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도 힘들고, 안 해도 힘들다면 하는 쪽이 낫지 않았을까?
만약 작년 이맘때의 나에게 편지 한 통을 쓸 수 있다면. 당신께선 무슨 말들을 적으실 건가요? 저는 ‘백 투 더 퓨처’란 영화가 생각납니다. 시리즈 물이라 몇 편인지 기억은 안 나는데, 어떤 등장인물이 과거의 자신에게 경마 결과가 실린 잡지를 주는 장면이 있었거든요. 그 선물로 말미암아 현재가 뒤틀리죠. 그저 그런 삶을 살던 인물이 엄청난 부자가 되거든요. 저도 비슷한 일을 할 거예요.
종잣돈을 모아두렴. 연초 주식은 인버스로, 괜찮아진다 싶으면 언택트 관련주로 투자하렴. 삼성과 부동산은 올해도 승리한단다.
그리고 마지막 말미에는 조그맣게 사족을 붙일 겁니다.
아, 그리고 미안한데. 올 한 해 열심히 운동해온 몸매는 도미노처럼 무너져 내릴 거란다.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그리고 충격받지 마. 심지어 앞자리도 바뀔 거란다.
작년엔 열심히 운동했습니다. 꽤 괜찮은 한 해를 보냈습니다. 취향에 맞는 운동이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는데 드디어 찾았거든요. 이쁜 몸매가 싫은 사람은 없으니 그간 이거 저거 못 먹는 감 찔러만 보았습니다. 헬스장이라던가 맨몸 운동, 자전거 등등. 근데 헬스장은 재미없고, 맨몸 운동은 혼자 꾸준히 해내기 어렵고. 그러다 우연히 크로스핏이란 운동에 정착했더랬죠.
삼십 분 남짓한 짧은 시간에 사람을 쥐어짜는 매력에 푹 빠졌습니다. 악마의 탈을 뒤집어쓴 천사 같은 코치님들 지도 하에 젖 먹던 힘까지 쥐어짜는 기분, 운동이 끝난 뒤의 즐거움은 습관이 되었습니다. 식스팩까진 아니더라도 군살도 많이 빠지고 체력이 늘었죠. 앉는 자세가 안 좋아 허리가 쉽게 피로해질 때가 많았는데. 모든 면에서 좋아졌습니다.
살면서 엄청나게 근육질이었던 적은 없으니 이 정도로도 만족했습니다. 믿거나 말거나 군 전역 직전 식스팩이 스쳐 지나갔던 적이 최고 전성기였거든요. 그마저도 한 달을 넘기지 못했지만요. 사회인 복귀에 자축하며 매일 밤 떡볶이에 순대, 튀김. 그리고 빠질 수 없는 맥주 파티를 통해 한 달 만에 10kg가량 쪘습니다. 식욕이 왕성하고 먹는 걸 사랑하는 사람에게 좋은 몸은 무리입니다. 아는 맛이 더 위험한 쪽이니깐요. 세상에 맛있는 건 너무 많으니 어쩔 수 없이 먹어줘야죠. 근데 살도 안 찐다? 이건 너무 도둑놈 심보 아니겠어요?
그럼에도 굳이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억울한 마음이 반절이며 운동에 대한 의지가 강하지 못한 일반인 대표로서 최후 변론을 이어나가기 위함이 또 나머지 반입니다. 절대 절대로. 변명이 아니란 사실만 믿어주세요.
사실 핑계라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식단 관리를 할 수도 있었고, 어떻게든 사람들을 피해 운동을 지속할 수도 있었습니다. 마스크를 벗지 않은 채 관리했으면 되었으니깐요? 생각해보면 헬스장 출입 자체를 막았던 건 꽤 길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인정해야죠. 무너지다 못해 흘러내리는 몸은 철저히 제 잘못이 맞다는 걸요.
근데 우기는 게 아니라, 코로나 때문도 맞습니다. 코로나 때문에 도미노 마냥 와르르, 와장창 되었죠. 지금 앉은 자세에서 느껴지는 묵직한 뱃살이 현실이라니. 꿈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유지한다고 생각했는데. 정신 차려보니 벼랑 끝입니다. 운동이 습관으로 되었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는데. 작년 한 해 열심히 가꿔온 텃밭이었는데. 서너 달 만에 다 날려먹었습니다.
굳이 복기해 보자면, 코로나 사태 이후 헬스장으로 향하는 발길이 끊긴 게 가장 큰 문제였습니다. 사태가 진정되면 다시 등록해야겠단 마음먹었죠. 그래도 나름 해온 게 있다 보니 집에서, 혹은 사용자가 적은 회사 헬스장을 이용하여 유지만 해보기로 하고요. 근데 혼자 하는 덴 한계가 있더군요. 조금씩 야금야금 게을러지는 신체. 횟수도 점점 줄어들고 강도는 약해지고. 거리두기 2.5단계에서는 어쩔 수 없이 회사 헬스장도 안녕.
그리고 말입니다. 막상 운동을 쉬니 그렇게 달콤할 수 없더라고요? 관성이란 게 참 무섭습니다. 몸에 익었던 운동이었는데. 한 번 침대에서의 안락한 삶에 빠지니 몸 일으키는 게 쉽지 않더라고. 아니, 요즘 시대에 침대만큼 안전하고 안락한 공간이 또 어딨겠어요. ‘요새는 집 밖에 나서지 않고 침대에 누워있는 사람이 가장 책임감 있는 어른의 자세다’란 농담도 들리니깐요.
왜, 냄비 속 개구리 이야기 있잖아요? 천천히 데워지는 냄비 속 개구리는 물이 뜨거워지는지도 모르고 삶아져 죽는다고들 하죠. 지금이 딱 그래요. 그래도 나름 가꿔왔던 깜냥이 있어 처음엔 살이 찌지 않더이다. 솔직히 방심했습니다. 그동안 키워온 근육이 버티나 싶어서. 근데 그게 아니었던 거죠.
어느덧 10월. 천고마비의 계절. 겨울잠 채비를 하며 몸을 부풀려왔다 해도 믿을 지경입니다. 이젠 더 이상 안 되겠어요. 이렇게 살 순 없습니다. 지금 이 배가 내 것은 아닐 거라 일주일 정돈 부정해봤는데 말이죠, 이젠 인정해야겠습니다. 제대로 요요가 왔네요. 작년 한 해 농사를 망춰놓았습니다. 그래도 조금씩 복구해봐야죠. 편지 추신란엔 최소한 지금 뱃살만큼은 다시 뺄 거라 약속할 겁니다. 운동에서만큼은 코로나 핑계는 넣어둘 생각이니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