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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nochrome blues Aug 31. 2017

인생의 쓰임.

나 이렇게 살아도 괜찮을까?

  잠이 오지 않는 밤, 침대 위에서 뒤척이다 문득 어렸을 적 읽었던 동화가 생각났다. 소나무, 혹은 사과나무에 관한 이야기였는데,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 


“옛날 옛적, 어느 숲에 어린 소나무들이 자라고 있었습니다. 그중 유독 한 나무만이 줄기가 바르지 못하고 구부정했어요. 다른 나무들은 구부정한 나무를 놀리며 더욱 허리를 빳빳이 세웠고, 구부정한 나무는 다른 나무들을 부러워하며 자신이 쓸모없다고 생각했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목수가 곧게 자란 나무들을 보더니 마음에 들어하며 전부 베어 가버렸어요. 하지만 구부정했던 나무는 쓰일 곳이 없겠다며 남겨놓고 가서 홀로 살아남을 수 있었고, 자식들과 오래도록 행복하게 살 수 있었답니다.” 


홀로 남겨진 나무는 행복해야만 할까.


  다시 찾아보려 해도 제목이나 내용을 찾을 수 없는 이 동화의 주제는 아마 ‘겸손하게 살자’였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 생각해보니 ‘저마다의 삶이 있고, 쓰임이 있다.’라는 주제가 좀 더 맞을 것 같다. 누가 누구보다 낫다기 보단, 저마다의 삶이 있고 나름의 가치를 찾았다는 쪽이 합리적인 추론이다. 잘린 나무들은 무언가로 되살아나는 삶을 살았을 것이고, 구부정한 나무는 자손을 남기는 삶을 살았을 것이다. 본인이 원하는 삶이라던가 쓰임대로 삶이 흘러가지 않을 수는 있더라도 본연의 가치가 휘발되는 삶은 없다고 믿기에. 


  ‘쓸모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딱히 이 주관적인 질문에 대한 답을 듣고 싶은 생각은 없다. 명확한 정답을 말해줄 수 있는 사람도 없다. 어디서 무슨 일을 하느냐에 따라 인생의 쓰임은 저마다 다른 사명을 가지고 있으며, 애초에 각자가 품은 목표에 따라 ‘쓸모’와 ‘쓰임’의 정의도 달라지기 때문에.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누구든 이런 고민을 시작했다면 결코 평온한 상태는 아니란 점이다. 이렇게 살아도 되나 싶을 때, 혹은 감당할 수 없을만한 풍랑을 만났을 때. 불 꺼진 방에 홀로 누워 천장을 바라보다 나도 모르게 나온 한숨으로부터 시작되는 질문이다.  


저마다의 삶, 저마다의 생각.

 

 깊은 밤까지 잠들지 못하고 이토록 심란해하는 까닭을 덤덤히 말해보자면, 회사에서 잘렸기 때문이다. 이렇게 된 것은 회사의 잘못이지, 내 잘못이 아니라 미안하다는데 사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스타트업의 특성상 1인 이상의 몫을 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나와는 상관없이 회사가 어려워지는 상황이 눈에 보였고, 예상했던 시점보다는 조금 빨리 통보를 받았으며, 며칠간의 멍한 시간이 지난 후였다. 그리고 오늘은 유난히 잠들지 못하는 밤이었고. 하지만 현실 감각이 떨어지는 것인지 이상하게도 절망스러운 느낌은 아니다. 부양해야 할 식구가 있는 것도 아니고 앞으로의 일이 막막한 것도 아니었다. 경력을 많이 보는 직종에 종사하는 것 치고는 아직 '신입'급이라는 점이 걱정은 되지만 반대로 몸이 무겁지도 않아 어떻게든 될 것 같기는 하다. 어떻게든 될 것 같기는 한데, 내 잘못도 아닌데. 마음은 여전히 묵직하다. 내 인생이 지금 어떻게 쓰이고 있는 건지 알 수가 없어져 버렸다. 막상 들고 와 보니 마음에 차지 않아 목수의 손에 버려진 나무의 심정이다. 목공소 한구석에 처박혀 있듯 침대에 널브러져 있다. 


  겉으로는 괜찮은척해도 속은 곯아있는 사람인 양 말했지만, 사실 나는 나 자신을 잘 안다. 이 밤이 지나면 괜찮아질 것이라는 사실을. 감사하게도 나는 힘들고 좌절스러운 감정이 잠으로 잘 휘발되는 사람이다. 어떻게든 잠이 들고난 후의 아침이라면 아무렇지 않아질 것이다. 문득 자기 전에 내려마신 커피가 조금 후회되었다. 어쩌면 반드시 일어나야 할 시간이 사라져 버려 잠들고 싶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조금은 서글퍼졌다. 그렇지만 평상시에 일어나던 시간에는 똑같이 일어날 작정이다. ‘쓰임’이 달라질 수는 있더라도 ‘나’는 달라지지 않기 때문에. 잘려나간 몸뚱이에서 비싼 버섯이 자라 대박이 날 수도 있고, 누군가의 대문에는 나보다 더 좋은 나무를 찾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저마다의 인생, 저마다의 쓰임.


  머릿속이 너무 과해졌는지 눈꺼풀에 이불이 덮인다. 이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잠들어야겠다. 지금을 놓친다면 영영 잠들지 못할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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