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비추는 거울.
전 소위 불리는 ‘아싸’입니다. 진짜로요. ‘아싸’ 타이틀을 빼앗으려는 ‘인싸’가 아니라 실제 상황입니다. 세상 제일 이해 안 가는 부류가 ‘사람을 만나며 에너지를 얻는 분’들이거든요. 솔직해지자면 부럽긴 합니다. 인맥 관리라던가 주위 사람들 챙기는 일은 의식적으로 해도 잘 안되거든요. 친구들 만나는 일은 즐겁지만 에너지를 쏟아야 하는 일이고요. 덕분에 며칠 동안 카카오톡이 잠잠할 때도 있습니다. 저장된 번호가 많지도 않거니와 먼저 연락하는 일은 자주 없거든요. 조용조용 혼자만의 삶이 좋아 울리지 않는 핸드폰에 불만은 없습니다. 딱 하나 걱정되는 일이 있다면. 만약에 언젠가 결혼하게 될 때 신랑 측 하객이 민망하리만치 빈곤해 보이는 겁니다.
그래도 친구란 단어의 어감은 늘 좋습니다. 어떨 땐 즐겁고 힘들 땐 의지됩니다. 성인이 되고 사회인이 되어서도 서로 연락하고 기탄없이 지내는 친구들은 소중하죠. 얄팍한 사회적 지위와 타인과의 관계 때문에 얇게 나마 걸친 가면과 절제된 감정이지만. 친구들 앞에선 좀 더 솔직해질 수 있으니깐요. 그래서 소수의 친구들과 종종 만나 술 한 잔 기울이고 그동안의 근황을 안주삼아 수다 떠는 일이 참 좋습니다.
코로나와 친구. 반의어와 진배없습니다. 친구들이 불필요한 만남은 아닙니다만, 가능하면 모임을 피해달란 권고에 최대한 줄이고 있습니다. 새로운 사람을 사귀는 일은 언감생심이죠. 어차피 저야 학교에서 멀어진 지 오래라 상관없습니다만. 뉴스를 보면 온라인 강의에 OT라던가 엠티도 전부 생략되었단 얘기들이 곧잘 들립니다. 우리 학교처럼 재미없는 축제 또 없을 거라며 우스워하던 추억들이 되려 소중해 보이는 요새이네요. 삼삼오오 모여 학식을 먹고, 동아리 방에서 만나고. 낡아빠진 소파에 앉아 기타 연주를 하다 잠을 청하던. 혹은 같은 수업을 듣거나 공모전에 밤을 지새우고. 도서관 혹은 술집, 플스방에서 함께 했던 청춘들.
종종 특별한 이벤트도 있었네요. 누군가와는 안면도, 다른 친구들과는 제주도 여행 추억. 언젠가는 우리의 슬픔을 글로 팔아 따내었던, ‘유희열의 스케치북 크리스마스 솔로 특집’ 공개 방청 같은 소재들 말이에요. 추억팔이를 좋아하지 않는데 새로운 소식이 없으니 자꾸 옛날이야기를 꺼내 먹게 됩니다.
친구들 이름을 떠올리며 손가락을 들어 보았습니다. 짧게는 칠 년 여. 길게는 십 년이 훌쩍 넘은 인연들이네요. 대학교 1학년, 늦어도 3학년 즈음부터 만났던 인연이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네요. 신기합니다. 말로는 참 지긋지긋하다고 하지만 말이죠. 아직도 이십 대 핏덩이 같고, 정말 많이 쳐줘도 갓 졸업한 사회 초년생 같은데. 벌써 시간이 그렇게 흘렀나 싶어 아연합니다.
그렇게 일상을 공유해왔던 저와 제 친구는 모두 사회인입니다. 누구는 지방 근무로, 또 누군 어엿한 가장에 애아빠로 멀어져 가죠. 결국 일 년에 한 번 볼까 말까 한 사이가 되어버린 쪽도 있습니다. 그래도 만나게 되면 지난 주말에도 만났던 양 가까운 거리를 느끼곤 하죠. 이게 진짜 친구이구나 싶은 마음을 느끼며 말입니다. 형, 누나들이 ‘나이 먹고서 일 년에 한 번 보는 사이면 진짜 친한 사이’라고 했었는데. 앞자리가 바뀌고 나선 실감 납니다.
근데 말이죠. 삼십 대의 친구 사이에 코로나를 끼얹으니 올해만큼은 일 년에 한 번이란 횟수 조차 생각보다 쉽지 않아 보입니다. 그래도 다 사람 사는 일이니 만날 계획까진 세웠는데. 결국 만나지 못한 얼굴들이 많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이해해주는 요새이지만 아쉬운 건 여지없이 아쉽더군요.
저에겐 애정을 듬뿍 담아 형이라 부르는 사람이 한 명 있습니다. 이 문장만 봐도 당사자는 본인임을 잘 알 겁니다. 십 년 넘게 듣고 있는 호칭이라면 자기인걸 알아야죠. 형과의 인연은 대학교 새내기 환영식이었습니다. 대기줄 앞자리에 있던 게 형이었거든요. 전 성씨가 시옷의 끝이고 형은 이응의 앞이라 붙어있었죠. 그 우연이 여기까지 왔고, 대학 생활을 통해 받은 가장 큰 선물 중 하나라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속 깊은 얘기를 잘 못 꺼내는 성격인데, 이상하리만치 형에게만큼은 무장해제됩니다. 회사 때문에 멀리 가버린 형일지라도 참 의지됩니다. 소개팅 주선부터 결혼식 사회까지 형 장가도 보내보고 말입니다. 그만큼 소중한 사람이라서. 코로나 때문에 멀어져 가는 사람들 간의 거리를 형을 통해 유독 실감하게 됩니다. 만나기로 했던 당일, 몇 시간 전 약속이 취소되는 불상사를 겪었거든요.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잘 보고 잘 만나서 고민 상담도 하고 그랬거든요. 근데 만나기로 한 날 갑자기 회사 건물 식당에서 확진자가 나왔다지 않겠어요? 그때까지만 해도 전 거기 간 적도 없었고 마스크도 잘 쓰고 다녔으니 괜찮지 않겠나 했죠. 근데 전날 같이 점심을 먹었던 회사 동료 세 사람이 확진자 동선과 절묘하게 겹쳤더라고요? 결과적으로 모두 음성으로 넘어간 해프닝이었지만. 형과의 만남은 연기되었습니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는. 요즘 시대에 어울리는 취소 사유였더랬죠.
여러분께선 나이를 먹어감을 느끼는 지점이 무엇이신가요? 전 친구에게 더 이상 별명을 붙이지 않거나, 별명으로 부르지 않게 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머쓱하여 이름으로 부르기도 하고 애초에 더 이상 별명을 지어주지 않죠. 그래도 저에겐 아직도 ‘여우’라고 부르는 친구가 있습니다. 남자입니다. 탄탄인지 튼튼인지 모를 몸매고 딱히 여우와 닮은 구석이 없는 친군데. 오로지 새침한 성격 하나 때문에 그리 불리게 된 녀석이죠.
여우, 그리고 본명보다 해태라는 별명이 훨씬 익숙한 선배, 그리고 나. 셋이서 최후의 만찬을 기획했더랬습니다. 여우 아내분이 출산을 앞두고 있던 차였죠. 새 생명이 나오면 이래저래 당분간 보기 힘들 것 같다며, 몇 년 치 한 번에 모아 맛있는 거 먹자며 비싼 식당을 예약해놨습니다. 근데 만나기 삼십 분 전. 이쪽이 받은 문자 한 통에 발걸음을 돌렸어야 했습니다. 코로나 확진자와 동선이 살짝 겹쳤단 문자였거든요. 필수 검사 대상은 아니래도 ‘괜찮겠지 ‘라는 마음으로 만나러 갈 수 없었습니다. 만에 하나라도 아빠 될 사람들이 저 때문에 아파선 안되니깐요. 어쩔 수 없이 전화로 안부를 묻던 그 날은 두고두고 아쉽지만요.
그래도 진짜 친구들이라면 이 시기 동안 보지 못한대도 걱정되진 않습니다. 당장은 서먹해질까 걱정되고 그리워하더라도. 다시 만나는 날엔 또 언제 그랬냐는 듯 반가워하고 그간 미뤄둔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낼 수 있을 테니깐요. 이제껏 그래 왔듯이 말이죠. 그렇기 때문에 친구들에게만큼은 이 시국에라도 맘 편히 배짱부려 볼 수 있습니다. 우리 조금만 더 서로 그리워하다 찾아올 봄날에 다시 만나보자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