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치지 못할 편지.
할머니, 나의 할머니. 정확하진 않지만 마지막으로 찾아뵈었던 게 작년 연말이었지 싶어요. 그간 ‘조금 지나면 괜찮아지겠지’, ‘더워지면 괜찮아진다니깐’ 등등. 그렇게 코로나가 잠잠해지기만 기다리다 벌써 한 해가 다 갈 뻔했습니다. 자주는 아니래도 두어 달에 한 번씩은 꼬박 찾아뵙곤 했었는데. 그래야 제 맘이 편했었는데. 마음 한구석이 딱딱해진 채 벌써 가을까지 와버렸습니다.
사실 어떤 식으로든 찾아뵈려고 했었어요. 근데 처음 겪어보는 이 사태에 우왕좌왕하다 이렇게 되었어요. 변명이라면 변명이지만. 헷갈려하는 건 저뿐만이 아니에요. 당신 찾아뵙는 일에서만큼은 부모님도 늘 의견이 갈리시거든요. 한쪽에선 ‘그래도 잘 관리해서 찾아뵙고 와라’, 다른 쪽에선 ‘노인분들께 그리 치명적이라는데. 까딱 잘못했다 너에게서 생겨선 안될 일이 생겨버리면 마음의 짐을 어떻게 지겠냐’면서요.
솔직히 말하면 저도 잘 모르겠어요. 갈팡질팡 하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죠. 그러니 이렇게 흘러가 버린 거죠. 그나마 외삼촌께서 자주 찾아뵙고, 지방 사는 부모님도 큰맘 먹고 한 번 뵈었다니 다행이라면 다행이지만. 제 맘은 늘 무겁습니다. 제가 아무리 조심한다 해도 회사에 나가고, 백 퍼센트 재택근무가 아닌 이상에야. 불안하니 발길이 떨어지질 않더라고요. 5월 연휴 즈음 가볼까 했더니 제가 검사를 받았더랬고, 이제는 괜찮지 않을까 싶었더니 회사 밑 식당에서 확진자가 발생했어요. 얼마 지나지 않아선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 말 다했죠.
얼마만큼 조심하며 살면 될 런지 가늠이 안되어 멈춰서 있으니. 두 발은 늪에 빠져 점점 아래로 침잠합니다.
가끔씩 전화드리면 수화기 너머로 ‘잘 살아라. 잘 지낸다. 고맙다.’라고 말씀하시는 당신 목소리에 마음이 저려옵니다. 찾아가는 게 불효인지 찾지 않는 게 불효인지 알 수 없는 지금의 상황이 익숙지 않고 처음이라서 말이죠. 손주가 할머니께 전화드리는 게 고마울 일이랍니까. 당신께선 의도치 않으셨겠지만. 참으로 죄인이 된 기분입니다.
벼르고 벼르다 며칠간 관리 후 잠깐 뵙고 오기로 마음먹은 순간부터. 얼마나 맘이 편해졌는지 모릅니다. 당신을 위해서였는지 스스로를 위해서였는지 분간이 안될 정도로 말입니다.
당신을 보고 싶고, 가고 싶은 맘도 맞았지만. 제 맘이 편해지고파 당신을 찾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죄송하다. 코로나 때문에 걱정되어 못 가겠다.’는 손주 말에 ‘괜찮다. 어쩔 수 없지 않으냐’고 답하시던 당신이었는데. ‘오늘 찾아뵈려 한다’며 운을 떼니 조심히 오라며 설레 하시던 당신 목소리에 서글퍼졌습니다.
답이 없는 지금이지만. 정답이라 생각했던 게 정답일지라도 정답이 아닌 것만 같은 기분이라서요.
익숙한 골목과 초인종. 그리고 열리는 문. 할머니, 올해 처음 당신을 뵙고선 그 자리에서 울 뻔했답니다. 못난 손주가 되지 않기 위해 가까스로 참았지요. 할머니, 나의 할머니. 대체 그간 왜 그렇게 늙어버리신 건가요. 왜 그리도 찾아뵙지 못한 새. 손주는 어떻게 하라고 말입니다.
당신께선 왜 이리 늦었냐, 집 오는 길 까먹었는 줄 알았다 성화셨죠. 전화로 잘못 들으신 탓이었습니다. 갈수록 귀도 잘 들리지 않으시고. 그래서 더 슬펐습니다. 가슴 졸이셨다며 발을 동동 구르시는 탓에 또 한 번 울컥했답니다. 너무 아이 같아져 버리신 당신이라서. 금세 곁을 떠나버리실까 무서운 생각을 하게 되어서 말이죠. 주름은 더 깊게 파이고. 왜소해진 어깨와 키. 어두워진 귀 탓에 더욱 커지고 갈라진 목소리. 기억 속 당신의 모습은 작년과 너무 달라져 버려서. 서글펐습니다. 좀 더 자주 찾아뵈었더라면 다르게 느껴졌을까요.
돈 버는 것도 알고 없지 않다는 것도 알지만. 손주 용돈 주는 재미 뺏어가지 말라며 꺼내시는 봉투. 그리고 그 속의 빳빳한 새 돈. 당신께 전 여전히 작고 어린 꼬마인가 봅니다. 작아진 당신이지만 당신 눈엔 그보다 더 작은 제가 보이겠지요.
당신이 쥐어준 사과와 키위는 아직 냉장고 속에 잠들어 있어요. 딱히 아껴먹으려던 건 아닌데. 손끝으로 건드릴 때마다 당신 생각이 나서 더 그런지도 모르겠습니다.
저흰 또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 아니, 제가 또 언제 찾아뵙게 될까요. 무엇이 더 큰 불효 일지 고민하는 계산적인 손주의 모습을 당신께선 어떻게 바라봐주실까요. 만나 봬도 무겁고 뵙지 않아도 무거운 오늘의 공기가 얼른 변해지길 바라봅니다.
이런 말하기 민망할 정도로 잘 챙기지 못하는 손주 이건만. 그래도 당신이 보고 싶네요. 늘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