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이나 Jun 05. 2024

파마를 했다. 초코송이가 됐다.

더워서였을까? 청소기를 돌리는데 그냥 짜증이 났다. 고무줄로 머리를 묶으려다가 거울에 비친 내 모습에 신경질이 났다. 파마기 없는 머리카락은 축 늘어졌고 얼굴은 몹시 칙칙해 보였다. 머리카락을 싹둑 자르고 탱글탱글한 파마를 하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청소기를 집어던지고 미장원으로 향했다.


"단발로 좀 짧게, 산뜻하게 잘라주시고요. 그리고 경쾌한 컬로 파마해 주세요."


헤어 디자이너의 가위에 머리카락은 시원하게 잘려 나갔다. 목덜미가 써늘했다. 가 짜증이 났었고, 그래서 파마를 하러 미장원에 왔었다는 상황은 하얗게 날아가버렸다. 여기서라도 멈춰야 하는 건지, 파마를 한다고 했으니 해야만 하는 건지, 극소심형인 내가 머뭇거리는 사이 파마롤들이 주렁주렁 머리에 달려있었다. 그러니까, 나는 때를 놓친 거였다.


중화하고, 롤을 빼고, 머리를 감는 모든 단계마다 거울 속 내 모습에 애써 웃었다. 디자이너의 마지막 손길이 닿으면 자연스러운 웨이브로 우아해 보일 거라고 굳게 믿고 싶었다.


펌이 잘 나왔다며 무척 만족스러워하는 헤어 디자이너를 보면서 난 미소를 잃지 않았다. 그녀는 단지 내 요구에 충실히 따랐을 뿐이었다. 내 얼굴이 짧은 단발 파마 스타일을 소화하지 못던 거였다.


약간 머쓱하게 집으로 들어왔다.

"앗! 버섯돌이다. 크크크크킄"

눈치 1도 없는 남편이 솔직한 피드백과 함께 시원한 웃음을 날렸다.


" 앗! 초코송이다."

방에서 나오던 아들이 표정도 없이 덤덤하게 말했다.



짧은 단발 파마 대한 열병을 한번씪 앓는다.

엄마 단골인 동네 미장원에서 커트 머리만 했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친구들과 함께 우리도 예뻐지자는 결의로 시내에 있는 미장원을 찾았다. 헤어 디자이너 언니는 나에게 얼굴이 달걀형이니 당시 유행했던 짧은 단발펌이 어울릴 거라고 말했고, 나확신에 찬 전문가에게 머리를 맡겼다. 화려한 손놀림 끝에 완성된 머리 모양은 삼각김밥이었다. 웃는 것도 아닌, 우는 것도 아닌 어정쩡한 표정으로 그 전문가를 쳐다보았다. '제발 어떻게 해주세요.'라는 간절한 눈빛과 함께. 그녀는 당장어색하겠지만 머리를 몇 번 감고 나면 익숙해질 거라며, 아주 잘 어울린다고 하면서 나를 안심시켰었다. 친구들 역시 괜찮아질 거라고 말했었다.


달걀형 얼굴인 나는 그녀의 단골 고객이 되었다. 그렇게 한참의 세월이 흘렀다.


어느 해 여름, 직장 동료가 자기가 다니는 미장원에 파마하러 같이 가자고 꼬셨다. 미장원을 바꾼다는 것은 몹시 어색하고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지만 어째서인지 나는 그러자고 했다. 자리에 앉자마자 카리스마를 뿜어내는 헤어 디자이너는 내게 물었다. 어떤 스타일을 원하냐고. 그냥 지금 스타일로 파마해달라고 했다. 머뭇머뭇거리녀는 굵게 파마를 하고 리 길이는 길러보라고 제안을 했다. 나는 당당하게 말했던 것 같다.


"저는 계란형이라 지금 머리스타일이 어울려요." 


헤어 디자이너는 조금 망설이는 듯 하더니 단호하게 말했다.

"고객님은 달걀형이 아니라 얼굴이 긴~~~ 형이에요."



아무튼 '긴~~~ 형'인 내 얼굴형에 어울리는 적당한 머리 스타일을 찾았지만,  시끄러운 현실을 만나면 집 앞 미장원으로 향하게 된다. 마치 짧은 단발펌이 친구들과 깔깔거리며 행복하게 떡볶이를 먹던, 상큼했던 그때로 나를 데리고 갈 듯한 착각이 들어서일 게다.  


짜증 나고, 기분 나쁘고, 우울한 날은 단발 파마를 하고 싶어도 참아야 한다는 것을 잘 안다. 하지만 같은 실수를 또 할 것이라는 것도 잘 안다. 아무래도 버섯돌이와 초코송이에서 벗어나긴 어려울 것 같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