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에 기본 2만보씩 걷다 보면 젊은 사람들도 지친다. 관절염으로 이 악물고 걸으신 엄마는 오죽할까. 무작정 떠난 순례, 처음 와 본 낯선 도시에서 성당을 찾아 나서는 일은 걷는 것부터 쉽지 않았다. 게다가 화장실 찾기도, 물 한잔 얻어먹는 일도 어려웠다.
유난히 햇볕이 내리쬐는 여름날. 이탈리아 밀라노 거리.나서자마자 땀이 비 오듯 흐르고 겨우 찾아간 성당에선 미사가 없었다.어쩌랴. 순례란 그 날 그날 주어진 길을 걷는 것인 걸. 우리는 잠시 멈췄다. 길 가에 아무 카페로 들어갔다. 세상 가장 맛있는 에스프레소 한 잔을 들이켰다. 쓴 맛조차 달달했던 커피.
우리의 기억 속에 밀라노는 밀라노 대성당도 광장을 수놓은 비둘기 떼도 아닌 우연히 만난 이 날의 커피 한 잔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