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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nocharlie Jul 18. 2019

스포츠 스타와 영웅 서사

<The Natural>

Natural은 한 분야에서 탁월한 재능을 타고난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신화적 영웅시대를 벗어난 오늘날, 우리는 스포츠 스타를 영웅시하곤 한다. 어두운 시대적 상황이 낳은 사회적 정치적 영웅도 있겠으나, 대중의 선망으로 탄생한 친근한 영웅은 주로 스포츠 분야에서 배출되었다. 월드컵이나 올림픽의 메달리스트, 혹은 한계나 역경을 이겨낸 운동선수들이 포함된다.

     영화의 원작은 퓰리처 수상 작가인 로버트 맬러무드의 데뷔작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죽인 판사』로, 야구를 소재로 한 최초의 소설이다. (국내에는 아예 『내츄럴』이란 영화와 동일한 제목으로 출판되었다.) 원작의 비극적인 마무리와 달리, 배리 레빈슨 감독은 당시 미국을 대표하던 스타‘로버트 레드포드’를 기용하여 모든 미국인의 오락인 야구를 영웅신화로 바꾸어 놓는다.

     

로이 홉스의 등번호

1984년 작품이 1930년대를 다루는 이유는 분명하다. 이른바 ‘야구의 재탄생’ 시기였기 때문이다. 투수 위주의 경기가 진행되던 소위 ‘데드볼’ 시대를 지나 공인구와 규칙이 재정립되면서, 타자 위주의 소위 ‘라이브 볼’ 시대가 도래하게 된다. 야구의 인기를 단숨에 끌어올린 ‘베이브 루스’ 역시 이 시기에 활약하였다. 본격적인 야구 스타의 배출이 시작된 것이다. 2차 세계대전으로 잠시 침체기를 겪기도 했지만, 21년 라디오 중계가 시작되고, 33년 올스타 게임이 개최되었고, 36년 명예의 전당이 건립되었다. 미국인들에게 야구라는 스포츠가 최고의 오락으로 확실히 자리하게 된다. 20년 초에 흑인들의 리그인 ‘니그로 리그’가 운영되고, 전쟁 기간엔 ‘여자 프로야구 리그’가 형성되기도 했다. (이를 그린 영화로 <그들만의 리그>가 있다.) 수많은 인물들이 등장하고, 수많은 이야기가 생기게 된 것이다.

     영화는 미국 신화학자 조지프 캠벨의 영웅 서사를 충실히 따라간다. 구조는 간단하다. ①주인공이 비정상적으로 태어난다. ②어릴 적 비범한 능력을 보이지만 버림받는다. ③온갖 고생을 한다. ④은인을 만난다. ⑤자신을 해치려는 적대자를 물리친다. ⑥화려하게 귀환한다.

      주인공 로이 홉스는 아버지의 믿음 아래 어린 시절부터 야구에 탁월한 재능을 보인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슬픔에 잠기지만, 하늘의 계시처럼 집 앞 큰 나무에 벼락이 떨어지고 나무가 갈라진다. 홉스는 갈라진 나무를 직접 깎아 나무 방망이를 만들고 번개 표식과 함께 ‘원더보이’라 명명한다. 주인공 혹은 주인공 방망이의 비정상적인 탄생이다. 제우스를 연상시키는 벼락과 번개는 흡사 야구는 신탁에 의한 소명의식이다.

영웅의 무기

     성인이 되어 주목받는 투수로 프로구단 입단을 하게 된 홉스는 우연히 만난 오만한 메이저리그 강타자와 내기를 하게 되고, 삼구삼진을 잡는다. 이는 결국 각 종목 최고의 선수들만 골라 살해하던 연쇄살인범의 표적이 되는 결과를 낳게 된다. 총격으로 인해 생사의 고비를 겪으며, 비범한 능력을 지녔음에도 좌절하고 만다. 재능과 과도한 자신감이 빚은 시련이다.

     16년이 지나고, 은퇴할 나이에 외야수로 전향하여 간신히 메이저리그를 밟은 홉스. 부상으로 인한 재활과 갖은 고생을 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꼴찌팀 뉴욕 나이츠는 많은 나이, 팀 최고 강타자와 동일 포지션으로 인해 퇴물 취급하고 기회는 주어지지 않는다. 간신히 얻은 대타 기회에서 홈런을 작렬하는 홉스. 홈런과 동시에 번개가 번쩍이고 재능이 다시 빛을 발한다. 관중들은 이내 그와 ‘원더보이’ 방망이에 매료되고 만다. 단순히 개인적 재능을 넘어 팀에 큰 활력을 불어넣어 연승을 거듭한다. 이는 적대자의 등장을 부른다.

     그에게 적대자는 판사이다. 구단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으며, 시즌 우승에 실패할 경우 팀을 완전히 장악하게 된다. 판사와 도박사, 신문기자는 그들의 힘 그리고 미모의 여성 ‘메모’를 이용하여 홉스를 흔든다. 화려한 명성과 메모와의 달콤한 연애에 빠져 긴 슬럼프를 겪게 되고, 팀은 연패에 빠진다. 조력자가 필요한 상황이 만들어진다.

그의 조력자이자 첫사랑

     어린 시절 첫사랑 아이리스가 은인으로 등장한다. 슬럼프에 허덕이는 와중 맞이한 시카고 원정에서 아이리스는 관중석에서 일어나 홉스를 응원한다. 구원의 빛을 받고 날린 홈런은 슬럼프의 종료를 알리듯 전광판의 시계탑을 강타한다. 판사와 아이리스는 철저하게 대비되게 묘사된다. 빛을 극도로 꺼리고 어두운 사무실의 이미지로 묘사되는 판사와 밝은 색상의 의상과 환한 빛을 동반하는 아이리스의 이미지는 타락의 유혹과 구원의 손길을 표현한다. 홉스의 반등과 함께 팀은 다시 연승가도를 달리게 되지만, 총격 후유증이 다시 그를 덮친다.

     우승에 1승을 남겨둔 상황, 총격 후유증으로 야구를 할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된 몸 상태, 판사는 메모의 달콤한 속삭임과 거액의 돈으로 그를 매수하려고 한다. 많은 나이, 야구를 할 수 없는 몸 상태, 미래를 위해선 필요한 돈 현실적인 상황들이 그를 혼란하게 한다. 흔들리는 그를 잡아주는 것은 역시 아이리스이다. 먼 길을 돌아온 그에게 인생 최고의 순간을 위한 도전을 응원한다. 모든 기록을 다 갈아치우는 세속적인 목표가 아닌 그저 야구를 한다는 것, 가진 최고의 실력을 발휘한다는 것, 그로 인해 사람들은 꿈과 희망을 품는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그 유명한 헤드라이트 홈런 장면

     자신의 마지막 순간을 장식하기 위해 출전을 강행한 홉스. 팀이 지고 있는 9회 말 역전 결승 홈런을 날린다. 볼은 계속 날아가 조명탑을 맞히고, 마지막 베이스 러닝을 축복하듯 폭죽과 같은 빛은 적대자를 물리친 영웅 서사의 절정을 화려하게 장식한다. 아이리스와 함께 고향 농장으로 돌아간 홉스. 아들과 함께 캐치볼을 즐기는 모습은 화려하거나 성대하진 않지만, 가장 평화롭고 이상적인 영웅의 귀환을 보여준다. 그리고, 한 편의 영웅서사시가 완성된다.

     관객이란 동등한 입장에서 영화와 스포츠는 분명 공통점이 존재한다. 영화 속 캐릭터나 경기장 안의 선수가 될 순 없다. 대신 그들의 연기와 경기를 통해 우린 오락적인 재미를 느낀다. 오락적인 재미를 넘어서는 감동을 경험한다. 대리만족의 결과는 스타와 영웅을 낳는다.

영웅의 귀환

     스포츠는 영화와 비교할 때 소비적인 면보다는 생산적인 면이 크다. 최선을 다해 목표를 이뤄가는 모습은 뻔한 감성이 아닌 인간적인 감동을 전해준다. 스포츠 영화는 재미와 감동에 더해 윤리적 성향까지 품은 경우가 많다. 스포츠 영화 속에서 나타나는 윤리적 성향으로는 아마추어리즘이나 페어플레이, 도전정신, 스포츠의 숭고한 이념과 가치와 같은 긍정적 측면과 학업결손, 약물중독이나 도핑, 경기장 폭력, 성차별이나 인종차별, 상업주의, 자본에 의한 잠식 같은 부정적 측면이 있다. 영화를 보는 우리는 스포츠계의 이면에 얼마나 많은 문제점이 있으며, 나아가 그동안 어떠한 사회 이데올로기와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었는지 알게 된다. 영웅 서사와 결합된 이야기는 이런 문제들의 옳고 그름을 분명하게 하고, 감정적으로 고조시켜 가슴속으로 파고든다.

     야구라는 스포츠는 기타 종목과 달리 시간제한이나 점수 제한이 없다. 9번의 공격과 수비는 희로애락이 혼재된 인생의 굴곡과도 같다. “경기가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라는 유명한 야구 격언은 비단 야구 경기에만 한정된 말이 아니다. 포기하지 않는 한 삶은 계속되고 어떻게 다가올지 예상할 수 없다. 우리가 버티며 살아가는 이유이며, 야구란 스포츠가 매력적인 이유이다. 인생과 같은 야구를 품은 영화가 <내츄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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