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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nocharlie Oct 20. 2019

영화를 이야기해야 하는 이유

언제인가 누가 그랬다. 영화는 얼마 버티지 못하고 사라질 거라고. 넷플릭스를 시작으로 후발 주자의 멀티 플랫폼 진출 소식이 줄 잇는다. 제작, 기획, 규모의 차이도 이제는 많이 좁혀졌다. 세계 3대 영화제 중 하나인 베니스영화제에서 넷플릭스 제작의 <로마>가 최고상을 수상했다. 일 년 뒤 코믹스 기반의 <조커>가 같은 결과를 얻은 지금 영화 생태계는 확실히 변하고 있다. 대중이 접하기 쉬운 방식과 선호를 따라 전과 다른 기류를 보이고 있다.

 영상과 이미지가 주도하는 세상. TV가 더 이상 중심이 아닐 정도로 영상을 기반으로 한 다양한 매체가 성장하고 있다. 그렇다고 영상과 이미지만으로 온전히 콘텐츠가 생산되는가? 그렇지 않다. 이미지에는 카피가 있고, 영상에는 자막이 있다. 더 많은 사람이 인지하고 공감하는 요인에는 글이 여전히 역할이 하고 있기에 가능하다. 글의 최소화를 간결하게 포장하여 표현하는 문학의 정수는 바로 ‘시’이다. 사람이 글의 중요성을 간과하면서 시 또한 인기를 잃어가고 있다.

 그래서 영화와 시는 닮았다. 영화가 영화관에서 설 자리를 잃어갈 위기에 있고 시는 서점에서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공통된 원인은 자본주의에 있다. 흥행작이 되느냐 베스트셀러가 되느냐로 작품의 성공을 판단하고 있다.

 언제나 흥행에 성공하는 작품이 인정받는 것은 아니다. 작품의 시한은 존재하는 동안 평생 지속되기 때문이다. 저작권이 생긴 이래 고전이라 불리는 작품은 여전히 전 세계 어디에선가 상영이 되고 소장 매체가 팔리고 있다. 시 또한 그렇다. 우리가 부르는 노래의 가사가 시의 모습이고 여전히 쓰이고 불리고 작게나마 존재를 알리고 있다.

 그것이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우리는 정말 잃을지도 모른다. 다만, 지키려 애쓴다면 우린 조금 더 길게 지킬 수 있을 것이다. 진정 아낀다면, 사라질 것이라는 예상보다는 지속될 것이라는 기대와 노력이 작은 돌이 되어 지킴의 성벽이 되지 않겠는가?

 영화는 산업과 예술의 경계에 놓여있고, 시 역시 예술과 출판물의 경계에 놓여있다. 누구 하나 당당히 그것은 더 이상 예술이 아니다 혹은 돈이 우선이라고 단정 지을 수 있는가? 과거의 시가 노래가 되고 신화가 되어 글로 남겨져 영화의 장르가 되었다. 우리는 과거와 현재의 근간을 자본에 의해 놓쳐버릴지도 모른다. 얼마나 많은 것을 잃을지도 모르는 체 말이다.

그것이 영화 혹은 시를 계속 이야기해야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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