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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한규 Nov 17. 2020

현대 라틴아메리카

만들어진 대륙, 라틴 아메리카

석사를 아르헨티나에서 공부하면서 라틴 아메리카에 관한 많은 책을 읽었다. 민중의 이야기로 짜인 라틴 아메리카를 통해서야 그들의 역사가 보였다. 라틴 아메리카, 만들어진 대륙의 저자 월터 미놀료는 아메리카를 '만들어진 대륙'이라고 정의한다. 그에 따르면 아메리카라는 개념은 근대성 개념과 병행하며, 두 개념은 유럽인에 의해 고안되고 실행된 제국주의적 기획과 지구적 경영 구상의 자기 표상일 뿐이다. 결국 아메리카의 발명은 유럽의 제국주의가 확장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고, 이러한 확장을 통해서 유럽의 생활방식을 인간이 추구해야 할 모델이 되었던 것이다. 


우리가 흔히 소비하는 남미의 이미지를 생각해보자. WASP (White Anglo-Saxon Protestants)로 대변되는 1세계의 국가들의 땅 북아메리카와 달리 중미와 남미의 이미지는 가난하고, 게으르다.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서 막스 베버 (Max Weber)는 이를 개신교와 가톨릭의 차이로 설명하고, 총, 균, 쇠에서 재러드 다이아몬드는 이를 환경결정론으로 해석한다. 일부 인종차별주의자들과 우생학자들은 유럽인과 원주민의 차이로 해석하기까지 한다. 아무튼, 이렇듯 중미와 남미는 실제로도 가난하고, 빈부격차가 극에 달해 있으며, 각종 사회적 문제들로 시달리고 있다. 그렇다면 왜 현대 라틴 아메리카는 여전히 저개발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가? 


'하지만 유럽 바깥의 대륙과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오로지 대상으로서 존재할 뿐 주체로서 존재하지 못했고, 어떤 의미에서는 역사 바깥에 존재했다. 달리 말하자면 그들은 스스로의 관점을 인정받지 못했다. 에릭 울프의 유명한 책 제목인 역사 없는 사람들 (People without History)은 이러한 차별적인 인식의 권력을 가리키는 비유이다.' 월터 미놀료의 말마따나 유럽인들이 아메리카 (무려 아메리고 베스푸치라는 이탈리아인이)에 당도하기 전에 아메리카는 존재하지 않았다. 아니 그곳에 존재하던 수천 만의 사람들은 역사 없는 사람들이었고, 조만간 당도할 콜롬버스와 그의 세균에 전멸당할 운명이었다. 이렇게 발견된 대륙은 착취와 또 다른 착취를 가능케 하는 대상이었다. 독일의 경제학자 안드레 군더 프랑크 (Andre Gunder Frank)가 주장했듯 라틴 아메리카는 시작부터 유럽에 종속되어 있었고, 기나긴 식민주의를 지나서도 여전히 유럽에 종속되어 있는 것이다. 유럽은 라틴 아메리카의 자원과 광활한 대륙을 약탈해갔으며, 이는 아프리카에서 실어 온 노예들을 통해서만 가능했다.


대서양에서 죽은 천만 명의 노예는 아메리카 대륙에 당도하지 못했지만, 그런데도 유럽인들은 수많은 아프리카 대륙의 인류를 착취했다. 아프리카의 노동력, 아메리카의 자원은 세계의 변방에 지나지 않던 유럽을 지정학적으로 가장 중요한 위치에 올려놓았다. 유럽 기독교인들의 의식 속에서 ‘서유럽’은 (나중에는 아메리카로, 더 나중에는 라틴아메리카와 앵글로아메리카로 불리게 될) ‘서인도’가 등장할 때까지는 ‘중심’이 아니었다. 서양 (옥시덴탈리즘)이라는 개념과 1500년 이후의 서구 팽창주의 이데올로기는 아메리카의 역사적 등장과 발명과 더불어 시작되었던 것이다. 


스키드 모어, 스미스, 그린의 현대 라틴 아메리카는 라틴 아메리카의 역사를 개괄하기에는 충분한 책이다. 하지만 사실 현대 라틴 아메리카의 역사를 가장 잘 다룬 책은, 에두아르도 갈레아노의 수탈된 대지가 아닐까 싶다. 세 미국 학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라틴 아메리카의 거시적 역사 보다야 우루과이 작가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미시적 수탈의 역사가 대륙을 이해하는데 더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에르네스트 만델은 1660년까지 아메리카에서 강탈된 금과 은의 가격, 1630년부터 1780년 사이에 네덜란드의 동인도회사가 인도네시아에서 수탈한 약탈품, 18세기의 노예매매에 의한 프랑스 자본의 이익, 영국령 서인도 제도의 노예 노동력에서 얻어진 수익, 50년 동안에 영국이 인도에서 획득한 약탈품을 합계하고 있다. 그에 의하면 합계액은 1800년까지 유럽의 모든 산업에 투자된 자본의 합계를 상회하고 있다.' 에두아르도 갈레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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