시 미사 후에 바로 시작하고, 다른 때는 미사 후 저녁 9시부터 10시까지 한 시간 동안 한다.



우린 매일 똑같은 일상을 사는 것 같지만
사실은 매일이 다른, 수많은 사건과 경험 그리고 감정과 마음이 오롯이 담긴
여행 같은 일상을 살고 있는 건 아닐까.


한바탕 소동이 있었던 날, 우리는 은혜로운 성시간이 주는 따뜻한 위로와 사랑을 받으며 성당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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