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 스며든 습관적 불편함.
쉬운 질문과 어려운 질문 하나씩 던져봅니다. 쉬운 질문 먼저 나갑니다. 작년과 비교해 제일 많이 걸치고 다니는 물건은 누구실까요? 누가 뭐래도 마스크님이시겠죠. 패션 아이템이 아닌 생존 필수품이긴 하지만요. 그럼 반대는 무엇일까요? 제가 생각해 봤는데, 선글라스가 유력 후보입니다. 길거리에 사람들이 줄기도 했습니다만 선글라스 끼신 분들을 그 어느 때보다 만나 뵙기 어려운 요새입니다. 마스크를 기본으로 깔고 가는 요즘. 선글라스까지 끼면 연예인 공항 패션이거나 도둑놈 같아서요. 햇볕이 너무 쨍하면 먼가 이상하다 싶어도 몇 번 써봤는데 차마 모자까지 눌러쓰진 못하겠더군요. 아주 없는 건 아닌데. 괜스레 평소보다 드물어 보입니다.
올해의 마스크님만큼 사람들이 일관되게 착용했던 물건이 있을까 싶습니다. 롱 패딩이라던가 소위 ‘모나미 룩’이라 불렸던 검정 슬랙스 바지에 흰 셔츠. 옛날 옛적 어그 부츠. 다양한 물건들이 세상 사람들의 옷장을 천하 통일하기 위해 다투었더랬죠. 그럼에도 그 누구 하나 모두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했습니다. 일전에 2002년 붉은 악마가 전국을 휩쓸었지만 삼일천하에 불과하니 예외로 두겠습니다. 그런데 패션과 의료품 경계에 외롭게 계시던 마스크님께서 기어코 패권을 쥐셨습니다. 자의는 아니지 싶지만 말이죠.
후레쉬맨이라던가 바이오맨, 짐 캐리의 마스크, 브이 포 벤데타 등등. 이 사람들이 아닌 이상 아플 때 찾던 물건이었습니다. 독감이 기승을 부리고 콧물 훌쩍 기침 캥캥 일 때 면 마스크를 쓰곤 했죠. 그나마도 불편하여 착용하고 다닐 때가 손에 꼽습니다. 유난 떠는 것 같기도 하고 아프다고 티 내는 기분이라서요. 일단 불편해서 당신이 싫었습니다. 안경에 김서림 방지 코팅을 할 수도 없고. 안경잡이에게 마스크는 숨도 숨이지만 시야 방해가 치명적이거든요.
아, 그래도 당신을 찾던 때가 있긴 했네요. 방한용으로 신세 질 적 말입니다. 아무리 불편해도 살고는 봐야지 않겠어요? 손은 장갑, 귀는 귀마개라도 있는데 얼굴은 방법이 없습니다. 딱 군대에서 그러하였죠. 한창 건강하여 겨울에 눈이 오거나 길만 얼지 않았음 미친 듯이 자전거를 타러다닐 때도 그랬고요. 딴에는 평범함은 거부하겠다며 어느 웹툰 작가님이 출시한 제품을 애용했습니다. 웃는 이빨이 형형색색 화려했던 검정 마스크로 기억합니다. 그땐 어찌 그리 스스로 흑역사를 제조하는데 혈안이 되어있었나 모릅니다.
당신께서 반강제로 우리 일상에 스며드신 건 2017년 즈음부터였을 거예요. 혹은 2018년이라던가 19년 일 겁니다. 온 세상이 희끄무레하고 답답하게 물들곤 했으니깐요. 황사인지 미세먼지인지 초미세먼지인지. 정체모를 대기 악화로 인해 고통받았죠. 기관지에 쌓이면 그렇게 몸에 나쁘다며 당신을 권장했죠. 대체 이 먼지들이 다 어디서 오는 거냐며 의견이 분분했던 기억도 납니다. 우리나라인지 중국인지 혹은 자동차인지 공장 매연인지 고등어인지 등등. 주장은 많은데 결론이 나질 않아 엄청들 싸워댔죠.
그때 역시 마스크를 쓰지 말래도 쓰고 다녔을 겁니다. 안 쓰면 목이 따가운 통에 확 티가 나니 어떻게 착용하지 않겠어요. 답답하고 숨 막혀도 당신에 의지해야 아프질 않아서요. 이맘때부터 그렇게 열심히 타던 자전거를 그만두었습니다. 몇 년 전부턴 자물쇠가 걸린 채 어딘가에 처박혀 있습니다. 건강하려고 타는 건데 건강해질까 싶어서요. 겨울에 추워 당신을 쓰던 때랑 미세먼지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쓰던 때는 다르지 않겠어요? 자전거 타기 제일 좋을 땐 공기가 안 좋고, 그 외엔 장마에 한파에 눈에. 뭐 제대로 탈 수 있는 때가 얼마 없더라고요.
그런데 요즘은 어떻습니까. 당신께선 생필품 급입니다. 필수적이에요. 아니, 밖에서 벗고 돌아다니면 주위 눈총은 둘째치고 벌금도 물어야 합니다. 좋든 싫든 간에 이 시대의 아이콘이 되어버리셨습니다. 무허가 제품으로 엄청난 이득을 챙긴 나쁜 사람들마저 적발될 정도로요. 당신 없이 밖을 나서는 일은 상상할 수 없어요. 절벽에 매달려 동아줄 하나에 의지하듯 당신께 몸을 맡깁니다. 오죽하면 바깥공기가 너무 상쾌한 날이라면 마스크를 깜빡하고 나오지 않았나 확인해보란 우스갯소리까지 다 나왔겠습니까.
처음엔 저부터 당신이 어렵더군요. 습관이 들지 않았습니다. 연초 때만 해도 사람 모이는 곳에서만 쓰면 되는 분위기라 엘리베이터라던가 야외에선 쓰지 않았거든요. 출근할 때 깜빡하기도 했고요. 나중엔 결국 가방 속에 여분을 늘 챙겨 다닌다거나, 회사에 하나씩 두고 다니는 지혜를 발휘하며 스스로 유비무환이라 칭찬했습니다. 근데 요즘은 집 밖을 나서기 전 당신부터 확인하는 일 외에는 대비할 수 있는 일이 없네요.
올봄, 당신은 슈퍼스타였어요. 근데 살면서 당신 때문에 몇십 분씩 줄을 서서 사보고 인터넷에서 웃돈 주고 구해보려 할 줄은 몰랐습니다. 살면서 줄 서는 일은 맛집 외엔 용납할 수 없는 사람이에요 전. 살면서 팬 사인회라던가 모든 류의 한정판 구매를 위해 줄 서본 적이 없어요. 호날두 보려고 괜히 비 맞아가며 줄 서다 바람맞은 이후론 더더욱 말이죠. 오로지 맛집 앞의 대기줄만 허용합니다. 막국수 한 그릇에 세 시간 정돈 기다려줄 수 있죠. 근데 이런 저도 어쩔 수 없이 약국 앞에서 몇 십분 씩 기다리곤 했습니다.
살면서 미세먼지가 그립단 소린 안 할 줄 알았는데 말이죠. 차라리 그때가 그립습니다. 빈약한 폐활량으로는 당신의 따스하고 안전한 보호막을 감당하기에 버겁거든요. 지하철이던 버스던 간에 편히 숨 쉬던 때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양파나 마늘도 마음껏 먹고 싶어요. 요새는 마라탕이나 훠궈도 마음대로 못 먹습니다. 마스크님 덕택에 자칫 잘못하면 코가 어지럽거든요.
그래도 당신을 통해 깨달은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코와 입을 가리더라도 사람을 분간해내는데 전혀 지장이 없단 점을 말입니다. 조금만 더 중증이었음 안면 인식 장애로 봐도 무방하리만치 사람 얼굴을 기억하지 못하는 저인데. 그래도 사람 눈만 봐도 아는 사람은 알아보고 있습니다. 신기하더라고요. 코와 입을 가리고 반절만 남은 건데. 사람 눈과 시선이 인상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단 사실을 당신을 통해 깨달았습니다. 흐리멍덩하지 않고 초롱초롱하게 눈을 뜨고 다녀야겠다 생각하는 요새입니다.
코로나 난리통. 안전을 지켜줄 당신이 있어 다행입니다. 천으로 된 당신이 없었다면 중세 시대 까마귀 부리처럼 생긴 장치라던가 화생방 마스크를 쓰고 돌아다녔어야 할 테니깐요. 그래서 마스크님께는 늘 감사하고 삽니다. 그러니 당신과의 작별만을 기다리고 있는 절 너무 배은망덕하게 생각해주시진 않길 바랍니다. 감사한 건 감사한 거지만. 당신 덕에 생기는 어지럼증과 턱 주변의 뾰루지는. 아무리 오랜 시간이 흘러도 익숙해지지 못하지 싶어서 그러니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