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엔딩, 올해는 간주 생략.
찬 바람이 조금씩 불어오면은 밤하늘이 반짝이더라
혹시 이 노래 가사를 들어보셨나요? 적재 님의 ‘별 보러 가자’란 노래입니다.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하늘이 붉게 타오르는 장면이 떠오릅니다. 그리고 그즈음이 점차 이르게 찾아오는,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날씨가 생각나죠. 가을 하늘은 으레 새파랗고 깊은데 맑은 감각이 상상되니까. 그만큼 별들도 선명하게 반짝일 것만 같은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가을 날씨를 제일 좋아합니다. 따뜻한 쪽보단 선선한 쪽을, 춥기보단 춥기 직전의 날씨를 좋아하거든요. 간절기 일교차가 힘들게 할 때도 있지만 그맘때 옷이 가장 이쁘기도 하고요. 하지만 가장 좋아하는 계절을 고르라면 어쩔 수 없이 봄을 떠올립니다. 누군가와 자꾸 걷고 싶고, 함께 뭐 하자며 자꾸 불러내고 꼬시기에 딱 좋은 날씨니깐요. 그리고 봄에는 벚꽃이 피어주지요.
흐드러지게 피어오른 벚꽃은 설렘입니다. 생명이 움트고 벚꽃이 찬란하게 펼쳐진 길가에서 발걸음을 맞춰보는 그림은 어떻게 생각해봐도 사랑스러우니 말입니다. 두 손 마주 잡고, 같은 속도로 나아가는 그 느낌. 벚꽃 필 무렵의 세상은 너무나 따스하고 아름다우니까. 이때를 함께할 수 있다면. 꽤나 행복할 것만 같은, 확신이 듭니다.
벚꽃을 굉장히 좋아합니다. 나름 벚꽃의 고장에서 자란 탓에 질리도록 봐왔는데도 말이죠. 분홍빛에 빠져 죽기 딱 좋은 곳입니다. 저희 동네를 잠깐 소개하자면, 발에 차이는 게 벚나무랍니다. 과장이 아닙니다. 덕분에 아침부터 저녁까지 분홍빛으로 수 놓인 하늘과 함께했더랬죠. 벚꽃을 구경하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몰려드는 인파를 볼 때마다 ‘저렇게 북적거리고 차도 밀려서 제대로 구경이나 하려나?’라고 의구심을 품을 정도였습니다. 이쪽은 아파트 단지를 천천히 산책하며 벚꽃 맛집을 만끽하면 되었거든요. 어딜 가든 펼쳐지는 달달한 벚꽃 풍경.
대학 때문에 상경한 뒤로도 벚꽃 구경만큼은 빼놓지 않고 하는 연례행사였습니다. 벚꽃 싫어하는 사람은 또 드문 탓인지, 서울서도 심심찮게 마주했습니다. 여의도, 잠실, 한강 등등. 초봄에 맞이하는 분홍 비는 내가 어딜 가든 따라다녔습니다. 딱 하나 아쉬웠던 점이 있다면. 벚꽃이 만개할 땐 꼭 중간고사 기간과 겹친다는 쪽이었죠. 그래도 전 적당히 타협하며 꽃놀이하러 다니는 패기를 보였었는데. 당신은 어떠하였나요?
하지만 올해의 벚꽃은 ‘절제’란 단어와 어울립니다. 이번만큼은 그냥 지나쳐 버린 벚꽃이었니깐요. 어디 보러 가기도 뭔가 미안해서요. 집 앞에 핀 아이들을 잠깐잠깐 마주했던 게 전부였습니다. 괜히 쳐다보면 마음 약해질까 제대로 마주하지 않으려 했거든요. 아이러니하게도 미세먼지 없이 깨끗했던 봄 하늘이라 꽃놀이하기 딱 좋은 날씨였는데 말이죠.
요즘도 자유로운 분위기는 아니지만. 올봄은 갑작스레 찾아온 사태에 다들 얼어붙었습니다. 당장 저부터도 그랬고요. 눈뜨고 코베이듯. 올해는 내주어 버렸습니다. 내년 봄의 우린. 빼앗긴 벚꽃과 다시 마주하고 다시 설렐 수 있을까요?
찬 바람에 시큰했던 콧등에 따스한 햇살이 내리쬐는 즈음에. 밤하늘이 홍학 색 구름으로 물드는 그 시간에. ‘나와 벚꽃 보러 가지 않을래?’라고 아무 거리낌 없이 말을 건넬 수 있는 계절이 왔으면 합니다. 한적한 평일 오후. 잔잔한 강가에 펼쳐진 벚꽃을 보기 위해 드라이브 가자고 전화를 하고 싶어요. 웬만한 건 차에 이미 다 있으니 얼른 몸만 나오라고 말이죠. 천천히 느지막이. 열어둔 차창 너머로 봄바람에 간지러워할 겁니다. 머릿속으로 몇 군데가 스쳤습니다. 드라이브 하기에도 산책하기에도 좋은 곳들.
해가 뉘엿뉘엿 질 때면 밤에 보는 벚꽃에 또 설레 할 겁니다. 가로등이 수놓은 곳이라면 낮에 보는 풍경만큼이나 밤에도 이쁘니까. 흐드러지게 피어난 벚꽃길과 석양이 비친듯한 가로등. 이와 대비되는 검푸른 하늘. 내 옆의 너, 네 옆의 나. 분명 행복할 겁니다. 큰 맘먹고 제주도로 떠나는 상상도 해봅니다. 사시사철 아름다운 제주도. 유채꽃이 피어나기 전엔 벚꽃이 주인 행세를 하곤 하니까 말이죠. 한쪽은 바다, 한쪽은 분홍 행렬. 아름답지 않을 리가 없겠죠.
생각만으로도 벅차오르는 풍경이라 저의 상상은 현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가능하다면 그 현실에 마스크와는 안녕인 일상이었으면 좋겠고요. 나와 함께 하지 않겠냐 손 내미는 마음에 한 점 부끄러움도 스미지 않았으면 해서요.
내년 봄 즈음에는. 사랑하는 누군가의 손을 마주 잡고서. 내가 사랑하는 순간들과 마주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