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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nocharlie Jul 18. 2019

사라져 간 것들을 위하여

<The Artist>

“대중은 틀리는 법이 없을뿐더러, 신선한 걸 원하고 있어.” 영화 <아티스트> 속 제작자 짐머가 말했다. 일리 있는 말이다.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슈퍼히어로 영화도, 국내 흥행의 한 페이지를 쓴 <신과 함께>도 과거에는 상상하기 어려웠던 신선한 소재의 영화들이다. 이는 컴퓨터 그래픽이 중심이 된 영화기술의 전반적인 발전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작품들이다. 영화기술의 발전은 이전에 시도조차 할 수 없었던 소재들을 영화라는 공간으로 들여왔다. 대중은 새로운 소재, 새로운 기술을 경험하며 열광했다. 그리고 스타에게 열광했다.

     영화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 중 하나는 유성영화의 등장이다. 무성영화를 통해 영화가 대중에게 다가섰다면, 유성영화는 기술의 발전을 통해 사운드를 동반자로 확보하면서 무한한 이미지 전달의 가능성과 표현력을 증명하게 되었다. 그렇게 무성영화는 구시대의 유물로 남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벤저스>의 개봉을 얼마 남기지 않은 2012년 3월 84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흑백 화면과 무성영화 형식의 <아티스트>가 작품상, 감독상을 포함 5개 부문을 석권하는 이변이 벌어졌다. 이 영화의 무엇이 사람들을 매료시켰을까?

무성영화 시대의 스타 조지

     영화 <아티스트>는 무성영화 시절의 영화와 배우들에 대한 존경과 애정이 담긴 드라마이다. 유성영화의 등장이란 시대적 상황을 통해 무성영화의 슈퍼스타 조지가 겪는 인생의 굴곡과 사랑을 그린다. 4:3 비율의 흑백 화면과 배우들의 목소리 없이 음악으로 채워진 영화는 그 자체가 무성영화에 대한 오마주이다. 우리가 어쩌면 잊고 있었던 당대의 배우들을 통해 영화의 순수성을 조명한다.

     출연하는 영화마다 흥행에 성공하는 영화배우 조지는 당대 최고의 인기스타이다. 그를 보며 패피는 배우의 꿈을 키워나간다. 조지의 인기는 유성영화라는 새로운 시대의 도래로 위기를 맞게 된다. 그의 행동과 표정은 대중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지만, 소리가 끼칠 영향은 엄청나다는 것을 스스로 알고 있다. 조지는 무성영화를 지키기 위해 전 재산을 들여 직접 영화를 제작하여 감독한다. 패피는 단역부터 차근차근 경력을 쌓으며 새로운 스타로 조명받기 시작한다. 무성영화를 대변하는 조지와 유성영화를 대변하는 패피는 서로를 사랑하고 있지만, 그들을 둘러싼 상황은 서로를 멀어지게 한다. “새것이 들어가려면 옛것이 자리를 비켜야 하죠. 그게 삶의 이치잖아요.” 패피의 인터뷰처럼 무성영화는 자리를 내어주고 만다. 조지의 영화가 실패하고, 같은 날 개봉한 패피의 영화는 성공한다. 그렇게 두 사람은 그리고 무성영화와 유성영화는 다른 길을 걷는다.

유성영화의 등장을 알리는 소리의 공포

     영화는 조지를 통해 무성영화의 몰락과 사라진 스타들을 추억한다. 영화는 스타를 만들어냈고, 영화와 스타는 같이 했다. 안타깝게도 시대는 영원한 스타를 허락하지 않는다. 영화 속 조지는 아내와의 관계가 좋지 않다. 아내는 대중을 상징한다. 아내는 대화를 원하지만 조지는 대화를 피한다. 대화를 나누지 않는 두 사람의 관계는 지속될 수 없다. 조지는 아내에게 “너 말고도 많아”라고 말하지만, 몰락한 스타의 주변에는 결국 아무도 남지 않는다. 조지는 현실을 인정한다. “말만 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목소리를 잃은 배우는 그렇게 잊히고 만다. 패피는 여전히 조지를 기억한다. 이젠 유성영화의 스타가 됐지만, 여전히 그를 그리워하고 남몰래 그를 지켜준다. 무성영화란 토대가 있었기에 유성영화가 탄생할 수 있었다. 대중은 빨리 잊을 수 있으나, 영화는, 그리고 패피는 기억하고 있다.

새로운 스타의 탄생 패피

     자신의 옛 영화 필름을 모조리 불태우는 조지 그러나 유독 태우지 못하고 끝까지 지켜낸 필름이 있다. 단역이었던 패피와 함께 찍은 영화의 NG 장면들이다. 자신의 옛 영광이었던 영화들은 이젠 더 이상 인정받지 못한다. 그가 마지막까지 지켜낸 것은 결국 패피에 대한 사랑이자 영화에 대한 사랑이다. 자신은 유성영화로 인해 몰락하고 말았지만, 영화 자체에 대한 사랑과 애정은 버릴 수 없다. 패피가 여전히 조지를 기억하고, 조지 역시 여전히 패피를 사랑한다. 두 사람은 서로를 사랑했고, 영화를 사랑했다.

     패피의 아이디어로 두 사람은 함께 새로운 영화를 찍는다. 조지의 목소리는 그가 신은 탭댄스 구두의 소리가 대신한다. 둘은 온몸으로 춤을 추고 움직인다. 두 사람의 표정은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다. 함께 할 수 없을 것 같았던 한 공간, 그들이 사랑했던 영화를 함께 찍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영화 최초의 목소리 대사가 등장한다. 만족을 표시하는 감독과 제작자는 말한다. “한 번만 더 해줄 수 있나?”

그들은 모두 배우라는 이름의 예술가

     예술가는 예술작품을 창작하거나 표현하는 것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을 일컫는다. 그들의 창작과 표현에 대중의 감정이 움직일 때, 사회적으로 인정받는다. 대중의 감정에 의한 지지가 여전히 가장 기본적인 평가 잣대이지만, 대중이기에 감정이 아닌 다른 요소들로 인해 평가 잣대가 흔들리기도 한다. 당대에는 인정받지 못했던 작가들이 후대에 재조명받는 경우가 있고,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대중의 지지는 분명히 중요한 요소이지만, 그것을 끌어내는 것은 결국 예술가의 진심이다. 영화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나오는 진심과 노력이 대중의 감정을 움직인다. 무성영화 혹은 유성영화는 이름표에 불과한 것이다. 무성영화 시절의 스크린 뒤쪽은 절대 침묵해야 하는 장소이다. 유성영화를 찍는 현장에서 배우가 아닌 카메라 뒤 모든 스탭은 침묵해야 한다. 작품의 완성에 혼신의 정성을 다하고 관객의 관람에 몰입도를 높이기 위해서이다. 그들은 침묵하고 있지만, 영화를 사랑하고 있다. 모두 조지와 같은 소리 없는 예술가이다.

     아카데미 시상식은 영화산업을 주도하고 있는 나라인 미국의 영화제이다. 영화의 시작을 주도했음은 물론 유성영화를 통해 헐리우드 스튜디오 시스템의 정착과 콘텐츠의 세계화를 이뤄냈다. 단순히 영화산업의 육성에 그치지 않고, 영화 자체의 질을 높이고 영화문법의 토대를 만들어냈다. 그 바탕으로 수많은 명작과 스타들이 탄생했다. 찰리 채플린과 버스터 키튼과 같은 무성영화의 스타들은 전성기에 비해 초라한 말년을 보냈다.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 재평가되기 시작했다. <아티스트>는 당시 영화의 전성기를 이끌었지만, 사라져 간 무성영화 스타들을 조지를 통해 추억한다. 영화 역사의 일대 전기를 추억하는 <아티스트>를 아카데미가 좋아할 이유는 이토록 차고 넘친다.

등 뒤의 그림자는 지나간 전성기와 같다

     모든 것은 대중에게 달려있다. 대중은 여전히 영화와 스타에 열광하고 있다. 과거와 달리, 영화관이란 한정된 공간이 아닌 다양한 경로를 통해 선보이고 있다. 이런 변화가 미치는 영향들로 영화는 또 변할 것이다. 변하지 않는 것은 대중이 관객으로서 변함없이 역할을 할 거란 것이다. 대중은 여전히 신선한 것을 찾는다. 그렇다고 신선한 것만을 쫓지는 않는다. 영화예술의 가치와 순수성을 알고 있는 대중일수록 새로운 것에 대한 자극과 신선함을 더욱더 잘 느낄 수 있다. 소리가 없던 시절의 배우들은 과장된 몸짓으로 온몸으로 표현했다. 그들의 몸짓은 소리와 만난 이후로 감정을 담은 대사로 대체됐다. 시대는 변했지만, 배우들의 노력은 변함없다. 무성영화처럼 숨을 몰아쉬는 소리가 없었다면 조지와 패피가 얼마나 열심히 춤을 췄는지 알 수 없었을 것이다. 당시의 배우들은 슈퍼히어로가 될 순 없었지만, 그 순간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 이유는 하나, 관객에게 감동을 선사하기 위해서다. 지나간 수많은 배우를 존경하지 않을 수 없다. 대중이 그들의 노고를 아는 순간 그들은 예술가가 된다. 그리고 대중은 그들에게 말할 것이다. “한 번만 더 해줄 수 있나요?” 요구가 계속되는 한 영화와 배우들은 사양하지 않고 계속 응할 것이다. 영원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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