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티켓.

배려에서 생존으로.

by Monochrome blues

주변의 기침 소리에 요새처럼 민감하게 반응했던 때가 있었을까요? 독감이 유행할 때라던가 메르스 때 생각이 잘 나진 않지만 이 정도까진 아니었어요. 길어야 한 두 달 좀 걱정하다 말았던 듯합니다. 신종플루가 처음으로 극성부리던 2010년 즈음에는 지금과 약간 비슷했을 수도 있겠네요. 하지만 군대에서 자체 격리 중이라 바깥세상이 얼마나 혼란스러웠는지 겪어보지 못했거든요. 휴가 외박이 통제된 터라 신종플루로부터도 열외 되었더랬죠.


살면서 콧물과 기침이 이토록 신경 쓰이던 때가 있었을까요?. 원래라면, 환절기가 돌아왔음을 알려주는 제비라던가 단풍 같은 존재여야 하죠. 아직 진화가 덜된 건지, 파충류처럼 일교차 심한 날씨에 취약한 몸이거든요. 목이 칼칼한 느낌은 언제 느껴도 기분 나쁜 종류의 감각이지만 워낙 자주 접해 그러려니 하곤 했죠.


그렇기에 짐은 언제나 관대했습니다. 이쪽이 취약한 것들이니 타인에게도 역시 너그러워야 하지 않겠어요?.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보고 뭐라 할 순 없으니 말입니다. 혹은 역지사지의 마음일 수도 있겠습니다. 코를 킁킁거리거나 기침하더라도 ‘저 사람도 나처럼 이맘때 약한가 보다’ 하고 말았으니깐요.


8_1.JPG 관조.


그런데 올해만큼은 상황이 달라졌어요. 은근히 신경 쓰입니다. 아니, 대놓고 예민 보스입니다. 사실 기침 자체는 생존을 위한 생리적 현상입니다. 침이 잘못 넘어간다거나 뜨거운 국물을 먹으면 기침이라던가 재채기 정돈할 수 있지 않겠어요? 콧물도 좀 훌쩍일 수도 있고 말입니다. 근데 주위를 돌아보다 보면 요샌 자꾸만 마음이 팍팍해져요. 어쩌다 공공장소에서 재채기가 나올 요량이면 얼른 옷자락에 얼굴을 파묻습니다. 하지만 이내 아차 싶어요. 주변 눈치가 보이거든요. 누군가에게 감시받는 기분입니다. 주위에 수십, 수백 개의 CCTV가 설치되어 있달까요.


당장 나부터 감시자 모드입니다. 지하철에서 이어폰을 끼고 모른 채 하더라도 기침 소리를 기가 막히게 잡아냅니다. 아니, 노력하지 않더래도 귀에 꽂혀요. 헛기침일 수도 있는데 괜히 신경부터 쓰여요. 움츠러듭니다. 그래도 괜찮을 거라, 별일 없을 거라 마음 다잡아가며 말이죠. 잠복기도 짧아졌단 기사를 보기도 했고, 요즘 같은 때라면 몸이 이상하면 알아서 집에서 쉴 거란 생각도 해보죠. 그렇게 다른 이들의 에티켓에 희망을 걸어보며 맘을 달래 보는 요즘입니다.


8_2.jpg 관음.


차라리 나 혼자 유난 떠는 쪽이길 바랍니다. 세상 사람들 모두 이리 걱정이 많아서야 어떻게 살겠어요.


에티켓은 더 이상 배려라던가 예의가 아닙니다. 생존을 위한 필수조건이 되었죠. 그 어느 때보다 조심하며 삽니다. 기침과 재채기는 반드시 품 속으로 가려서, 옷에 얼굴을 묻고 합니다. 신체 접촉은 피하고 너와 나의 거리를 지키죠. 몸이 조금 이상하다 싶으면 무리 안 하고 바로 쉬거나 집 밖으로 나서지 않습니다. 건강염려증 소리를 듣더라도 맘이 좀 편한 쪽을 택하는 편이죠.


행동반경에도 변화가 생겨갑니다. 밀폐된 공간엔 가급적 안 가려고 해요. 꼭 필요한 일이 아니면 말이죠. 카페에 갈 일이 있더라도 다른 손님들과 떨어져 앉으려 하거나 테라스를 택합니다. 지하에도 잘 안 가려 하고요. 회사에서 매분 매초 마스크 착용하고 있다고 할 순 없지만 최소한 동료와 말할 때만큼은 쓰고 있습니다.


8_5.jpg 거리두기.


옮을까 봐서도, 옮길까 봐서도. 에티켓을 챙겨봅니다.


처음엔 이 정도로 까칠하게 굴지 않았습니다. 동료 결혼식에 갔다가 확진자와 동선이 겹쳤던 게 화근입니다. 당시에 코로나 밀접 접촉자로 분류되진 않았지만, 자발적 검사도 받고 격리도 하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되었답니다. 처음엔 결혼하신 분이 더 놀라고 경황없어 보이셔 걱정 마시라 위로드렸습니다. 근데 자가 격리하며 곰곰이 생각해보니 제 부주의함도 있겠더군요. 턱밑까지 찾아왔던 순간을 생각해보니 스스로 더 조심하고 그래야겠단 생각하게 되었죠.


막말로 전 혼자 사니 괜찮다고 쳐요. 근데 회사 동료나 편의점 알바, 식당이나 마트 점원 등등. 사회생활하며 부득이하게 마주치는 사람들은 그게 아닐 수도 있잖아요. 가족과 함께하는 사람도, 가족 중에 젖먹이나 나이 드신 분이 계실 수도 있죠. 다른 건 몰라도 남에게 폐 끼치며 살고 싶지 않아 나부터 돌아보게 됩니다.


몇 배로 건강 관리하며 삽니다. 지금 이때만큼은 최대한 아프면 안 될 것 같아서요. 감기랑 코로나랑 분간해낼 자신이 없지 않겠어요? 기침감기라도 앓는다 치면 주변 눈총도 그렇고 나돌아 다닐 수 없겠더라고요. 그 어느 때보다 무리하지 않으며 신경 쓰며 살고 있죠. 불행인지 다행인지 매번 쓰고 다니는 마스크 덕분인지 환절기에 목 붓는 일 한 번 없이 그럭저럭 넘어가고 있답니다.


8_4.jpg 출입금지.


인간은 사회적 동물인지라 완벽히 격리되어 살 순 없습니다. 그래도 할 수 있는 선에선 조심해봅니다. 그래도 작은 소원 비슷한 마음이 있다면 말이죠. 주변에서 보기에 지금 상황에 너무 무뎌 보이지도 예민해 보이지도 않게. 딱 적당한 거리를 지키며 살고 있어 보였으면 하네요. 유난스러워 주위가 피곤하지도, 무뎌서 걱정시키도 않게. 딱 알아서 잘하는 그런 지점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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