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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한규 Nov 17. 2020

경계 없는 페미니즘

연대하는 페미니즘에 관하여

NI UNA MAS.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페미니즘 운동은 페미사이드로 고통받는 여성을 위한, 여성의 생존권을 지키기 위한 운동이었다. 페미니즘의 깃발 아래 사회적 소수자들은 단결했고, 생물학적 여성이라는 범주를 떠나, LGBT와 원주민 (Indigenas), 이민자들은 연대하고 단결하여 힘을 합쳤다. 그들이 상대하는 것은 사회적 약자들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시스템과 관습, 그리고 그것들을 이용하는 모든 이들이었다.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한 사회학 수업에서 나는 한국에 발을 디딘 300명의 난민에 관해 이야기했다. 무심코 보면 대한민국과 아무 연관이 없어 보이는 이들은, 사실 제국주의의 경제 침탈과 자원 강탈에 의해 만들어진 피해자들이었다. 한국은 예멘의 전쟁에 어떤 책임도 없는가. 복잡다단하게 얽혀있는 세계화 시대에서, 수출이 GDP 대부분을 형성하는 대한민국은 중동에 이미 많은 무기와 전략 물자를 수출해오고 있었다. 이렇듯 경제-정치적으로 얽힌 문제를 뒤로하더라도, 우리는 사회적 약자를 이해하고, '난민'이라는 이름의 존재에게 손을 내밀어야만 했다. 벨 훅스는 그녀의 글에서 이런 이야기를 한다. '페미니즘은 성차별주의와 그에 근거한 착취와 억압을 끝내려는 운동이다'. 


'페미니즘은 복수 명사로 그 안에 다양한 페미니즘이 공존할 수 있다. 각자 지지하는 페미니즘을 존중하고 우리 사이의 균열을 최소화하는 데 충분히 신경을 쓰기만 하면 된다. 모든 여성의 현실은 부분적 진실이다. 당연히 ‘페미니스트 대표’는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 ‘자기만의 페미니즘 one of them’을 가질 수 있고, 가져야 한다. 이 책은 그중 하나이자 ‘참고할 만한 선한 페미니즘’이다. 아무리 훌륭한 ‘~주의’라 할지라도 ‘must be, should be’는 무리가 있으며, 어느 누구도 ‘~ 주의자’라는 단일한 정체성으로 환원될 수 없다.' 록산 게이


위의 록산 게이의 말마따나, 페미니즘은 생물학적 여성만을 위한 사회 운동이 아니다. 페미니즘은 억압받는 여성과, 그 여성과 연대하는 모든 이들을 위한 운동이다. 경계 없는 페미니즘은 그 시점에서 한국의 페미니즘을 반성하고, 앞으로 나아갈 길을 제시한다. 일부 예멘 난민들을 배척한 래디컬 페미니즘이 안고 있는 문제점을 지적하며 모두가 연대하여 억압의 사슬을 풀어낼 방안을 함께 논의하는 것이다. '제주 예멘 난민과 페미니즘의 응답'이라는 소제목처럼, 그들은 '작고 느리고 희미한' 말로 난민들에게 손을 건넨다. '여성 인권이 타자를 배척하는 수단으로 이용된다면 다양한 소수자들의 인권과 연결된 여성 인권에 대한 진지한 논의는 사라질 위험에 처한다. 동정, 계몽과 연대는 다르다. 다른 문화에 대한 손쉬운 동질화, 비역사화, 낙인화를 넘어 다양한 사회적 약자와 연대하는 법에 대해 더 많은 고민이 필요한 때다.' 우리는 이 지점에서 이런 질문을 던질 수 있다. 누가 여성 인권과 난민 인권의 대립 구도를 만들고 있는가? 그를 통해 이득을 보는 이들은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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