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를 유독 싫어했다. 장마 때는 더욱. 겨울비는 몸서리치게 싫어했다. 비가 오면 아버지 일터는 문을 닫는다. 겨우 일하기로 맘먹고 나가신 아버지는 비를 핑계로 종일 술을 드셨다. 추위에 약했던 나는 비에 젖는 것도감기 걸린 것처럼 으슬으슬한 느낌도 싫었지만 그보단술 드시는 아버지가 더 못마땅했다.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비는 내렸다. 야속하게.
유럽은 비가 자주 내린다. 겨울엔 뼛속 시린 추위에 오랜 시간 거리를 걷기가 힘들다. 여기에 비까지 오면 몸이 굳는다.
2014년 겨울, 프랑스 파리. 미사를 드리기 위해 성당을 찾아다니는데 갑자기 비가 내렸다. 망설임 없이 길가에 보이는 아무 카페나 들어갔다.
휴. 또 비네. 참 싫다.
따뜻한 커피를 주문했다. 두 손으로 들고 마셔도 무거울 만큼 큰 컵에 초코파우더가 잔뜩 쌓인 카푸치노. 부드러운 우유 거품에 커다란 하트가 눈에 들어왔다.
치. 뭐 조금 예쁘네
우연히 만난 카페. 카푸치노 한 잔에 잔뜩 뾰로통해진 비에 대한 얄궂은 마음이 사르르 녹아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