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십 대의 운동.

오늘만 살기 싫어 운동합니다.

by Monochrome blues

살기 위해 운동한다는 말이 농담인 줄 알았다. 서른 살 넘은 형들의 너스레라 생각했지. 초등학교 6학년 어린이들이 5학년 동생들을 보며 ‘나 때는 말이야’라고 훈계하는, 귀여운 느낌으로 말이다.


운동을 좋아하는데 싫어한다. 이게 무슨 말인고 하니 힘들거나 재미없는 운동은 싫다. 그 외의 운동은 좋아한다. 좀 더 풀어써보자면, 닭장 같은 헬스장에 갇혀 중량 운동을 하거나 러닝머신에서 멍하니 달리는 건 너무나도 재미없다. 한두 시간씩 죽여야만 하는 순간이 아깝다. 애초에 아픈 걸 좋아하는 변태가 아니란 변명까지 곁들여, 헬스는 본인 취향이 아니라 강력히 선포한다. 뭐하러 스스로 지갑까지 열어가며 아파야만 하는가? 선선한 한강, 혹은 탄천을 바라보며 여유롭게 자전거 페달을 밟으면 되는 운동도 있다. 하하호호 프리즈비를 주고받거나, 치느님과 맥주캔을 옆에 끼고 축구 중계를 보며 입으로 하는 운동 쪽도 좋지.


4_4.JPG 세상 즐거운 운동의 좋은 예.


삼십 대 형들이 ‘너도 서른 살이 되면 죽기 싫어서 운동한다는 말 이해하게 될 거야’라고 했던 얘기들을 코웃음 치며 들었다. ‘그건 형들이 운동을 1도 안 하니깐 그런 거죠. 전 나름 해요. 자전거도 타고 스케이트 보드도 타고.’ 라던가, ‘여자 친구랑 걷는걸 원체 좋아하니 그걸로 충분해요. 그러니 형들도 연애 좀 해요.’ 란 말도 서슴없이 던졌다. 서른세 살의 오늘, 철없던 이십 대를 만난다면 그 입 다물라 해주고 싶다. 너도 나이를 먹더니 살기 위해 운동하고 있는 데다 그 형들은 하나둘씩 결혼하여 얼굴 보기도 힘들단 말이다. 아, 참고로 넌 연초부터 솔로란다.


서른세 살 어른이는 생존력을 높이기 위해 운동한다. 크로스핏이란 운동을 시작했다. 작년엔 서너 달 정도 맛만 보고 몸이 아프단 핑계로 몇 달 쉬었다가, 올해부터 꾸준히 체육관 출석 도장을 찍고 있다. 크로스핏이 무엇인고 하면 티브이나 영화에서 종종 볼 수 있는 운동이다. 밧줄을 양 손에 쥐고 열심히 휘두른다거나 타이어를 뒤집는 동작을 떠올리면 된다. (실제로는 덤벨이나 케틀벨 같은 도구를 사용할 때가 많지만 저런 장면들이 직관적이니깐.) 아니면 무한도전 ‘조정’ 특집에서 멤버들이 타던 로잉 머신을 생각해도 좋다. 이런 류의 동작 몇 가지를 한 코스로 짜서 몇 세트씩 돌린다. 메인 운동은 이삼십 분이면 끝나는데, 단시간에 사람을 쥐어짤 수 있다는 부분이 핵심이다. 절반쯤 지났을 때부터 코치님께 살려달라 애원할 때도 있다. 좋게 말하면 기분 전환에 좋지. 원래 아 다르고 어 다르지 않겠는가?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로 해석해야 맘이 덜 아프지.


크로스핏에 처음 꼬셔진 계기는 여자 친구 때문이었다. 그녀의 회사는 복지가 꽤나 좋은 편이라 직원들끼리 소모임처럼 동호회를 만들면 매달 지원비가 나온다고 했다. 계기는 모르겠으나 동료 몇 명과 크로스핏 동호회를 만들었고, 체육관을 다니기 시작했다. 운동을 마치고 온 그녀가 죽겠다며 온갖 하소연을 늘어놓을 때까지만 해도 저게 자신의 미래가 될 줄은 몰랐지. ‘오늘은 이 동작, 저 동작을 합쳐서 다섯 세트 했는데 죽는 줄 알았다니깐?’ 이라며 감상평을 내뱉을 때마다, 뭉쳐있는 그녀의 허벅지를 손가락으로 찔러주며 비웃었다. ‘야, 네가 평소에 운동을 안 하니깐 그렇지. 그까짓 거 그게 뭐가 그렇게 힘들다고 그래?’


보름 정도 지났을까? 운동을 끝마치고 온 그녀의 멘트는 ‘오늘도 진짜 죽을 것 같았어.’에서 ‘야, 옆에서 웃지 말고 진짜 니 뱃살이나 보고 말해. 네가 하면 진짜 토한다니깐?’으로 바뀌어 있었다. 절반은 울분, 절반은 유혹이었다. 이왕 괴로울 거면 함께 괴롭고 싶단 얘기지. 자꾸 옆에서 살살 긁으니 운동으로 혼내주고 싶단 표정으로 말이다. 세 번까지는 무료 체험이라길래 그까짓 운동 한 번 뛰어주고 코를 납작하게 해 주리라 마음먹었다. 온몸에 마블링이 적절한, 맛있어 보이는 체형의 소유자지만 스스로를 믿었다. 하체 부심이 있었으니까. 나름 생활 근육으로 다져진 몸이란 말이다.


대망의 첫 경험. 여자 친구 옆에 서긴 뭔가 민망하여 따로 온 척했다. 정확하진 않은데 매우 초보자 코스였다. ‘메디슨 볼’이란 크고 무거운 공을 스쿼트 자세에서 벽에 던지고 받는 자세 한 가지, 버피 테스트라는 운동 총 두 가지를 일 분마다 번갈아가며 수행하면 되었다. 각각 10회 정도, 총 20분 코스였을 거고. 내심 코웃음 쳤다. ‘뭐? 이 정도에 그렇게 힘들어했다고? 이거 이십 분한다고 운동이나 되겠어?’라고 말이다. 하지만 저 말이 쏙 들어가는데 3분이면 충분했다. 공 한 번, 버피 한 번. 그리고 다음 회차로 돌입하는데 옆 사람과 공 무게가 바뀐 줄 알았다. 갑자기 공에서 지구의 묵직함이 느껴졌다.


‘어? 이게 아닌데?’라는 마음으로 칠 분 정도 버텼으려나. 다른 사람들은 열심히 동작을 수행하고 그녀도 나름 죽을 둥 살 둥 따라가는데 혼자만 바닥을 뒹굴었다. 운동하다 토하겠다 싶은 생각은 살면서 처음이었다. 그 이후로도 몇 달 간은 바닥을 기어 다니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무한도전 ‘조정’ 특집에서 다들 로잉 머신 앞에서 부들거리고 눈이 튀어나올 것 같은 표정이 마냥 웃겼는데, 지금이 딱 그 상황이다. 스쿼트도, 데드리프트도, 로잉머신도 하체 부심을 부숴버리기엔 충분했다. 그래도 울며 겨자 먹기로 운동을 나갔다. 여기서 그만두면 그녀에게 평생 놀림받을게 틀림없기 때문이다. 결국 내 돈 내고 스스로 고문받는 변태가 될 수밖에 없었다.


4_1.jpg 운동이 끝나고 난 뒤의 모습은 대충 저렇답니다.


크로스핏 다닌 지 일 년을 넘기고 나니 간신히 초보자 딱지를 뗄 수 있었고, 사용 중인 도구 무게도 조금 늘었다. 가장 큰 체감 효과는 운동이 몸에 익은 다음부턴 피곤함이 줄었다는 점이다. 줄었다기 보단 예전에는 오후 두 시쯤부터 피곤했다면, 지금은 퇴근 무렵이 되어야 피곤하달까? 아, 이래서 형들이 살려고 운동한다 했구나. 결국 이런저런 효과를 몸소 체험한 후로는 스스로 운동을 찾는 몸이 되었다. 지금도 운동은 죽을 만큼 힘든데, 이젠 최소한 코스를 완주하고 장렬히 전사한다. 이 정도면 장족의 발전이지. 아, 그리고 크로스핏 전도사였던 그녀는 전 여자 친구가 되었다. 헤어지기 두어 달 전 그녀가 먼저 운동을 그만두어준 덕분에 재산 분할 목록에서 크로스핏은 내가 가졌다. 다행이라면 다행이지.


가끔씩 이 어른이가 운동을 그만두지 않는 모습이 기특하다. 삼십 분 남짓한 시간 안에 모든 에너지를 쥐어짜는 느낌이 너무 좋기 때문이리라. 회사에서 지친 두뇌 전원을 삼십 분 동안 꺼둔다. 그렇게 머리를 식히고 퇴근하면 스스로를 회사와 철저히 분리시킬 수 있다. 그 맛에 중독되었다. 심지어 꾸준히 다니다 보니 코치 선생님께 회원님 체력 엄청 늘었단 칭찬도 종종 듣는다. 물론 저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악마 같은 저 양반이 날 더 괴롭힐 거란 사실을 알고 있지. 늘 잘못 보셨다고, 온갖 핑계를 들어가며 착각하신 거라 너스레를 떤다. 한 가지 아쉽다면 이 정도 운동량으로는 조각 같은 몸을 빚을 수 없었다. 그냥 사람 같은 몸이 되었다. 근데 한 번 더 생각해보면 도둑놈 심보다. 하루에 한 시간, 일주일에 보통 서너 번 정도 하는 운동으로 식스팩이 생긴다면 지금처럼 이쁜 몸에 열광하는 세상은 오지 않았을 거다. (조각 같은 몸을 갖고 싶다면 다시 태어나는 쪽이 더 빠를 수도 있겠다 생각한다.)


얼마 전, 크로스핏 비용이 인상했다. 미묘하게 연봉 인상률보다 운동비 인상폭이 더 큰 느낌이다. 실제로 연봉보다 운동비가 더 많이 올랐다면 맘이 많이 아플까 봐 계산기를 꺼내진 않았다. 그냥 얼추 비슷하리라 얼버무리고 말았다. ‘좀 많이 올랐죠?’라고 겸연쩍게 웃으시는 코치님께 ‘그래도 살려면 해야죠.’라고 웃으며 답했다. 그래, 어쩔 수 없지. 이십 대 친구들아. 언젠가 너희들도 이 어쩔 수 없음을, 살기 위해 운동한단 말의 진의를 이해할 거란다. 이해하지 못할 삶을 살게 된다면, 그건 축복인지 불행인지 모르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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