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워하는 일이 누가 되진 않겠지요.
설레는 탈 것에서 개인 서재, 그리고 그리움. 20세기 소년에서 21세기 어른, 그리고 코로나로 인해 변모해간 비행기의 의미입니다. 설렘이나 서재와 같은 단어는 비행기와 관련된 매우 사적인 견해입니다만, 그리움에 대한 공통분모는 꽤나 보편적 정서인가 봅니다. 여행이 꺼려지는 소비자와 비행기를 놀리고 있기 부담스러운 항공사가 만나니 새로운 상품이 나왔더라고요? 공항을 떠난 비행기가 전국 일주하듯 한 바퀴 돌고 난 뒤, 같은 공항에 착륙한답니다. 한두 시간 비행기를 타며 맛만 보는 거죠. 여행 가는 기분을 느끼거나 비행기를 타는 일 자체를 경험하거나. 그렇게라도 그리운 비행기를 만나는 거죠. 저 같은 사람 말고 저게 팔릴까 싶었는데 금세 동났다고 하네요.
이쪽은 비행기와 첫눈에 반했습니다. 어렸을 땐 어디 멀리 간 거도 아녔는데 말이죠. 기껏해야 부산에서 김포, 혹은 김포에서 부산. 어쩌다 한 번씩 타던 비행기였습니다. 손주에 대한 사랑이 가득하던 외가댁에 가는 일이 즐겁기도 했지만 교통수단으로써 그 자체가 참으로 맘에 들었습니다. 하늘을 나는 일도, 유선형으로 멋있게 잘 빠진 모양새도 말이죠. 그땐 병약하여 멀미도 심하게 앓았는데. 그래도 마냥 좋았습니다.
열 살 남짓한 꼬마에게 비행기는 처음 맛보는 공상과학이었습니다. 굉음을 내며 무섭게 질주하다 이윽고 찾아오는, 오묘한 감각이 묘하게 즐거웠고. 조그만 창밖으로 사람들이 점처럼 작아지고 자동차와 집들이 미니어처에서 레고, 나중엔 개미처럼 작아지는 변화가 신기했습니다. 종종 구름 위를 날던 때는 아이 눈에도 아름다움의 극치였죠. 심지어 그때가 뉘엿하게 해가 저물어가는 순간이라면 끝난 겁니다. 하늘을 유영하는 새하얗고 몽글몽글한 양 떼들이 금빛으로 물든 바다와 마주하는 시간이라면. 그때 그 꼬마가 할 수 있던 최선의 표현은 ‘우와 진짜 이뻐!’였지만. 지금 생각해도, 아니 지금 보아도 비행기에서 보는 생경한 풍경은 시릴 정도로 아름다웠습니다.
사실 비행기가 설렘이 되는데 한 가지 이유가 있었습니다. 여행지에 도착하고 어쩌고 하는 식상한 답은 아닙니다. 지금은 잘 모르겠는데, 그때 그 시절엔 어쩌다 한 번씩 꼬마 손님들에게 선물을 줄 때가 있었습니다. 매번 받진 못했는데 비행기 인형이라던가 미니어처, 조그만 퍼즐 등등. 소소한 기념품을 나눠주곤 했죠. 정확하진 않아도 최소한 한두 번은 분명 받았습니다. 언젠가는 기념품을 나눠주길래 뛸 듯이 기뻐했다가 앞에서 준비한 수량이 끝나버린 바람에 시무룩해졌던 기억도 있네요.
그땐 몰랐습니다. 설레던 비행기가 개인 서재가 될 줄은 말입니다.
그 좁고 불편한 공간이 뭐 그리 좋을까요? 처음엔 ‘여행이 좋아서’라고 받아들였습니다. 자주 가진 못해도 취미니까요. 근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비좁은 자리에서 주어진 시간 자체가 좋았습니다. 비행기 속 주어진 한 줌의 공간은 작은 서재입니다. 여행의 설렘이 시작될 뿐만 아니라 그동안 미뤄둔 일들을 처리하는 작업실이었죠. 이상하리만치 생산성이 극대화되던 공간입니다. 짧게는 두어 시간, 길게는 열댓 시간. 이상하리만치 그리도 할 일이 많았습니다.
타석에 들어선 타자의 몸놀림 마냥 언젠가부터 굳어진 루틴이 있습니다. 맨 처음 좌석에 앉아 마지막으로 카톡을 보내 놓고 조금 미리 비행기 모드로 바꿔놓죠. 그러고 나면 비행기가 착륙하고 나서 비행기 모드를 해제하기 전까진 오롯이 나만의 시간이 생기거든요. 핸드폰과 거리를 두는 일이 생각보다 힘든 요즘이라 말입니다.
목베개에 바람을 불어놓습니다. 얼굴이 시뻘게지고 어지러워질 만큼 완벽히 만들진 않아도 됩니다. 기분 탓인지 몰라도 비행기가 궤도에 오르면 고도 탓인지 좀 더 빵빵해지거든요. 태블릿에 넣어둔 슬램덩크와 영화 목록은 잘 동작하는지 확인도 한 번 해보고. 매번 들고 다니는 여행용 슬리퍼라던가 비행기에서 나눠주는 부직포 슬리퍼로 누구보다 빠르게 갈아 신습니다. 그리고 나선 기지개를 켜고 앞에 꽂힌 면세점 카탈로그를 일독해보죠.
살 물건도 없으면서 괜스레 손이 가고 한 번쯤은 읽어주어야 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들거든요. 그냥 지금 이곳에 있어 저렴하게 구할 수 있는 물건들이 무엇이 있는지 등등. 사용하진 않을 권리라도 무엇이 있었는지 기억하려는 의도입니다. 맛있는 위스키라던가 몇 가지 향수, 필요는 없는데 갖고픈 잡화 목록까지.
손에 든 잡지를 다시 꽂아 넣을 때 즈음이 되면 하늘로 향합니다. 머리 위 안전벨트 경고등이 꺼지기가 무섭게 벨트를 풀어헤치고 테이블을 꺼내죠. 자리마다 모니터가 붙은 경우라면 볼만한 영화가 있는지 빠르게 훑고 나서 다시 꺼둡니다. 어지간해선 바로 재생하진 않죠. 모처럼 글 잘 써지는 공간에 들어섰으니 바쁜 척을 해야 합니다.
얼마쯤 지났을까. 복도가 부산스러워지는 냄새가 납니다. 가까운 비행이라면 음료가, 먼 비행이라면 기내식이 준비될 타이밍이죠. 이 시간이 제일 좋습니다. 소풍 가는 기분이거든요. 심지어 기내식은 또 너무 입맛에 맞아 난리죠. 땅에 발을 붙이고 먹으면 분명 두 번 먹을 맛이 아니거든요? 희한하게 하늘에서 먹으면 그렇게 맛납니다.
보통은 두 가지 메뉴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죠. 평소엔 선택 장애인데 기내식 이지선다는 또 그게 그렇게 좋더라고요. 메뉴판도 없이 오로지 감에 의존하여 한 줄 설명으로 이번 끼니를 골라야 하는 그 순간. 마음 같아선 둘 다 달라고 하고픈 맘이 굴뚝같지만 앞줄에서부터 들리는 목소리에 고심합니다. 소풍날 어머니께선 싸준 도시락에 무엇이 들어있을지 두 눈을 반짝반짝거리던 시절로 돌아가는 기분이죠.
좁은 테이블에 부대끼며 은박지를 걷어내고, 은박지 위에 살포시 두었던 모닝빵과 버터를 들어 올립니다. 나만의 방식이 있다면 버터 반쪽은 빵 안으로, 반쪽은 메인 메뉴 속으로 사라지게 둡니다. 정해둔 영화를 틀어놓고 시작하는 잠깐의 만찬이 시작되죠.
디저트로 받은 쌉싸름한 커피와 땅콩을 글벗 삼아 다시금 글쓰기에 몰입합니다. 최소한 한 두 편의 초안에 마침표를 찍습니다. 완성은 여행지라던가 귀국해서 시키려는 편이라 초안 불리는데 집중하죠. 비행기에서는 폭풍처럼 생각나는 글머리를 그물 쳐서 잡아내기에 적합하거든요. 적당한 불편함과 소음이 연료가 됩니다.
얼추 태블릿이 두둑해졌다 싶으면 다시 자유시간입니다. 아까 보다만 영화를 틀거나 슬램덩크를 보죠. 졸리면 자고, 기내식이 나오면 다시 먹고. 놀고먹고 자고의 환상적인 컬래버레이션이 펼쳐집니다. 이윽고 안전벨트 경고등에 다시금 불이 들어오고 몸이 앞으로 쏠리는 느낌을 받죠. 서재를 정리하고 나와야 할 때가 다가왔습니다. 경고등이 켜지기 전에 화장실에서 이도 닦고 스트레칭도 합니다. 상쾌해진 몸과 마음으로 착륙을 준비하죠.
미리 적어둔 출입국 카드를 확인하고 다시 여권에 넣어둡니다. 창 측 좌석이라면 창밖으로, 복도 측 좌석이라면 모니터로, 이도 저도 아니라면 허공 어딘가에 시선을 두지요. 안녕의 시간이 코앞으로 다가옵니다. 열어둔 창을 닫고, 서재 방문을 확인한 뒤 불을 끄고 현실로 돌아옵니다.
이렇게 비행기에서 보내던 시간이 보고 싶습니다. 알차게 소비하던 그 공간이 그립고 그립네요. 비좁은 탓에 몸은 살짝 고될지라도, 찬란하던 하늘을 바라보던 꼬마 아이의 시선과 연신 키보드를 두드리며 창밖을 곁눈질하던 어른의 시선이 만나던 바로 그 지점이라서요. 이전과 다르게 비행기라는 단어조차 입에 담을 일이 사라진 일상이라 더욱 시린 그 지점이요.
우리의 일상 같지 않던 그 일상들은. 언젠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 벌써 하얗게 먼지가 쌓이기 시작한 서재 책상을 닦아주러 가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