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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nocharlie Jul 18. 2019

비극이라고 반드시 슬퍼야 할 필요는 없다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모>

 어느 날 갑자기, 눈앞에 마주한다. 예정에도 없었으며 피할 수도 없다. 비극은 슬금슬금 다가감을 알리면서 오지 않는다. 예고도 없이 갑자기 뒤통수를 맞는 것처럼 그렇게 다가온다. 다가온 비극에 슬퍼하며 일부러 사그라들 필요는 없다. 남은 시간이 짧다면 마지막 순간까지 더욱 활활 타올라야 한다.

 충남 금산군에 사는 이발사 모금산은 갑작스레 암 선고를 받는다. 허나, 그는 절규하지 않는다. 대신 영화배우란 자신의 꿈을 실현하기 위한 계획을 차분히 준비한다. 직접 시놉시스를 쓰고 소품과 의상을 준비한다. 영화를 공부하는 아들 스데반과 그의 여자 친구 예원을 불러 촬영을 부탁한다. 우여곡절 끝에 기어이 ‘사제폭탄을 삼킨 남자’라는 단편을 완성하고 크리스마스에 소수의 지인을 대상으로 상영회를 가진다.

모금산의 이발소

 영화는 자신의 꿈을 잊고 살았던 아버지 세대의 정서를 환기한다. 말수가 적고 감정표현을 극도로 아끼는 모습, 하루하루의 일상을 기록해놓은 노트들로 인해 휘어진 나무 책장은 지나온 삶의 무게를 가늠케 한다. 흑백 화면, 인물과 공간, 풍경을 담아내는 카메라 앵글, 작은 디테일까지 살려낸 미술까지 이 모든 조화가 영화가 그리는 정서에 일조한다. 스데반의 여자 친구이자 시나리오 작가인 예원은 금산의 시놉시스를 보고 채플린을 떠올리지만, 스데반은 아버지가 채플린을 알 리 없다고 단정 짓는다. 채플린을 비롯하여 5~60년대 무비스타들을 줄줄이 외우고 있는 모금산이다. 아버지에게도 영화배우란 꿈이 분명히 있었고, 생계를 위해 꿈을 포기한 사연을 시작으로 스데반은 자신이 몰랐던 아버지의 모습을 보게 된다. 모금산의 영화는 무성영화이다. 말수가 적은 모금산에게 딱 어울리는 형식이다. 말 대신 몸짓, 표정이 말해준다. 그의 인생이 치열한 인생의 역경을 온 온몸으로 헤쳐 나온 것처럼 말이다. 삶이란 인생이란 길 위를 걷는 것과 같다. 금산과 서울을 오가며 촬영하는 그들의 여정은 마치 모금산의 젊은 시절을 되돌아보는 듯하다. 스데반은 완성된 단편 ‘사제폭탄을 삼킨 남자’를 보며 단순히 단편영화 속 아버지의 얼굴이 아닌 캐릭터를 통해 투영된 진짜 아버지의 모습을 비로소 마주하게 된다. 삶은 인생이란 길 위를 걷는 것과 같다.

영화 찍자!

 암 선고나 출생의 비밀과 같은 비극적 소재가 영화 속 풍경과 조우되는 순간은 전혀 드라마틱하지 않다. 이렇듯 영화는 한 인간에게 닥친 비극을, 실제의 체감으로 기술한다. 무엇보다 빛을 발하는 것은 영화의 정서와 이런 체감을 완성한 기주봉의 연기이다. 단단하지만 배려 깊고, 쓸쓸하지만 오히려 덤덤한 반응과 엇박자의 웃음을 자아내는 모습을 통해 모금산을 완성한다.

 자신의 비극을 마주하며 절망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의 존재를 밝힘으로써, 그는 어쩌면 인생의 절정을 경험하게 된다. 모금산의 인생은 아무도 모르게 그저 소리 없이 사라져도 될 만큼 가벼운 인생이 아니다. 가늠하지 못할 만큼의 무게를 가진 삶이다. 사실 우리 모두의 인생이 그러하듯이 말이다. 그의 크리스마스에는 친구, 가족, 연인, 즐거움, 행복, 사랑에 단지 비극이 하나 더해졌을 뿐이다. 그저 그뿐이다. 병실 창밖으로 보이는 크리스마스 불꽃놀이는 선물과 같다. 마지막까지 온 힘을 다해 자신의 삶을 산 모금산에게 주는 상이다. 그의 삶이 얼마큼 이어질지 모르지만, 이 말을 건네고 싶다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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