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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모니카 May 25. 2021

시도

크로아티아 자그레브 대성당 앞 식당 겸 카페 Capuciner에서


 _ 시시하다고 비웃어도 좋아

그런 걸 왜 하냐고

바보 같다고


 _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해도 좋아

실패해서 또다시 한다 해도

내가 행복하니까

그거면 니까



여자 셋이서 그것도 엄마와 딸 둘이서 유럽으로 7개월간 성지순례를 떠난다는 건 시작부터 쉽지 않았다. 고혈압에 당뇨가 있으시다 보니 매일 드셔야 할 약만 대형 트렁크로 하나. (짐을 잃어버릴 걸 대비해서 3개의 트렁크로 나눠 담았다. 선견지명이었나. 나중에 진짜 공항에서 짐 1개가 분실되는 바람에 며칠 동안 기다려야 했다. 약을 나눠놓지 않았다면 어휴. 아찔하다) 관절염에 기타 등등 세 모녀 건강을 책임 질 비상약만 또 한 가득이었으니, 7개월 간 성지순례는 짐 싸기 문제부터 보통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물었다. 왜 그렇게까지 떠나야 하냐고. 한국에도 성지가 많은데 왜 굳이 그 먼 유럽까지 가냐고. 아는 사람 하나 없고 말도 잘 안 통하는데, 가서 큰 일 당하면 어쩌냐. 돈 떨어지면 어쩌냐. 아프면? 다치면? 가기 전부터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걱정과 염려 섞인 말들을 뒤로하고 우리는 떠났다. 쿨하게!

비가 오는 날엔 맘껏 비를 맞았다. 커피 한 잔의 쓰고 달고 고소한 맛을 알았다. 수천 보를 걸으며 다리가 저릿해오는 아픔도, 엄마의 손을 잡고 부축하며 따뜻한 손길도 느꼈다.


살아있음을, 그간 억척같이 사느라 알지 못했던 삶의  면면들을 구석구석 느꼈다. 나를, 서로를 그리고 우리 모두의 삶을 치유할 뭔가가 필요했고 우린 시도했다. 그리고 결국 얻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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