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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nocharlie Jul 18. 2019

품위에 대하여

<불워스 Bulworth>

품위에 맞게 행동하라고들 한다. 품위는 사람이 갖추어야 할 위엄이나 기품을 말하며, 직품과 직위를 아울러 이르는 말이기도 하다. 즉, 품위란 그 사람의 직업적 혹은 사회적 위치가 중요한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품위는 과연 지켜지고 유지되고 있는가? 직업 귀천 의식이 여전히 자리하고 있고, 권력의 우위를 이용하여 약자들에게 부당행위를 하는 이른바 ‘갑질’이 뉴스에 오르내리는 요즘 품위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직장 내 부서 팀장의 급여명세서에는 품위유지비가 있다. 팀장이라는 직급에 맞게 거래처 혹은 부하직원을 대하는데 필요한 비용을 회사에서 지원해주는 것이다. 사관학교를 다니는 생도에게도 지급되고 고위 공직자에게도 지급된다. 이처럼 품위유지는 특정 지위, 대외적 이미지에 영향받는 사람에게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항목이다. 반대로, 그들이 품위유지비를 받는다는 것은 품위유지의 의무를 지녔다고 해석할 수 있다. 뉴스를 보면 “국회의원으로서 품위 좀 지키세요!”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품위유지비를 받는 국회의원은 품위유지의 의무를 이행하고 있는가?

     영화 <불워스>는 96년 3월 미국 캘리포니아주 상원의원 재임을 노리는 정치인 ‘불워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99년에 만들어졌지만 96년을 배경으로 삼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제작, 각본, 주연, 감독을 맡은 ‘워렌 비티’는 이미 81년 <레즈>를 통해서 자신의 정치노선을 분명히 했다. 러시아 혁명 후 미국인으로 유일하게 ‘붉은 광장’에 안장된 저널리스트이자 공산주의 급진주의자였던 ‘존 리드’의 이야기로 오스카를 거머쥐었다. 민주당 지지자였을 그가 바라본 클린턴 정부가 기대치에 미치지 못해서였을까?

     

본래 불워스는 트럼프와 묘하게 닮았다

영화 속 ‘제이 빌링턴 불워스’는 잘못된 투자로 전 재산을 다 날릴 위기에 처한 현직 상원의원이다. 재임 선거 일주일 전, 그의 선거 캠페인은 대중의 관심을 얻지 못하고 절망에 빠진 상태다. 고액의 생명 보험에 가입한 후, 자신을 살해할 살인 청부업자를 고용한다. 스스로 선택한 죽음 앞에 더 이상 가식이나 위선을 떨 이유가 없어진 그는 양복을 벗어 재끼고 흑인의 랩을 이용하여 거침없이 진실을 떠들어댄다. 경쟁자 혹은 언론인은 소위 품위에 맞지 않게 행동하는 그를 향해 저질이라고 비난과 조롱을 퍼붓는다.

불워스를 변하게 하는 니나 역의 할리 베리

     그들이 말하는 품위는 무엇인가? 고급 양복에 실크 넥타이를 매고 유세장이나 방송에 나와서 점잖은 말투로 입에 발린 소리나 하는 것인가? 상원의원에게 품위유지의 의무는 그런 것이 아니다. 자신의 선거지역을 위한 일, 지지자를 위한 일, 나라를 위한 일을 하기 위한 행위에 필요한 위엄과 기품을 유지하는 일이다. 실상은 선거자금을 모금하기 위해 이익단체와 결탁하고, 기득권을 위해 흑인의 인권과 복지를 외면하고, 오로지 자신이 살아남기 위한 행위만을 하다가 자신이 진보인지 보수인지도 헷갈릴 정도이다.

래퍼가 된 상원의원

     정돈된 슈츠가 아닌 머리엔 비니를 쓰고 트레이닝복에 운동화를 신고 방송에 나가 힙합 비트에 맞춰 랩 하듯 진실을 말하는 불워스의 모습에 시민들은 열광한다. 위선과 가식에 지친 시민들은 그의 행동에서 진실과 변화를 본다. 시민들에게 불워스는 진정성이란 최고의 품위를 갖춘 정치인으로 받아들여진다. 거짓된 품위가 아닌 진실된 저질의 승리이다. 영화의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면 그 유명한 ‘엔리오 모리꼬네’가 작업한 기품 느껴지는 오리지널 스코어가 흘러나온다. 이내, 영화에 등장하던 힙합 비트가 또 등장한다. 엔딩 크레디트가 마무리되는 내내 두 음악은 일정 간격으로 번갈아 흐른다. 영화의 마지막까지 품위와 저질에 대한 질문은 멈추지 않는다.

     정치인들이 불워스와 같이 파격적인 복장을 하고 저속한 단어로 직설화법을 구사한다고 누구나 표를 얻을 수 있을까? 최근 한국정치의 트렌드는 아무래도 막말인 것 같다. 불워스와 같이 동료 정치인과 언론의 질타를 받는다. 다른 점은 시민들의 지지를 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불워스처럼 양복을 벗지 않았다는 것이 이유는 아닐 것이다. 문제는 진정성과 통찰력이다. 무엇이 문제인지 꿰뚫어 보는 통찰력과 진정으로 접근하고 진실을 말하는 것이다.

진보와 보수의 화합과도 같은 커플사진

     누구나 처음 일을 시작할 때 초심을 새긴다. 불워스가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고민하기 전, 그에게도 초심이 있었을 것이다. 우리를 인상 찌푸리게 하는 대한민국의 정치인들에게 역시 각자의 초심이 있을 것이다. 물론 초심을 잘 유지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들은 품위를 요구받는 사람들이다. 그런 어려운 일을 잘 이행하길 기대받는 사람들이다. 품위유지의 의무가 있는 사람들이다.

     그 나라의 정치 수준은 그 나라의 국민 수준이라고 한다. 우리는 선거를 통한 대의민주주의를 행하고 있다. 대의민주주의의 핵심은 투표이다. 결국, 정치 수준은 국민이 만들고 국민 수준은 투표로 인해 결정되는 것이다. 우리의 품위를 높이고 낮추고는 우리 손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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