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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nocharlie Jul 18. 2019

기억은 주체에 종속되는가?

<당신과 함께한 순간들>

과거를 지나 현재를 살아가는 모든 순간은 기억으로 남는다. 과거를 떠올리는 것을 기억이라고 부르지만, 그것은 기억을 설명하는 일부일 뿐이다. 기억은 인상, 지각, 관념 등을 불러일으키는 정신기능의 총칭이다. 경험한 것을 특정 형태로 저장하였다가 나중에 재생 또는 재구성하는 현상이다. 저장된 것을 재생하기에 사람들은 본인의 기억을 절대적으로 신뢰한다. 자신의 기억이 완벽하다고 믿는다. 과연 개인의 기억은 완벽한 것인가?

     

젊은 시절 남편의 모습을 한 프라임

영화 속 가까운 미래에 ‘프라임’이라고 불리는 기계가 등장한다. 일종의 인공지능인 이 기계는 세상을 떠난 사람을 그리워하는 이들을 위한 기계이다. 기계에 죽은 이의 생전 정보와 성격, 말투, 습관, 에피소드 등을 입력시키면 홀로그램을 통해 원하는 나이의 모습을 재생시킨다. 프라임은 입력된 정보를 분석하고 학습하면서 생전의 목소리로 사람들과 대화한다.

     점점 기억을 잃어가는 노년의 여성 ‘마조리’는 먼저 떠난 남편 ‘월터’의 젊은 시절 모습으로 복원시킨 프라임과 대화한다. 프라임 월터가 가진 정보는 마조리, 딸 테스, 사위 존에 의해서 입력된 정보를 기반으로 한다. 중요한 정보는 강조하도록 설정되고, 불필요한 정보는 발설하지 않도록 설정된다. 그 정보에 대해 프라임은 입력된 사실이기에 정확한 기억이라고 신뢰한다. 해변가 저택이라는 공간 안에서 처음 마조리와 프라임 월터로 시작되는 대화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테스와 프라임 마조리, 존과 프라임 테스로 이어진다. 이들의 상황에 영화의 적극적인 개입이 이루어진다. 그들이 기억하는 사실과 다른 진짜 사실을 보여준다. 실제 기억 속 영화 보던 날, 청혼하던 순간, 불행하기도 했던 한때 역시 존재했음을 보여준다. 영화는 사람의 가지는 인상, 지각, 관념이 얼마든지 변질되거나 왜곡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즉 기억을 절대적으로 신뢰할 수 없음을 이야기한다.

프라임과의 대화는 정보의 교환과 같다

     기억을 일종의 정보라고 간주한다면 정보의 유실 여부와 정보의 보유 여부에 의해서 인간의 존재를 그린다. 기억이라는 큰 퍼즐을 완성하기 위해 살아가는 존재로서 말이다. 마조리의 기억은 뇌 안의 퇴적층과 같다. 기억하지 못할 뿐 거기에 있다는 걸 안다. 기억할 때 기억 그 자체가 아니라 기억하는 마지막 순간을 기억하는 것이다. 복사본의 복사본처럼 점점 흐릿해진다. 강렬한 기억도 완전히 믿을 수 없다. 끊임없이 조금씩 유실된다. 정보가 없는 사람이 버티기 힘들 듯 마조리는 그렇게 생을 마감한다. 테스는 완벽한 정보를 원하지만, 자신이 가지고 있지 않은 기억은 결코 가질 수 없는 정보이다. 큰 퍼즐을 완성하기 위해선 튀어나온 조각이 있으면 들어간 조각이 있어야 한다. 들어간 조각만 존재하고 튀어나온 조각이 없는 테스는 무너져 내리고 만다. 존을 제외한 모두가 세상을 떠난 저택, 완벽하진 않지만 온전한 자신만의 기억을 간직하고 있는 존은 더는 저택에 머무를 수 없다. 자신의 기억보다 더 크게 자리한 여백의 기억이 저택에 머물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의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저택에 남은 월터, 마조리, 테스 세 프라임 간의 대화 장면이다. 그들의 대화 장면은 홀로그램으로 인한 이미지로 인해 그들의 존재가 프라임이 아닌 진짜 월터, 마조리, 테스처럼 보인다. 이내 그들의 대화를 통해 프라임 임을 확신할 수 있다. 그들 사이의 한정된 기억의 정보를 교류하면서 그들 간의 퍼즐을 맞춰나간다. 입력된 기억이 정보의 습득과 학습을 통해 기억을 창조한다. 그렇게 창조된 기억은 어쩌면 생전 마조리, 테스, 존이 기억하고 있는 것보다 더 진실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인간은 사라지고 남은 세 프라임들 간의 대화

     기억이란 기억의 주체에 종속된다고 생각하기 쉽다. 완벽히 기억하고 제어 가능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자신이 가진 기억이 정확하다고 친구들과 내기를 한다. 법정에서 증인의 발언 역시 증인의 기억에 의지하고 있다. 기억에 대한 신뢰는 이토록 절대적이지만 그 완벽함에 대해서는 허점투성이다. 정말 중요한 것은 잘 기억나지 않고, 별 대수롭지 않은 것은 문득 떠오르곤 한다. 기억은 결코 기억의 주체에 종속되지 않으며 제어 역시 불가능한 것이다. 기억은 기억 그 자체로 생명력을 가진다. 자신이 가진 후회나 갈망하던 모습을 흡수하여 기억을 왜곡시키고 그게 본래의 기억처럼 믿게 만든다. 그렇게 만들어진 기억은 자신에서만 머무르지 않고 가족, 주변으로 전파된다. 기억이 스스로 변모하기도 하지만 애초에 잘못된 정보로 인한 기억의 왜곡이나 유실도 있다. 전의든 악의든 거짓말은 그 자체로 잘못된 정보를 양산하여 기억을 왜곡한다. 큰 사고나 충격으로 인한 기억을 유실도 벌어지곤 한다. 인간의 감정을 배제한다고 해도 여러 요인으로 인해 완벽한 기억을 유지하기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다.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기록이 아닌 기억은 애초에 인간의 행위이기에 감정적인 것이고 생명력을 지닌 것이다. 인간이 연구를 통해 기억의 원리를 연구했지만, 여전히 많은 영역에서 뚜렷하게 밝혀내지 못하고 있다. 그런 면에서 기억에 대한 신뢰를 논의하기는 쉽지 않다.

     이 모든 불안요소를 가짐에도 여전히 인생을 살아가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기억이라 하겠다. 기억이 지금의 자신을 만들었음은 분명하고, 기억하기 위해 현재를 살아갈 수 있고, 기억을 남기기 위해 미래를 생각할 수 있다. 기억에 위안을 받은 적도 있고, 기억에 교훈을 얻은 적도 있다. 기억이란 인간이 살아가게 하는 거대한 에너지와도 같다. 지금 자신의 기억이 맞거나 틀리거나를 고민하기보단, 그 기억이 주는 감정을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 그 기억이 사랑하거나 소중한 사람과의 기억이라면 더욱 그렇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는 것이 기억이지만, 지금 당신과 함께한 순간들은 틀리고 싶지 않다. 항상 맞게 간직하고 싶다. 틀리더라도 맞게 믿고 싶은 것, 그것이 사람의 감정이다. 그 사람을 떠올리면 기억나는 것들, 당신과 함께한 순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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