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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현 Jul 15. 2019

세상에 완벽한 직장이 있을까?

7월 16일이면 내가 직장 생활이란 걸 시작한 지 딱 1년이 되는 날이다. 회사 생활을 1년간 하며 든 생각, 고민 그리고 결론 등을 적어보려 한다.


영국에서 석사를 마치고 기획자도 디자이너도 아닌 애매한 포지션에 디자인, 기획 여기저기 찔러보다가 나의 잠재력을 알아주는 듯 한 한 디자인 에이전시에 합격 통보를 받았다. 연봉이 생각보다 낮았지만 집과 가까웠고 첫 시작을 '주임' 직급으로 하는 덕에 난 뭔가 사회생활의 큰 버프를 받는 느낌을 받았다. 운이 좋게도(?) 내 첫 사수는 학부 직속 선배였다.

그래서 난 회사 위치도 좋고, 직급도 주임인 데다(돌이켜보니 연봉은 사원-대학원졸 기준이었다.)  사수까지 그렇게 어려운 분이 아니라 직장생활의 탄탄대로가 펼쳐질 것 같았다.

몇 달 지나지 않아, 한 직장에서 4년 이상 근무했던 내 사수는 좋은 기회가 생겨 이직을 하게 되었고 두 명뿐인 기획팀에 1년 차.. 아니 5개월 경력의 주임인 나만 남게 되었다. 기댈 곳이 사라진 나는 급속도로 흔들리기 시작했다. 심하게는 내가 다니는 이 곳이 하찮게 느껴졌다.

 

이직을 한 사수를 만나 속 이야기를 나누고 그쪽의 생활을 들어보니 난 우물 안 개구리를 넘어 서서히 끓고 있는 냄비 속에서 저 멀리 포도를 바라보며 저건 실 거야 라고 자기 합리화를 하며 익어가고 있는 개구리(또는 여우)가 된 기분이었다. 고민을 정리하고 해결책도 생각해보고, 아빠에게 조언도 구해보고, 혼자 술을 마시면서 결론 내렸다. 탈출하자. 그래서 기획자도 많고, 시니어 주니어가 함께 교류하고, 성장할 수 있는 곳임을 느끼게 하는 곳을 바라며, 경력 9개월부로 전 직장을 떠났다. 

갈 곳을 정해놓고 퇴사하지 않았다. 무언가에 쫓겨 첫 직장을 선택했기 때문에 조금 여유를 가지고 구직활동을 해보고 싶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맘과는 다르게 몸이 바지런하게 움직여서 퇴사 후 2주 동안 약 10곳의 면접을 봤다. 디자인 에이전시, SI업체, 인하우스 골고루. 심지어는 하루에 면접 두 탕씩 뛰며 구직 활동을 했다. 최종 합격을 받은 곳들을 나란히 두고 우선순위를 매겨보았다. 레퍼런스, 성장 가능성, 환경, 연봉, 위치. 그렇게 한 곳을 정했다. 


집과는 멀고 업력도 그리 오래되진 않았지만, 경력이 탄탄한 사람들이 모여 만든 그룹이고 기획과 디자인 밸런스가 맞아 보였다. 내부에 들어와 보니 시니어와 주니어가 적절히 있었으며 몇몇 분들은 출산휴가 중이셔서, 아 그래도 미래를 생각하며 다닐 수 있는 곳이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연차 사용이나 사내 문화도 반차도 대표님께 변명을 해가며 써야 했던 전 직장과 달리 자유로웠다.(물론 프로젝트 일정은 고려해야 하지만) 

가장 좋았던 것은, 내 사수가 굉장히 일을 잘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봐도 '일은 이렇게 해야 하는구나'라고 느낄 정도였다. 타 부서 사람들도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 분 아래에서 나도 사수 같은 기획자가 될 수 있을 거 같은 느낌을 받았다. 


3개월의 수습기간이 종료될 즈음, 파견 나갔다가 들어오신 기획자분들이 하나 둘 퇴사하셨다. 다들 회사에서 2년 이상 근무하셨던 분들이라 그러려니 했다. 그다음 주는 나를 뽑으신 팀장님이 퇴사하시고, 그다음 주는 내 사수가 퇴사한단다.

멘탈이 붕괴됐다. 나는 주호민씨를 잇는 파괴왕의 재목인가. 흐름에 맞게 나도 얼른 포트폴리오 다시 정리해서 새 터를 찾아야 하나. 존버를 해야 하나. 주말 내리 생각 꼬리를 물었다. 


현실적으로 생각했다. 만약 모 회사에 서류 지원을 한다 쳐, 합격한다 쳐, 면접을 갈 거 아냐. 거기에서 경력이 9개월, 3개월 이렇게 짧은데 퇴사 이유를 설명하래. 첫 퇴사는 뭐 그렇다 할 이유가 있으니 됐다 쳐, 두 번째 퇴사는? 다른 사람들이 다 나가길래 저도 흐름을 따랐습니다? 만약 꼬리 질문으로, 또 똑같은 상황이 닥친다면 퇴사하실 건가요?

퇴사의 이유가 타당하지 않았다. 적어도 내 판단으로는 타당하지 않았다. 3개월 동안 뭐 이렇다 할 결과물이 있다면 모르겠으나 그마저도 내부 사정으로 엎어진 덕에 아무것도 없었다. 그냥 변명거리밖에 되지 않았다. 그래서 남기로 했다. 


기획자도 많고, 시니어 주니어가 함께 교류하고, 성장할 수 있는 곳임을 느끼게 하는 그런 이상적인 회사가 있다면 좋겠지만 (어딘가엔 있겠지) 그런 걸 쫓다가는 외부에 계속 흔들려서 뿌리내리지 못하는 기획자 a가 될 것만 같았다. 세상에 완벽한 직장은 없다.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이것 또한 우물 안에서(혹은 끓는 냄비 안에서) 합리화하는 태도 일 수 있겠으나, 그 신포도를 쫓다 내가 지금 있는 곳이 어디인지, 어떤 경로로 내가 걸어(뛰어) 왔는지 모른 채 사는 개구리(혹은 여우)가 될지도 모른다.


어떤 개구리(혹은 여우)든 내 판단과 결정을 가지고 사는 존재가 되고 싶다. '걔 때문에 이렇게 된 거잖아'의 변명보다 '그럴 거라 생각해서 이렇게 한 거야'라고 내 선택의 근거를 나한테서 찾고 싶다. 고작 직장생활 1년하며 느낀 점이 이렇게나 있는데, 5년, 10년을 일하면 얼마나 쌓일지 기대도 되고 걱정도 된다. 사실 내가 과연 매 순간 옳은 선택을 할 지 두려움이 크지만, 정답이 아니어도 최선의 선택을 할 거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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