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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한규 Oct 20. 2020

그는 여전히 내게 페이스북의 스타다

Barranquilla, Colombia

소년은 페이스북의 스타였다. 게시물 평균 '좋아요' 이 백 개, 사진 하나만 올리면 여자 친구들의 답글이 잔뜩 달리곤 했다. 그는 닉키 잼 Nicky Jam처럼 모자를 비스듬히 쓰고 사진을 찍었다. 오늘은 또 '좋아요'를 몇 개 받을지 궁금했다. 사실 그의 핸드폰은 바랑키야 북쪽의 부촌에서 훔쳐 온 신형 아이폰이었다. 핸드폰에 심 카드만 꽂혀 있으면 페이스북과 왓츠앱을 무료로 쓸 수 있었는데, 덕분에 그는 동네에서 가장 멋진 남자가 될 수 있었다. 그를 만나게 된 건 어느 비정부기구의 프로젝트 때문이었다. 삼 주 동안 낯선 동양인인 내게 비극의 가족사를 풀어내는 어린 그를 마주하고 앉아 있는 건 여간 슬픈 일이 아니었다. 그를 뒤로한 채 북쪽의 부촌으로 향할 때면 택시의 구석에 앉아 낡은 아이폰으로 그의 페이스북을 들여다보곤 했다. 그가 자랑스레 올린 우리의 사진을 바라보며, 나는 말 없이 '좋아요'를 눌렀다. 


콜롬비아의 4대 도시 바랑키야는 남과 북이 극명하게 나뉘어 있었다. 높은 방벽으로 둘러싸인 주거 지역에 경비원까지 두고 있는 북쪽의 부촌과 다섯 식구가 한 집에 옹기종기 모여 사는 남쪽의 도심은 쉬이 같은 도시라고 칭하기가 어려웠다. 북쪽의 친구들은 울타리로 둘러싸인 사립대학교에 다녔다. 학생증이 없으면 들어갈 수 없는 대학은 경비원들이 완벽한 보안체계를 유지하고 있었고, 무더운 여름 날씨는 신경 쓰이지 않는 시원한 교실은 최신형 맥으로 가득 차 있었다. 남쪽의 친구들은 국립 대학을 다녔다. 국립 대학의 입구에는 온갖 상인들이 진을 쳤고, 그곳에서야 길거리 음식의 진수를 맛볼 수 있었다. 허물어져 가는 국립 대학은 울타리가 필요 없었다. 동네의 개들도 벌거벗은 캠퍼스를 피해 숲으로 볕을 피했다. 


그나마 대학을 갈 수 있는 친구들은 행운아들이었다. 대다수 남쪽의 아이들은 대학은커녕, 고등학교도 나오지 못했고, 학교 또한 끼니를 때우기 위해 가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마약을 판매하다 죽은 아버지와 형들, 집안일에는 관심이 없는 어머니. 길가로 내앉은 아이들은 집에서 식사를 해결하지 못했고, 그 아이들을 학교가 끌어안았다. 숱한 비극의 이야기 속에서 아이들은 사랑을 갈구했다. 그런 아이들에게 페이스북은 타인의 관심을 받을 수 있는 창구, 누군가에게 '좋아요'를 얻을 수 있는 공간이었다. 페이스북 세상에서 아이들은 누구보다도 멋졌고 누구보다도 이성 친구가 많았다. 전기가 나가 훔친 핸드폰을 충전할 수 없는 때만 아니면, 아이들은 타인의 관심에 집착한 채 페이스북 안의 세상을 살아갔다. 


한 번은 북쪽에 사는 친구에게 시내 한복판에 촬영하러 가고 싶다고 말했던 적이 있다. 이미 대여섯 번 다녀온 길에 그날따라 친구를 대동하고 싶었다. 화들짝 놀라며 의심스러운 눈으로 나를 바라보던 친구가 말했다. 나는 살면서 한 번도 도시 남쪽으로 안 가 봤어. 거기는 더럽고 위험해, 동양인은 가지 않는 게 안전해. 이미 다녀온 수많은 길들 속에서 중국인 소리를 수백 번 들었던 내게, 그의 편협함은 놀라웠다. 그는 남쪽의 페이스북 스타 친구의 존재를 알고 있을까. 한 도시를 살아가면서 그는 남쪽의 소년을 한 번이라도 만날 수 있을까. 그 만남의 순간이 그가 새로운 아이폰을 사는 순간이 되지는 않을까. 


소년은 기다란 손톱으로 나를 가리키며 치노, 중국인이라 불렀다. 한국의 존재를 모르는 소년의 인종차별적 언사와 행동은 그다지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그의 얼굴에서 우울한 기색을 없앨 수 있다면 열 번쯤은 더 다른 나라 사람이 될 수 있었다. 다음번에는 일본인이 되어볼까, 하다가 그가 아시아에서 중국밖에 모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소년은 여전히 페이스북에 멋진 사진을 올린다. 나는 또다시 말없이 그의 사진에 '좋아요'를 누른다. 그는 여전히 내게 페이스북의 스타다.



뒷모습, 내가 만났던 도시와 그곳에 살았던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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