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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nochrome blues Feb 19. 2016

하늘이 내게 다시 한번 기회를 준다면.

주성치의 서유쌍기 _ 월광보합 & 선리기연. 

  사람은 누구나 고유의 습관을 가졌다. 나도 모르게 나오는 행동도 습관이 되고, 의도를 가지고 행하는 징크스나 삶의 방식도 습관이 된다. 삶에서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하거나 후회를 할 때. 나는 가슴속에 묻어둔 한 영화를 꺼내 드는 습관을 가졌다. 


주성치의 서유쌍기_ 월광보합, 선리기연.


  손오공은 불로불사를 위해 삼장을 죽인 뒤 먹으려 하나 관세음에 저지당하고 죽을 운명에 처한다. 삼장은 도리어 자신의 목숨을 바쳐 자신을 해하려 한 손오공을 보호하고 환생할 기회를 준다. 삼장의 희생으로 손오공은 오백 년 뒤, 오악산의 도적 두목 지존보 (주성치)로 환생한다. 지존보는 환생한 손오공을 찾아 당삼장을 먹고 불로불사가 되려는 요괴들과 조우하는데,  그중 한 요괴인 백정정과 사랑에 빠진다. 오해와 오해가 얽혀 백정정은 지존보를 믿지 못해 자결하고, 지존보는 달빛을 머금어 시간을 되돌리는 ‘월광보합’을 우연히 손에 넣고 시간을 되돌려 백정정을 구하려 한다. 지존보의 바람은 결국 이루어지지 못하고 마지막에는 월광보합이 지존보를 오백 년 전으로 되돌려 백정정과 영영 헤어져 버린다. _ 월광보합
영화 월광보합 스틸컷_ 그림 출처 구글.


  오백 년 전 과거로 돌아간 지존보는 백정정의 스승 반사대선을 만나고 그녀에게 월광보합을 빼앗긴다. 반사대선은 자신 외에 자신의 보검을 뽑을 수 있는 이를 낭군으로 삼기로 했는데, 지존보가 자신의 검을 뽑자 그를 낭군으로 점찍지만 그는 백정정을 잊지 못해 이를 거부한다.  지존보는 오백 년 뒤로 돌아가 백정정을 구할 생각뿐이라 반사대선에게 거짓 사랑 고백을 하고, 어느새 우마왕 손에 들어간 월광보합을 되찾고자 반사대선을 이용할 뿐이다. 우마왕에게 도망친 지존보는 오백 년 전의 백정정을 만나게 되고 혼인하려 하나 이미 반사대선에게 마음이 기운 자신을 깨닫는다. 결국 지존보는 반사대선을 구하기 위해 인간사의 정을 끊는 조건으로 손오공으로 환생한다. 손오공은 우마왕에게 잡혀있던 삼장과 동생들, 반사대선을 구해내나우마왕의 일격을 자기 대신 맞은 반사대선은 지키지 못한다. 무너지는 우마왕 성에서 찾은 월광보합으로 삼장과 오백 년 후로 되돌아간 손오공은 현세의 삼장과 함께 서경으로 불경을 찾는 여행을 떠난다. _ 선리기연


영화 선리기연 스틸컷 _ 그림 출처 구글.


  기본적으로 서유쌍기는 중국 고전 ‘서유기’를 주성치 풍으로 각색한 코미디 영화다. 주성치 특유의 슬랩스틱과 과장된 표정 연기, 다른 영화들의 패러디가 주를 이룬다. 심지어 영화 최고의 명대사도 ‘중경삼림’에서 빌려왔지만 주성치 방식의 개그 코드가 맞는 관객이라면 재밌을  수밖에 없는 고전 영화다. 허술한 개연성과 조악한 특수 효과도 주성치 영화의 한 요소로 감내할 수 있을 정도로. 나 역시 주성치의 광팬을 자처하기에 습관적으로 영화를 볼 때마다 처음 보는 양 웃고 즐거워한다. 

  

영화 선리기연 중. 영화의 최고의 명대사도 '중경삼림'의 패러디였다. _ 그림 출처 구글.


  후회와 자책에 어찌할 바 모를 시간이 오면. 습관적으로 서유쌍기를 꺼내 든다. 웃고 즐기고 싶어서가 아니다. 삶의 후회와 되돌리고 싶은 개인의 염원과 되돌릴 수 없는 운명에 대해 이보다 더 절묘하고 절절하게 표현한 영화를 찾지 못해서다. 영화 특유의 극적 과장과 감정 표현으로 후회와 미련, 납득과 관조적 관점을 그렸다. 과장된 행동 속에서 주성치 특유의 덤덤한 감성 연기가 빛을 발하며. ‘가유희사’나 ‘희극지왕’에서와 같이. 


  지존보는 월광보합에서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오해에 얽혀 사랑을 잃는다. 이를 인정하지 못하고 되돌리려 노력하지만 결국은 잃고 만다. 선리기연에서 지존보는 지난 사랑을 놓지 못해 새로운 사람을 떠나보낸다. 사랑을 속여 상처 주고, 상처 주었던 말 그대로 다시 진심을 고백 하나 전하지 못한다. 같은 실수를 후회하고 반복된 잘못을 자책하나 돌이키지 못함을 인정하고 납득한다. 마지막에 자신과 같은 실수를 하려는 분신을 바로 잡아 반사대선의 분신에게 못다 한 말을 전하고. 덤덤히 길을 걷는다. 

영화 선리기연 중. 이미 지난 후회는 영화에서조차 되돌릴 수 없었다. _ 그림 출처 구글.


  영화에서처럼. 사람은 실수를 되돌릴 수 없다. 마음을 돌려세우고 현실에 빌어 실수를 만회하고 후회의 다음 페이지를 넘길 수 있지만 실수와 후회의 시간은 온전히 전 페이지에 기록되어 있다. 뒤에 남기고 온 아픔의 시간을 망각해 다음 실수를 저지르기 전까진 잊고 있더라도.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란 우스갯소리를 듣고 마냥 웃을 수 없는 이유가 이와 같다. 그렇기에 서유쌍기는 같은 후회를 반복한 마음에 쌓인 상처들을 후벼 파고 다시 새살이 돋도록 덮어버리는 습관이다. 크게 웃고 울다 절절해하며. 덮을 수 있도록. 


  더 나아가, 서유쌍기는 상처를 덮는 습관 이상의 소원이다. 지존보는 순간의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사랑을 속였다. 언제나처럼 내가 해왔던 실수와 같은 모습으로. 마지막까지 전하지 못할 진심을, 상대에게 속였던 말 그대로 말하며 덤덤히 금고아를 머리에 쓰는 지존보는 아직까지 닿지 못한 소망의 기원이다. 초월하고 초탈하여 다시는 후회를 저지르지 않을, 원해 바라지 않는 나의 모습. 상처 입은 짐승인 채 이를 습관적으로 바라보고 아직까지 이루지 못한 모습을 다시 한번 다짐한다. 지존보의 분신이 후회하지 않도록 도운 손오공의 마지막처럼. 나를 도울 날 위해서. 지존보로써의마지막에 닿아 거짓 고백과 같은 말로 진심을 말하며 과거를 회상했을 그의 어조와 같이.


“진정한 사랑이 눈 앞에 나타났을 때. 난 소중히 여기지 않았고 그걸 잃었을 때 비로소 크게 후회했소. 하늘이 내게 다시 한번 기회를 준다면 난 그녀에게 이렇게 말할 거요. 당신을 사랑한다고. 만약에 사랑에 기한이 있다면 만년으로 하겠소.”


영화 선리기연 중. 다신 같은 후회를 하지 않기를. _그림 출처 구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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