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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nochrome blues Jul 31. 2017

컬러필름 이야기_#6.

불효자는 웁니다.

 두어 달 만에 할머니를 찾아뵈었다. 두 시간 남짓한 거리에도 멀다는 핑계를 대다 큰 마음을 먹었다. 할머니를 찾아뵙는 일에 큰 마음을 써야 한다는 점에 한 번 반성하고, 몇 달만에야 그 마음이 생겼다는 점에서 두 번 반성했다. 초인종을 누르자 한결같이 손자를 반기는 당신의 모습에 세 번. 당신께서도 다른 할머니들처럼 손자가 밥은 잘 챙겨 먹는지부터 걱정이시다. 자리에 앉자마자 시골에서 보내온 블루베리를 내어 오신다. 당신께선 흘러내리는 살을 겨우 주워 담은 손자의 벨트 속이 보이질 않으신다. 

기다리는 마음.


  할머니와 나누는 이야기들은 늘상 비슷하고 일상적이다. 회사는 잘 다니는지, 혼자 사는 집은 어떤지. 빨래는 어떻게 하고, 결국 밥은 또 잘 먹고 다니는지. 동일한 소재들로 비슷한 풍의 돌림노래다. 무뚝뚝한 손자의 변하지 않는 일상도, 자주 찾아뵙지 않는 손자의 발걸음도 문제다. 사실 손자가 내놓는 이야기도 거기서 거기다. 혼자서 적적하진 않으신지, 잠은 잘 주무시고 식사는 잘 챙겨 드시는지. 눈이라던가 무릎은 괜찮으시고, 어디 편찮으시다거나 불편한 곳은 없으신지. 새롭게 꺼낼만한 소재라던가 사건도 없고, 여태까지 꺼내온 이야기만으로도 대화가 이어지기 때문에 굳이 다른 이야기는 섞질 않는다. 그래도 이 대화는 언제나 좋다. 이 시간 자체가 소중하다. 끝이 나질 않았으면 하는, 영원하길 바라는 대화다. 



  과일을 먹다 약간 상한 블루베리 두 알을 골라냈다. 당신께서 이유를 물으셔 약간 곰팡이가 펴 보이는 게 상한 것 같다 답했다. 어제 시골에서 들고 온 거라 딱히 이상한 아이들은 없을 거라 하셨지만, 굳이 손대지는 않았다. 다 먹은 과일 그릇을 가져다 놓으려는데, 굳이 당신께서 하신단다. 그릇을 들고 부엌으로 들어가시는 할머니의 모습을 멀뚱히 쳐다보다, 블루베리를 드시는 당신의 뒷모습을 보고야 말았다. 

당신의 뒷모습에서 느껴지는 수많은 감정들.


  아차 싶었다. 상한 블루베리 몇 알 먹는다고 배탈이 날 것도 아니었는데. 그 이전에 상했다고 말씀드린 블루베리를 드실 줄 몰랐다. 그걸 알았다면 께름칙하여도 내가 먹고 말았지. 당신과 많은 시간을 같이 보냈고, 많은 대화를 나누었지만 처음으로 당신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릴 땐 바로 앞이 댁이었고, 몇 년간은 당신 댁에서 대학을 다니다 보니 또래에 비해 당신과 함께한 시간이 많다고 생각해왔음에도. 다행히 당신께서는 아프지 않으셨고 아프지 않으셔야 만 했지만, 당신을 모른단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내가 안다고 생각했던 할머니는 누구였을까. 내가 믿고 싶던 할머니의 모습? 혹은 당신의 일부를 전부로 착각했던 것일까? 싫다거나 죄송한 감정은 아니었다. 물론 블루베리 사건 자체만으로는 죄스러운 마음이었지만, 더 넓게 보면 무언가 신기하고 새로움에 관한 이야기였다. 타인의 마음은 감히 헤아릴 수 없기 때문에 알아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말은 하고 다녔지만 할머니는 그 안에서 예외였다. 그래서는 안되었다.‘할머니’란 이름 뒤편에 숨겨진 당신의 존재 역시 한 길 마음속 알 수 없는 한 사람이자, 알아가야 하는 사람이었다. 당신의 이야기도 알아 가야만 했다. 

아무것도 알 수 없게 되어버렸지만, 알아야만 한다.


  어느샌가 ‘늦었다고 생각했을 때가’란 말 뒤에 올 말로 ‘진짜 늦었다’란 문장이 더 자연스러운 나날들을 보내고 있지만, 당신과 나의 관계에 있어서는 ‘가장 빠르다’란 말이 정답이길 바란다. 다음 주말에는. 설레는 마음으로 당신을 찾아뵈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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