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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nochrome blues Jun 08. 2019

영화 ‘Her’의 재개봉을 기념하여.

외로움을 먹고 삽니다.

   2014년, 국내에서 개봉했던 영화 ‘Her’가 최근 다시 개봉했다. 5년 전 개봉했을 당시, 극장에서 보았고 그 후로도 가끔씩 생각날 때면 꺼내보았다. 어림잡아 서너 번은 족히 더 보았을 영화지만 다시 한번 극장으로 향했다. 여러모로 끌리는 구석이 많은 영화라서. 전반적인 스토리는 다 꿰고 있음에도 좀 더 큰 스크린과 좋은 음향 환경으로 보고 싶었다. 마침 이런저런 이유에서 다시 한번 보고 싶어지는 요즘이기도 했고. 


영화 속 주인공 ‘테오도르’는 외롭다. 편지를 대신 써주는 일을 맡은 직장에서도, 이웃과 친구들 사이에서도.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다. 접근해오는 상대에게 테오도르는 늘 ‘호인’이지만 먼저 다가가는 법은 없다. ‘적당한 거리’라는 말도 실상은 타인에 가까울 정도로 멀고 아득한 의미를 지녔다. 한때는 사랑하는 아내와의 행복했던 순간들도 있었으나 이혼을 전제로 한 별거에 들어간 지 일 년이 다 되어간다. 고객을 대신해 마음을 건네어 줄 편지를 쓰지만, 실상 자신의 감정을 내비칠 수 있는 상대는 없다.  어느 날, 세계 최초로 인공지능형 OS가 출시되고 테오도르는 호기심에 구매한다. 그렇게 테오도르는 스스로 생각하는 운영체제 ‘사만다’를 만나게 되고, 자신을 이해해주고 이야기를 들어주는 ‘그녀’에게 위로받는다. 공허했던 삶에 변화가 생긴다. 점차 그녀에게 끌리고 빠져든다. 그렇게 사랑이 시작되고 상처 받으며 인간과 컴퓨터 간의, 혹은 ‘나와 너’의 관계를 이어간다. 
영화 'her' 스틸컷_ 사진 출처 구글.


   영화는 대체적으로 너무 외롭다. 테오도르가 딱히 사회에 고립되어 있다던가 본인이 구태여 거리를 두려는 상황이 아님에도. 영화의 색감과 음악, 테오도르가 입고 있는 복장들까지 아름답고 밝으며, 찬란함에도. 외롭다. 그 외로운 순간들이 되려 너무 현실적이라 더더욱 쓸쓸히 느껴진다. 따스한 봄날의 햇살처럼 빛나는 순간 속에 정작 나만은 외로워서. 그 모든 외로움의 탓은 오로지 나로 돌릴 수밖에 없어서. 솔직해지는 것에 머뭇거리고, 상처 받기를 두려워하며 혼자라서 외롭지만 가까워지는 일에는 또 주저하는 나라서. 가만히 있다 보면 그냥 그렇게 흘러가다 나아지기를 바라는 마음은 이율배반적이라기 보단 우리 모두, 혹은 본인이 가진 소원에 가깝다. 다시금 상처 받는 것에 겁을 내는. 평범한 우리의 모습이 투영되어 보인다. 


   ‘이미 사람으로 태어나 느낄 수 있을만한 감정은 다 경험해보아서, 무디어지고 더 이상 설레지 않아서. 새로운 느낌 없이 덤덤이 산다’는 테오도르의 말은 실제로 그가 느끼는 감정이 그래서가 아닐 테다. 새롭게 디뎌야 하는 발걸음이 부담스럽고 무섭기 때문이다. 다시 상처 받고 아플 용기가 없어서. 그래서 그의 고독과 공허함에 공감할 수밖에 없다. 그의 슬픈 눈과 배경음악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는다. 덤덤이 산다는 말을 읊조리던 그가 결국 ‘사만다’와 사랑에 빠져 천진난만해진 표정으로 웃음 지을 땐. 더더욱 그에게 이입될 수밖에 없다. 그게 우리의 모습이자 나의 모습이라서. 이런저런 핑계를 대곤 하지만. 늘 원하는 무언가를 손에 쥐어지길 바라는, 그런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 말이다. 


   5년 전에 보았을 땐 그저 ‘사랑’에 초점이 맞추어졌다면, 이번에 보았을 때는 테오도르의 시선과 그의 행동들, 솔직한 감정을 내뱉으려다 결국 입안에서 맴돌아 버리는 모습들에 좀 더 눈길이 갔었던.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이야기, 영화 ‘Her’였다. 


이 영화 이후, 리버 피닉스보다 호아킨 피닉스가 좋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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