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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nocharlie Jul 18. 2019

절대 새것으로 대체될 수 없는 존재, 어머니

<맥북이면 다 되지요>

사람이나 물건이나 시간의 흐름을 거스를 수 없다. 젊고 팔팔했던 청춘은 시간이 지나면 늙고 지치기 마련이고, 반짝이고 빛나던 신상품도 구닥다리 퇴물이 되기 마련이다. 자연스레 우린 ‘새것’을 찾고 선호하곤 한다. 그 사이 ‘헌 것’은 조용히 사라지거나 눈에 띄지 않는 곳으로 밀려난다. 감독은 이 서글픈 정서에 어머니의 모습을 덧칠하여 감정이입시킨다.

     장병기 감독의 첫 단편영화 <맥북이면 다 되지요>의 제작 의도는 이렇다. “맥북이 너무 갖고 싶었습니다. 나는 왜 맥북을 가지지 못했는가를 생각하다가, 어머니의 부재를 느꼈습니다. 그리고 어머니의 생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그의 말처럼 이 영화에서 어머니의 존재와 역할은 절대적이다.

가족의 관심에서 소외된 어머니

     고령에서 농사를 짓는 효선은 조기폐경을 맞이한다. 호르몬의 변화로 열이 나고 잠을 잘 이루지 못한다. 가족 중 누구도 그녀의 상태에 관심이 없다. 남편은 어린 다방 종업원에 한눈을 팔고, 딸은 같은 여자임에도 엄마에게 무심하고, 아들은 맥북을 사달라고 조른다. 화가 치밀고 서운하지만, 이내 아들에게 맥북을 사주기 위해 늙은 암소를 내다 팔려고 한다.

     영화는 자연스레 효선과 늙은 암소를 겹쳐 보이게 한다. 평생 일만 하다가 늙었는데, 이젠 새끼를 낳지 못한다고 헐값 취급받는 암소에 효선은 분노한다. 한 푼이라도 아끼기 위해서 직접 만든 면 생리대를 빨아가며 고생하게 한 생리작용을 더 이상 안 해도 된다는 후련함은 없다. 상실감과 서글픔에서 비롯된 화가 치밀어 오른다. 무엇이든 척척 해주던 어머니의 역할, 함께 자식을 키우며 의지하던 남편에게 여자로서의 매력은 모두 이미 오래전에 사라졌다. 그렇게 새것이 좋냐고, 맥북이 대체 왜 필요하냐고 묻는 효선의 질문에 아들은 말한다. “맥북이면 안 되는 게 없다.” 자식을 낳을 수 없고, 생리작용이 멈추었고, 관심이 사라진 불가와 불능의 존재가 된 효선에게 안 되는 게 없다는 맥북이란 존재는 끝내 그녀를 무릎 꿇린다.

왠지 자신의 처지가 암소처럼 느껴진다

     감독이 가지지 못했던 맥북을 효선의 아들은 기어이 가지게 된다. 소를 판 돈으로 할 수 있는 선택은 조기폐경을 막아 줄 호르몬 치료와 아들의 맥북이다. 우리의 어머니가 그러했듯이 효선은 아들의 맥북을 사고, 자신을 위해선 선풍기를 산다. 가만히 있어도 더운 효선에게 새 선풍기는 꼭 필요한 물건이지만, 맥북이 아들에게 당장 절실히 필요한 물건은 아니다. 그저 효선이 포기한 자신을 위한 선택의 반대편에 있을 뿐이다. 우리들의 어머니는 항상 그렇게 자신을 위한 선택을 포기하셨다. 피임약을 먹는 딸의 모습은 모든 여성이 어머니의 모습으로 태어나는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우리가 당연한 듯 잊고 있었던 어머니라는 존재. 가족 내에서 나의 위치를 떠올려 본다면, 어머니의 위치와 존재가 얼마나 크고 중요한 것인지 깨닫게 될 것이다. 절대 새것으로 대체될 수 없는 존재인 어머니이다. 어머니에게도 이름이 있다. 늙은 암소에게 마지막이란 아쉬움에 이름을 지어준다. 하고 싶은 것 모두 하라는 뜻에서 ‘맥부기’라고 지어주지만, 효선 자신은 끝내 이름 한번 불려보지 못한다. 우린 엔딩 크레디트를 통해서 그녀의 이름을 확인할 수 있다. 엄마, 아줌마, 어이가 아닌 진짜 이름을 말이다.

맥부기

     감독의 첫 단편이라는 사실이 놀라울 정도로 각본과 연출이 훌륭하다. 영화 속 짧은 몇 개의 삽화를 통해서 효선이 살아온 삶 전체를 고스란히 짐작하게 하는 연출력은 단편임에도, 마치 장편을 보고 난 것 같은 긴 여운을 선사한다. 시종일관 잃지 않는 유머와 서정성을 아우르는 여유까지 선보인다.

     대구는 상대적으로 영화 창작이 활발하지 않은 지역이다. 그런 점에서 부산 평화영화제 심사위원 특별상, 제15회 아시아나 국제 단편영화제 국내 경쟁 대상을 받은 이 작품은 무척 돋보인다. 극장에서 보기 쉽지 않은 단편영화이지만, 또 다른 훌륭한 지역 영화인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 무척 흐뭇하고 앞으로의 행보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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