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욕의 상실감.
자명종 소리에 졸린 두 눈을 비비다 보면 그런 날이 있지 않나요? ‘아, 오늘은 무조건 이거 먹는다.’라고 다짐하게 되는 날 말입니다. 어제가 딱 그랬어요. 아침부터 문득 돈가스가 먹고 싶지 않겠어요? 눈뜨자마자 기름지고 걸진 음식이 당긴다니 역시 나답다 싶어 하며 말이죠. 평소 자주 애용하는 메뉴는 아닌지라 동네 맛집부터 검색해보았습니다. 한 번도 가본 적은 없으나, 별점도 리뷰도 괜찮길래 가봄직 하였더랬죠. 오늘 저녁 메뉴가 결정 나는 순간이었죠.
퇴근 후, 살짝 지친 몸을 이끌고 지도를 들여다보았습니다. 근처에 도착했더군요. 근데 말입니다. 아무리 찾아도 간판이 보이질 않는 거 아니겠어요? 분명 상가 이름은 맞는데. 밖으로 안보이길래 안쪽에 있나 했죠. 사실 이때까지만 해도 ‘또 시작이구나’ 싶었어요. 완벽한 길치까진 아니어도 약간 헤매는 편이거든요. 몸속 나침반이 또 고장 났나 했어요. 처음 가보는 식당이나 맛집을 한 번에 찾는 일이 드문 사람이 딱 저랍니다.
근데 이번만큼은 아무리 상가를 뒤져도 나올 생각을 하지 않는 거 있죠? 슬슬 짜증 나기 시작했습니다. 성질 머리가 고약해 배고프고 당이 떨어지면 짜증이 솟구치거든요. 뭔가 식당이 있어야 할 곳을 계속 지나치는 기분이 들었어요. 한 구석에 임대 문의라 써붙여진 유리창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가재도구 하나 없이 덩그러니 공간만 남은 곳이었는데, 위치상 거기여야 할 것 같았거든요. 인정하기 싫지만 여기지 싶었어요. 그래도 설마 했어요. 아직 지도 검색에도 있고 몇 주 전 리뷰까지 남아있었으니 말이죠. 마지막 희망에 걸어보기로 했어요. 떨리는 마음으로 전화를 걸었습니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제가 길치여서 이 모양이길.
“지금 거신 번호는 없는 번호 이오니...”
아아. 어찌 이리도 슬픈 예감엔 한치 오차가 없을까요. 사장님, 전 틀리지 않았습니다. 없는 번호. 없어진 자리. 그곳이 맞았나 보네요. 사장님의 자세한 사정은 알 수 없지만 부쩍 이런 경우가 잦아졌어요. 익숙합니다. 익숙해져서 슬프고요. 음식점의 흥망성쇠는 많이 봐왔지만, 요즘 들어 버티질 못하고 문 닫으시는 분들을 많이 봅니다. 저야 한 끼 식사가 틀어진 건데. 사장님께선 그게 아닐 거잖아요. 최소 몇 년간 일구어오신 삶의 터전이었는데, 인기도 평점도 괜찮았던 곳이었는데. 몇 달 사이에 이게 이렇게 되어버렸습니다.
심지어 요샌 꽤 이름난 곳들에 방문했다가도 발걸음을 돌렸던 때도 생겼습니다. 우연히 찾았던 거리에 꽤 유명한 중국집이 있대서 기대했었는데. 유서 깊은 곳이었다는데도 문을 닫았더라고요. 아마 부담스러운 임대료라던가 코로나 때문이겠죠. 이태원 터줏대감 같던 연예인도 가게를 정리했다죠. 사장님들, 자영업자 분들의 아픔은. 지금 제가 체감하는 일과는 전혀 다른 세상일 거라서. 단어로 나열하기도 주저됩니다.
조류독감이라던가 돼지 콜레라 같은 역병이 돌면 치킨집이라던가 고깃집도 같이 타격을 받았잖아요? 먹어서 응원하려는 의도는 아니었습니다만, 조리된 음식이라던가 판매 중인 재료는 괜찮다는 얘기가 들리면 의식적으로 사 먹고는 했거든요. 별일이나 있을까 싶어서요. 근데 사실 요샌 좀 그렇습니다. 아예 외식을 안 한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라던가 근방에 확진자 수가 늘면 발걸음을 줄였거든요. 이전과는 다르게 행동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먹기 위해 산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저마저 맛집 출입이 뜸해진 요새입니다. 이름난 곳들이라야 어떻게든 나아지기만을 기다리며 버틴다 해도. 동네 상권은 오죽할까 싶습니다. 심지어 누굴 원망할 수도, 그렇다 해서 당신 잘못도 아닌 이 상황들을 어찌해야 할까요. 이 시국에 얼른 전환점이 생기기만을 기도할 뿐입니다. 아무 일도 못하고 바라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답답하고 슬픕니다. 일상의 부재로 가장 힘드실 분들이라서. 저야 뭐 어찌어찌 살고 있지만, 사장님들은 하루하루가 막막하실 거라. 안타까울 뿐입니다.
얼른 다시 봄이 찾아와 사장님도 저도. 편하게 마주할 수 있는 시간이 찾아왔으면 좋겠습니다. 세상엔 맛있는 음식이 차고 넘치니까. 평생토록 열심히 맛난 거 먹으러 다닐래도 모자란 생입니다. 그러니 조금만 어쩔 수 없이 쉬어갑니다만, 다시 찾아올 그 날까진. 서로 힘 내보자는 말로 어쭙잖은 제 인사를 대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